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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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에서 다음 해로 넘어가는 어떤 하루, 꼭 온천을 하고, 호텔에 눕고, 내가 아니지만 나였을 수 있을 누군가를 상상해보는 의식을 눈으로 짚어 따라가는 것. 지나간 적 없는 시절을 돌아보는 일 같다. 초록이 가득한 표지가 추운 도시와 이질적이란 생각을 하며 며칠 손에 책을 쥐고 다녔다. 밑줄을 치고 서울의 거리를 오가는 동안 계절이 바뀌었다.


동면에서 깨어나 "녹은 투명한 물이 잎 위를 구를 때", 이 얼얼하고 어리둥절한 시기에 꼭 읽어야 할 박솔뫼 작가의 신작, <우리의 사람들>이다.


표제작 「우리의 사람들」은 이 책을 읽는 일의 가이드 같다. 바쁜 와중이었다면 차마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을 사소한 일들을 곱씹게 되는 혼자만의 시간은 왜 호텔방에서만 가능한 걸까? 일상의 유령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청결함의 제국에서야말로 우리는 마음껏 숲을 헤맬 수 있다. 그러니까 헤매는 일에는 걸맞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숲을 헤매는 사람들은 누군가 숲에 가자고 하였기 때문에 왠지 그것도 그것대로 좋을 것 같아 숲으로 간 것이다." 존재의 무게로 고통받는 삶에서, 현재와 한 칸 떨어진 어딘가에 더 열중하는 건 살기 위해 택한 최후의 헤아림일지도 모르고, 그 미묘한 자세가 어느 시점부터 현대인의 삶에 스며들어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상념에 빠진 자를 다시 자리에 앉히는 건 「농구하는 사람」에서부터 「매일 산책 연습」으로 가는 길이다. '산책'이나 '농구' 같은 일에 '진짜 진짜 최종'이라든가 영영 지나버린 시간 같은 건 없으므로. 가장 소극적으로 보이는 전투나 공감도, 때로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타인에게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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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문지 스펙트럼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김현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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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의 글을 읽는 것이 괴롭다면, 멀쩡히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처음 <모자>를 읽은 날 분노의 손글씨로 일기장에 적힌 이 문장은 '제발트의 글을 읽는 게 지루하게 느껴지면, 멀쩡히 잘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 썼던 문장과 한 세트처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더 재밌는 건 제발트의 지루함도 베른하르트의 괴로움도 어떤 면에서 자꾸 독자를 중독되게 한다는 것이다. 베른하르트의 <모자> 속 문장들은 제멋대로 비약하고, 시제와 시점을 맘대로 여행하면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화자의 머릿속을 직접 체험하게끔 만든다. 역할을 타자화하지 않고, 경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베른하르트의 글은 말하자면 'VR' 같은 것이다.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인스브루크 상인 아들의 범죄>와 <오르틀러에서>가 기억에 남았는데, 좋아하는 작가의 예술가 소설을 읽는 것이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비 취준생^^이라는 작금의 신분탓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삶이 각박하고 우울할 때 행복한 글을 찾는 인간이 있는 한편 최고의 좌절을 찾아 탐닉하는 인간이 꼭 있지 않은가? 본인이 그런 인간이라면 베른하르트의 글을 꼭 읽어야한다.

"형무소 안이 즐거우리라고 생각한다면 틀린 생각이오! 세상은 유일한 법률이라오. 온 세상이 유일한 감옥이오. 그리고 오늘 저녁, 당신에게 확언컨대, 저 극장에서는, 당신이 믿건 말건, 희극이 상연되고 있소. 분명 희극이오." - P49

이 모자를 내가 가지면 도둑질이 되고, 땅바닥에 그대로 두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모자를 내 머리에 쓰면 안 된다! 나는 이 모자를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 P32

그러나 나는 절망적인 삶을 산다는 게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안다.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깨닫는 것만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절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든 단어가 갑자기 우스꽝스러워진다...... 하지만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겠다. 우스꽝스럽든 아니든 내 삶은 절망적이다. 야우레크 채석장에는 절망한 존재들만 있듯이, 절망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듯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삶과 마찬가지로 나의 삶도 야우레크 채석장의 상황에 맞게 무감각해지고 아무 욕구도 없어졌다...... 나는 절망하지만 절망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에게 말한다. 원칙적으로, 근본적으로, 나는 늘 절망하고 있지만 절망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다가오는 저녁을 위해 늘 어떤 기분 전환이나 관심을 돌릴 만한 일을 준비한다 - P60

우리의 타고난 슬픈 성격보다도 더 깊이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쓰라림이 매일 새벽마다 무능하고 고뇌에 찬 우리의 머리를 짓눌러, 우리는 절망적이고 우울한 단 한 가지 추정만 할 수 있었다. 우리 내면의 모든 것, 우리에 관한 모든 것,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우리가 무엇을 응시하고 숙고하든, 우리가 걸어가든 서 있든, 잠을 자며 무엇을 꿈꾸든, 그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게오르크와 마찬가지로 나도, 이미 가망 없음을 암시한다는 것이었다. 게오르크는 자주 며칠 동안 가장 불가능한 환상, 그의 표현에 의하면 더 높은 환상에 잠겨, 동시에 늘 절망에 빠져서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데 그 모습을 언제나 지켜봐야 하는 나까지 우울하게 만들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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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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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니는 죄가 없다


   무수한 연애소설을 읽고 장만옥, 줄리아 로버츠가 나오는 영화들을 보며 사랑을 '배운' 남자 상수가 있다. <사랑과 영혼>이 가장 좋은 사랑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 '제인 에어'를 생각하며 눈물 짓는 밤이 있다는 것, 반도미싱의 팀장대리라는 것, 37세 남성이라는 것, 마포구 거주 중... 등의 속성들 보다 그의 정체성을 잘 설명해주는 것은 '언니는 죄가 없다(언죄다)'라는 구독자수 2만명 가량의 페이스북 페이지다. 


   세상의 수많은 사랑은 왜 항상 그토록 불가해한 시작을 맞이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왜 그것들은 왜 하나같이 유형화되는 구체적인 알리바이와 함께 소멸되어버리고는 하는지. 그 미스터리하고도 고통스러운 사랑의 서사들을 가만히 들어주고 그들을 위로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사람 공상수의 삶이다. 


   한편 이 얼굴도 모르는 미지의 모니터 너머 '언니'에게 메일을 보내며 하나의 사랑을 떠나보내려는 경애가 있다. 대학 시절 만난 산주와 6년 간의 연애를 했고, 그 연애는 산주의 결혼으로 막을 내린다. 연애가 막을 내린다고 마음까지 돌연 사라져버리는 게 가능할까. 정말 그런 순간이 올까. 경애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고통스러운 계절을 보낸다. '6년 간의 연애가 끝이 나야 했다면 그건 그런 세속의 셈법이 아니라 사랑 본질의 것, 슬프게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불연속의 속성이기를 원했다.' 산주가 정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영리한 선택'으로 결혼한 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을 안고 경애는 씻지도,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는 와중에 살기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 속 '언니'에게 메일을 보낸다. '언니'가 누구나 해줄 수 있는 말들로 위로를 해줄 때, 그것들을 보며 산주가 있었던 어제도, 산주가 없는 내일도 없이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경애의 마음은 정말이지 죄가 없다. 우리 모두의 연애의 끝이 그러하듯이.


2. 너와 나의 안녕


   경애와 상수는 함께 '반도미싱'에 근무하는 직장 동료다. 얼떨결에 상수의 유일한 팀원이 된 경애는 한때 회사에서 삭발로 농성을 하기도 했던, 그래서 일자리의 소중함과 정의의 그릇된 본질을 동시에 알게 된 한 사람이다. 회사 상사 때문에 원치 않는 소개팅 자리에 나가야 했던 김유정, 새해 첫날 회사 사무식 자리에서 강제로 노래를 부르는 망신을 당해야 했던 한다정, 부당한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 당하고 두가지 일을 병행하며 살아가고 있는 유일영, 그리고 농성 당시 같은 집단에 있던 노조위원장이나 그룹원에게 성희롱을 당했던 사내 여성들은 모두 여성으로서 함께 겪은 고통을 감당해내며 연대한다. 페이스북 페이지 '언니는 죄가 없다'에서 서로의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고 지나간 사랑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여성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일자리는 중요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조선생이 있다. 양복을 입고 농성에 참여했던 그는 경애를 외면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고, 파업일기를 열심히 기록했던 사람이었다. 그 과정에서 평생을 바쳤던 일자리를 잃고, 아내까지 잃은 뒤 알코올 중독자와 다름 없이 살아가던 그는 상수의 영업팀이 베트남에 파견되면서 다시 일을 하게 된다. 이 영업팀에는 환갑에 가까운 연배지만 회사 사람들에게 하대를 당하는, '자기 의지랄 것이 있어야 비난도 하고 충고도 할 텐데 보이지 않으니까 연민이 생겨나'게 하는 기술자 창식도 있고, 헬레나, 에일린, 토니, 황과장 등 호찌민 지사, 그 밤과 낮의 거리들과 가로수들과 공원, 빈탄의 거리를 떠올리면 머리를 스쳐가는 소중한 이들이 있다. 그들을 생각하면 베트남 어딘가에서 여전히 온라인 고스톱 게임 삼매경인 창식이, BTS 뮤직비디오를 찾아보고 있는 에일린이, 미싱을 돌리고 있는 노동자들에 때로는 화를 내기도 격려를 하기도 하는 황과장이 살아 숨쉬고 있을 것만 같다. 


3. 살인은 연애처럼 연애는 살인처럼


   경애는 다시 산주와 연락을 하게 되는데, 산주는 자신의 불행한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예전처럼 자고 싶다고 경애를 유혹하다가도 돌연 집에 가버리는 등 무책임한 행동을 한다. 경애는 지금의 관계가 어떠한 희망도 없는 그저 일종의 패배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놓지 못한다. 경애가 놓지 못하는 것은 산주 그 자체가 아니라 산주의 존재인데, 그러니까 산주라는 사람이 경애의 인생에서 완전히 죽어버리는 것을 견딜 수 없을 뿐인데, 이는 경애의 학창시절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 정말이지 마음이라는 건 시간 없이는 제 자리를 찾기도, 폐기를 흉내내지도 못하는 몹쓸 존재니까 - 경애는 사랑의 주체가 되어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산주가 아내와 이혼했다며 불쑥 경애의 집 앞에 찾아온 날에 경애는 산주와 완전한 이별을 한다. 경애는 그제서야 조금은 따뜻해진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슬프지만 '이 방에는 너무 많은 물건들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불필요한 더미들에서 이제 정말 남겨두어야 할 것들만 남겨 두기'로 마음 먹는다. 


4. E


   우리는 어떤 사랑하던 것을 잃었을 때 정말로 극복할 수 있을까. 돈 갚아, 어디서 만날까, 하는 시시콜콜한 말을 하는 내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야자를 째고 공중전화로 달려가는 남자애를 상상해본다.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를 사랑했던. 헤어질 때는 은총이 있으라, 고 장난스럽게 말했던. 제가 만든 단편 영화에 저의 <마음>이 담겨 있다며 남들 몰래 내 손을 잡았다 놓고는 했던. 그 남자애를 너무 어처구니 없게 잃고 우리는 극복할 수 있을까.


   1999년 동인천 화재 사건에서는 56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경애는 사랑하는 소년이었던 E를 이 사건으로 잃고, 상수 또한 유일한 친구였던 은총을 잃게 된다. 둘은 생전 E가 좋아했던 데이비드 린치의 신작 <멀흘랜드 드라이드>를 보러갔던 극장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데, 서로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친다. 후에 상수는 경애가 자신의 친구 은총이 짝사랑하던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고, 경애도 상수가 E의 친구였음을 알게된다.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것, 그 일은 사실 어떤 어른들의 욕심과 관련이 있었던 것, 사건 이후에도 어른들은 이상하게 자꾸만 아이들을 탓했던 것, 그리고 그 탓해지는 대상에는 본인도 있었던 것... 들을 겪으며 경애는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닳는 듯한 삶을 살아간다. 몇 십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E를 생각하고, E를 말하고, E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남기면서, E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를 갈망하면서. 이러한 경애의 마음이 우리를 눈물 짓게 하는 일은 이처럼 잔혹한 일이 우리에게도 늘 속수무책으로 일어나버리기 때문이다. 사건들은 때로는 너무 황당하게 일어나'버리'는데, 피해자는 있는데, 분명한 존재가 한 인생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있는데, 그런데 가해자는 나타나지 않는. 가해자는 누구인지 모르거나 때로는 도무지 적당한 벌을 받을 수가 없게 되어 버리는. 그런 일들이 우리의 삶에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금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것을 잃고 극복해낼 수 있을까. 사실 세상에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만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면 E를 잃고 태연하게 학교를 나가고, 밥을 먹을 수 있었을까. 나라면 직장에서의 불합리한 처우들을 위해 삭발을 하고 농성할 수 있었을까. 나라면 그 날, 산주에게 정말 이별을 고할 수 있었을까. 나라면 그 많은 계절이 지난 후에, 상수의 집에서 물을 올리고 그와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런 것들을 경애敬愛의 마음으로 어렵사리 가늠해보지만 답을 지금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나는 <경애의 마음>을 나의 조용한 방에서 두번이나 펼치고 덮으면서도 아직 잘 모르겠다는 말로 끝을 지을 수밖에는 없겠다.


2018. 05. 07

2018. 0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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