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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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에서 다음 해로 넘어가는 어떤 하루, 꼭 온천을 하고, 호텔에 눕고, 내가 아니지만 나였을 수 있을 누군가를 상상해보는 의식을 눈으로 짚어 따라가는 것. 지나간 적 없는 시절을 돌아보는 일 같다. 초록이 가득한 표지가 추운 도시와 이질적이란 생각을 하며 며칠 손에 책을 쥐고 다녔다. 밑줄을 치고 서울의 거리를 오가는 동안 계절이 바뀌었다.


동면에서 깨어나 "녹은 투명한 물이 잎 위를 구를 때", 이 얼얼하고 어리둥절한 시기에 꼭 읽어야 할 박솔뫼 작가의 신작, <우리의 사람들>이다.


표제작 「우리의 사람들」은 이 책을 읽는 일의 가이드 같다. 바쁜 와중이었다면 차마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을 사소한 일들을 곱씹게 되는 혼자만의 시간은 왜 호텔방에서만 가능한 걸까? 일상의 유령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청결함의 제국에서야말로 우리는 마음껏 숲을 헤맬 수 있다. 그러니까 헤매는 일에는 걸맞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숲을 헤매는 사람들은 누군가 숲에 가자고 하였기 때문에 왠지 그것도 그것대로 좋을 것 같아 숲으로 간 것이다." 존재의 무게로 고통받는 삶에서, 현재와 한 칸 떨어진 어딘가에 더 열중하는 건 살기 위해 택한 최후의 헤아림일지도 모르고, 그 미묘한 자세가 어느 시점부터 현대인의 삶에 스며들어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상념에 빠진 자를 다시 자리에 앉히는 건 「농구하는 사람」에서부터 「매일 산책 연습」으로 가는 길이다. '산책'이나 '농구' 같은 일에 '진짜 진짜 최종'이라든가 영영 지나버린 시간 같은 건 없으므로. 가장 소극적으로 보이는 전투나 공감도, 때로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타인에게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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