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세번째 제언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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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혁명

부제: 교육혁명에 대한 대통령의 제언

 

세 번째 제언-제가 생각하는 교육 목표는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부탁드린 것은 들어주셨는지요? 무슨 부탁이냐고요?

 

저번 방송 말미에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에 대해 여러분 스스로가 답해보는 기회를 가져보셨으면 한다고 부탁드리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스스로가 생각한 답을 다시 떠올리며 방송을 보신다면 오늘은 훨씬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길러내는데 교육의 목표를 둘 것인가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답은 이따 말씀 드리기로 하고 세 번째 제언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현재 우리 교육의 목표는 서울대가 최고 정점에 있는 소위 명문대에 보내는 것 뿐 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목표에 부합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단 하나의 정답만을 미리 정해놓은 객관식 문제에서 정답을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많이 찾아내 보다 높은 서열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는 문제풀이 기계에 최적화된 사람이지 않겠습니까?

 

한 마디로 쉽게 말해 우리 교육은 문제풀이 기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견고한 학벌체제를 뒷받침 해주는 것이 서열화 된 대학 순위이고 합격 여부를 가려내려면 정답시비가 있어서는 안 되는 단 하나의 정답만을 미리 정해놓은 객관식 문제로 입시를 치러야 하고 대학 입시 응시생을 모두 점수로 매겨 한 줄로 줄 세워야하기 때문 아닙니까?

 

정신적으로 성숙기에 있는 10대 시절에 꿈, 열정, 앞으로의 포부, 정신적 성숙도, 관심사, 고민거리, 공부에 대한 흥미도, 자신의 존재론에 대한 고민을 포함해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거리나 생각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니죠. 중요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하나같이 입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짓거리로 여겨지기만 할 뿐입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아이들 중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아이 한명 한명을 바라보는 시선과 잣대는 오로지 반에서 몇 등, 전교에서 몇 등, 전국에서 몇 등이라고 서열을 매긴 학업 성적 뿐입니다.

 

살벌하고 살인적인 입시경쟁에서 서울대를 선두로 하는 소위 명문대에 갈 수 있는 인원은 극소수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입시전쟁에 내몰릴 것을 강요받는 것으로도 모자라 경쟁에서 밀려난 아이들은 낙오자라는 멍에를 스스로 짊어진 채 상처 받은 자존감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입시전쟁에서 밀려난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따뜻한 위로 한 마디라도 건네고 있습니까?

 

아니죠, 아닙니다.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쟁에서 밀려난 아이들의 항변이나 외침을 향해 서울대에 갈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주어졌다. 따라서 서울대에 가지 못한 것은 모두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이 부족한 탓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손가락질 하고 비아냥거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지배하는 기회균등 신화와 경쟁 만능주의에 근거한 논리입니다. 아뇨, 논리도 아니고 비열하고 저급한 수준 밖에 안 되는 주장입니다.

 

일단, 이것부터 짚어봅시다.

 

아이들에게 네가 공부에 흥미가 있어서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입시 준비해보렴’, 이런 식으로 말하며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줬습니까?

 

애초에 아이들에게는 선택권 자체가 없습니다. 본인이 공부에 흥미가 있는지 없는지, 공부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보면서 형식적으로나마 선택권을 주는 척조차 하지 않으면서 입시전쟁에 내몰아 놓은 채 기회균등을 논하고 경쟁에서 밀려난 아이들을 낙오자로 낙인찍는 자체가 우스운 일 아닙니까?

 

만약 여러분이 원치 않는 경쟁에 본인 의사와 아무 상관없이 강제로 내몰렸고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낙오자로 낙인찍히고 다시 도전할 기회조차 없다면 여러분은 납득하실 수 있습니까?

 

입시전쟁에 뛰어들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란 권리 자체를 박탈해 놓고 소위 명문대라 여겨지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낙오자로 낙인찍히고 언제든 도전할 기회조차 없는 현실을 우리 아이들이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죠, 애초에 선택권 자체를 주지 않았으니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납득하고 수긍해야만 합니까?

 

자 그런데요, 제가 입시전쟁의 승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자주 언급했는데 극소수, 극소수 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 감은 잘 안 오시죠? 그래서 작년 입시 응시생 통계를 준비했습니다.

 

작년 입시 시험 응시생은 모두 668,991명입니다.

먼저 학벌체제의 최고정점에 있는 서울대 입학 정원은 3304명으로 전체 응시자 중 0.4%이며 평균 고교석차 1.4등입니다.

그 다음 소위 스카이라고 하죠? 서울대, 고대, 연대 입학 정원은 11,271명으로 전체 응시자 중1.6%로 평균 고교석차는 5등입니다.

서성한 입학 정원은 20,264명으로 전체 응시자 중 3%, 평균 고교석차는 9.1, 이중경외시 입학 정원은 32,850명으로 전체 응시자 중 4.9% 평균 고교석차는 14.7등입니다.

 

소위 ‘IN 서울이라 불리는 서울 시내 소재 대학 입학 정원은 66,645명으로 전체 응시자 중 9.9%며 평균 고교석차는 29.9등입니다.

 

, 그럼 전체 응시자 668,991명에서 서울 소재 대학 입학에 성공한 66,645명을 빼면 무려 602,346명입니다.

 

어떻습니까? 제가 극소수의 승자라고 여러 번 강조했을 때 보다 실감 나지 않습니까?

서울대 입학 정원은 0.5%도 안 되고 서울대-고대-연대 입학 정원은 2%도 안 됩니다. 서울 소재 대학 입학 정원은 10%가 안 되는 9.9%고요. 서울소재 대학에 갈 수 있는 인원이 천명 가운데 아흔아홉 명인데 서울 소재 대학에 가지 못한 남은 아이들이 경쟁에서 밀려난 이유가 개인 노력이 부족한 것, 오로지 그것 하나에서만 기인하겠습니까?

 

입시전쟁에 강제로 내몰린 아이들이 모두 다 한눈팔지 않고 12년간 머리 터지도록 싸우며 입시준비에만 매진한다 해도 소위 명문대 입학 정원은 정해져 있는 이상 그 범주에 들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인데 이를 극구 부정하고 내 아이는 할 수 있어라며 자기 최면 걸어봐야, 아니 안 좋게 표현해 정신승리 하고 있다고 현실이 바뀝니까?

 

천명의 사람을 초--12년간 교육하는데 4명의 서울대 입학생, 16명의 서연고 입학생, 99명의 서울소재 대학 입학생, 오로지 그들만을 위해 마치 공장에서 규격화된 물건 찍어내듯 문제풀이 기계만 만들어내는 지금의 교육 현실을 지속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세금을 들여 초--12년간 의무교육을 하고 그를 통해 우리 사회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저는 그야말로 극소수, 천명 가운데 4, 16, 99명만을 위한 문제풀이 기계만 만들어내는 교육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은 근대화된 문명사회 입니까?

헌법 11항에 민주공화국임을 만방에 천명한 대한민국은 헌법 조항에서만 민주공화국이 아닌, 어느 누구에게나 대한민국은 현실에서도 민주공화국임을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이 물음에 여러분이 지금 당장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거나 있으려면 사회의 모든 요직과 이권을 사실상 독차지하고 있는 몇몇 소수대학 입학정원을 걸러내기 위한 문제풀이 기계를 찍어내고 있는 교육현실이 바뀌어야 한다고 저는 분명한 어조로 주장하고자 합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가슴 뛰게 하는 이 멋진 구절이 무엇인지 혹시 아십니까?

제가 헌법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조문인 대한민국 헌법 10조입니다.

 

모든 인류는 지역, 성별, 나이, 계층에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가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의 범주를 대한민국에 국한해 생각해 봅시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성별, 나이, 지역,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가정형편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없이 누구나 동등하고 평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허나 교육의 목표가 오로지 살벌하고 살인적인 입시전쟁에서 살아남을 극소수의 승자가 되기 위한 것에만 초점이 맞춰진다면 동등하고 평등한 교육은 결코 실현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경쟁에서 출발선이 다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경쟁이 이뤄지는 동안 주변 여건이나 받을 수 있는 지원이 개개인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인데 그러한 요인으로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부모의 학벌, 집안 재력의 차이, 사는 지역이 핵심 요인으로 꼽을 수 있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 이뤄지는 경쟁이 진정으로 공정한 경쟁이라 할 수 있습니까?

 

이런데도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는 기회, 즉 입시전쟁에는 누구나 뛰어들 수 있으니 기회는 균등하게 주어졌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기회균등이요? 말이 좋아 기회균등이지 기회만 균등하게 주어지면 뭐 합니까? 형식적으로야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졌지만 실질적으로도 기회가 균등하려면 좀 전에 언급한 부모의 학벌, 집안 재력 차이, 사는 지역과 같은 개인의 노력으로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요인이 경쟁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없거나 있더라도 미미한 수준에 그쳐야 합니다.

 

허나 입시전쟁에서 이뤄지는 경쟁은 공정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공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입시전쟁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승자가 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요직과 이권을 사실상 독차지하고 있는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미래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학부모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식이 입시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려고 서로 돈을 쏟아부을텐데 결국 돈이 많을수록 입시전쟁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겠지요?

 

0.4%, 1.6%, 9.9%라는 수치가 보여주듯 살벌하고 살인적인 입시전쟁의 승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우리 교육의 실질적인 목표는 0.4%, 1.6%, 9.9%에 들어갈 수 있는 문제풀이 기계 만드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결국 우리 교육이 지금처럼 황폐화되고 갈팡질팡 하며 여기저기에 휘둘리는 이유는 우리 교육에 확고한 철학이 없기 때문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초중고 12년간 의무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을 교육하며 우리가 추구하는 근본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에 대해 물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실 것입니까?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 해 번 돈에서 정직하게 낸 세금으로 초중고 12년간 의무교육을 하고 학부모가 엄청난 사교육비를 쏟아 붓는 이유가 오로지 서울대를 선두로 하는 명문대 보내는 것뿐이라면, 정말이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그리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해마다 60만 명 넘는 아이들이 0.4%, 1.6%, 9.9%를 위해 12년간 들러리만 서다가 헌법이 보장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모조리 빼앗겨야 합니까?

 

무슨 말만 하면 국가경쟁력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자들의 주장처럼 엘리트를 선별하기 위해서라면 해마다 60만 명의 아이들에게서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빼앗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닌 것입니까? 엘리트를 선별하고자 하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60만 명에게서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과 권리를 빼앗는 작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며 정당성을 가지는 것입니까?

 

저는 입시전쟁을 통해 걸러진 0.4%, 1.6%, 9.9%, 오로지 그 사람들만이 엘리트나 천재라는 주장에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백번 양보해 그 주장이 설사 맞다 쳐주더라도 그들을 위해 60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권리와 기본권을 빼앗기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의 영역입니다.

 

60만 명이요?

말이 좋아 60만 명이지, 우리는 지금 해마다 우리 60만 대군보다 많은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혀서 사회로 내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0.4%, 1.6%, 9.9%의 극소수를 위해 해마다 60만 명의 아이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벌하고 살인적인 입시전쟁에 내몰린 채 학생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모두 빼앗기고 12년간 들러리나 서는 소모품으로 여겨지는 지금의 교육현실이 여러분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불가피한 일입니까? 그 정도 희생은 당연히 치러야 하는 것입니까?

 

저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봐야 진정한 경쟁력이 생기지도 않을뿐더러 그 이전에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해마다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60만 명의 아이들로부터 빼앗을 권한이 저를 포함해 그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육의 목표를 지금처럼 입시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문제풀이 기계를 만들어내는 것에 둘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남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으며 최소한의 상식과 학습 역량을 가진 민주시민을 키워내는 것으로 잡고 우리가 가진 역량을 모두 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자식 귀한 줄 알면 남의 자식 귀한 줄부터 알아야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벌하고 살인적인 입시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아야 하고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은 내 생존을 위협할 뿐이며 내가 짓밟고 올라서야 할 존재일 뿐이라는 식의 소름 끼치고 무시무시한 생각을 품게 되는 괴물이 아닌, ‘나 자신이 귀한 만큼 다른 사람도 귀하다.’ 라는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 있고 현재 교육 체계가 요구하는 정형화된 답을 찾아내는 학습능력이 아닌 스스로 묻고 생각하며 답하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생각의 폭을 넓히고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역량을 지닌 민주시민으로 우리 아이들을 길러내자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승자독식, 약육강식 논리만이 횡행하는 살벌하고 살인적인 현재의 무의미한 입시전쟁은 그만두고 미리 정해놓은 정형화된 정답을 객관식 문제에서 찾아내는 과정을 반복해 생각의 틀을 가둬버리는 방식도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껏 단 한 순간도 생각하거나 고민해보지 않은 교육이 보편적으로 추구하고 지향해야 할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제 답은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민주시민 육성바로 이것입니다. 이런 저의 답이 낯설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할 것입니다. 또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 허황된 주장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으실 것이고요.

 

우리는 초중고 12년간 학교를 다니며 단 한 순간도 자신의 존재 의식에 대해 진지하고 깊게 생각하거나 고민해볼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교육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삶,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여유조차 없던 것이었죠. 결국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없는 불행한 교육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자신을 틀 안에 가둬버리는 생각의 틀을 과감하게 깰 수 있다면 우리 부모 세대, 우리 세대, 그리고 지금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받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의 교육이 있음을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민주시민 육성이라는 대전제가 우리 교육이 추구해야 할 근본 가치임이 사회에 뿌리 내렸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는 문제풀이 기계만 만들어내는 교육이 아닌, 한 명 한 명 모두가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토대를 교육이 뒷받침 할 수 있는 세상을 다 함께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한명 한명이 자신의 삶에 만족 못하는 불행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0.4%, 1.6%, 9.9%에 들지 못한 아이들도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고 마음껏 꿈꾸며 자신의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는 행복한 교육으로 가는 길은 저 혼자 가고 싶다고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결코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같이 가주셔야만 길이 만들어집니다. 저와 함께 그 길을 같이 만들어 가지 않으시렵니까?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고 두 주 후 오후 3시에 뵙겠습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쇼. 지금까지 여러분의 대통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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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응시생 통계는 2011년 기준으로 다큐프라임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구글에서 '인서울 대학 진학률' 로 검색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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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회차, 3회차를 5월 24일, 6월 7일에 올렸는데 실수가 있어 오늘 다시 올렸습니다. 4회차는 6월 21일에 올리겠습니다. 기다리셨을 분들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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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 올릴 때 실수가 있어 2회분, 3회분을 일괄적으로 오늘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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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번째 제언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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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혁명

부제: 교육혁명에 대한 대통령의 제언

 

두 번째 제언-‘교육이란 무엇입니까?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

오늘은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두 가지를 우선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 이 방송은 모든 지상파 채널에서 중계하고 있는데 전파낭비’, ‘시청권 제약 아니냐?’

어떤 분은 기본권 침해 아니냐?’ 라고 하시는 분도 있으십니다.

그러한 의견 역시 일리 있다 생각하지만 교육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교육 백년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육은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일이며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는 우리의 미래를 좌지우지 하고 결정하는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70년이 넘은 지금까지 나라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교육에 대해 사회 전체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 하게 소통해 본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습니까?

그것이 입시제도 변경이던, 세세한 교육정책이건 언제나 결정권은 집권세력 내 소수인원과 교육부처 관료들만이 틀어쥐고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았습니까?

상황이 그렇다 보니 우리 교육은 목표가 무엇이고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 라는 확고한 교육철학 하나 없이 땜질식 입시제도 변경에 그쳐 오지 않았습니까?

저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교육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진지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확고한 교육철학이 뿌리 내려야 한다고 확신했고 소통 방식의 첫 번째로 모든 지상파 채널 중계를 결정했습니다.

 

. 지난 어린이 날 첫 번째 제언 드리면서 서울대를 자주 언급했는데 서울대를 콕 집어 자꾸 거론하는 것이 열등감 표출 아니냐?’ 하는 것과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편향적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 하는 의견에 대한 답변입니다.

 

현재 너무나 견고한 학벌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최고정점에 있는 서울대를 주로 언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뭐 때문에 서울대 나온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겠습니까?

물론 제가 학교 다닐 때 학업 성적이 서울대 나온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어떻게 보면 비교한다는 자체가 의미 없을 만큼 형편없었지만 제가 그거 하나 빼면 서울대 나온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가질 요인이 딱히 있습니까?

제 입으로 직접 말하자면 자화자찬 하는 것 같아 낯부끄럽긴 합니다만 제가 서울대 나온 사람과 비교했을 때 인격이 덜 성숙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국정 운영자이자 최고 책임자로서 최소한의 상식이나 역량이 모자랍니까?

 

제가 그런 사람이라면 여러분들께서 저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셨겠습니까?

 

서울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은 평생을 서울대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나라의 학벌체제는 너무나 견고하며 최고정점에 서울대가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자명하며 그로 인한 병폐가 우리 사회를 얼마나 병들게 하고 있는지,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가는 최소한의 상식이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국정최고책임자이자 헌법상 국가원수로서 견고한 학벌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병폐를 해소하자는 대통령의 생각과 주장조차 열등감 표출로 매도되는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저는 대통령 이전에 평범한 한 사람의 소시민으로서 개탄스럽기까지 합니다.

 

서울대는 우리 사회에서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해서는 안 되는 절대성역 입니까?

서울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은 문제를 제기하거나 의문을 품을 자격을 가지지 못한 것입니까?

저의 이런 주장이나 문제 제기가 서울대 나온 사람들의 비위를 거스르는, 소위 역린을 건드린 짓이기 까지 합니까?

 

제가 견고한 학벌체제의 최고정점에 있는 서울대를 계속 거론하는 것이 열등감의 표출이 아닌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살게 하게끔 우리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라는 것은 앞으로 여러분들이 지켜보면서 판단해주실 거라 생각하며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교육을 얘기하자면 너나 할 것 없이 할 말이 많고 주제를 나눠보자면 열 개로도 모자라겠습니다만 오늘은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보고 그 물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실타래가 엉키고 꼬인 것처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고르는 것도 쉽지 않은 교육, 바로 그 교육 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지요.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오늘은 그 속담처럼 차분하게 원점으로 돌아가 봅시다.

 

도대체 교육이란 무엇입니까? 교육이 무엇이냐 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어떤 식으로든 대답을 했다면 자신이 한 대답의 사유나 출발점이 무엇인지까지 어렵지 않게 답하실 수 있으십니까?

 

어렵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쉬운 문제일수록 꼼꼼하고 신중하게 생각하자’, 이것이 제가 세상을 사는 저 나름의 요령 중 하나입니다.

가뜩이나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생각하면 머리만 더 아프고 해결법이 좀처럼 떠오르기 힘들 것이고 쉬운 문제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실수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사람 저 사람 말이 다양하게 나오고 너무나도 복잡해 보이는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차분하게 원점 혹은 출발점으로 돌아가 도대체 교육은 무엇인가를 묻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가 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뜻에서 한 번 더 묻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생각하는 교육은 무엇입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답을 들을 수는 없는 상황이니 제가 생각해온 답을 해보겠습니다. 그 전에 우선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제가 조금 있다 드릴 답은 제가 생각한 답이지 그것이 단 하나의 정답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개개인도 그렇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마찬가지지만 초--12년간 미리 정해진 단 하나의 정답만 찾아내는 객관식 시험에 길들여지다 보니 마치 세상살이에 모두 단 하나의 정답만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만 어디 세상살이에 단 하나만의 정답이 있을 수 있습니까?

 

각자가 생김새가 다 다르듯, 처한 상황이나 생각도 다 다를 것이고 그렇다면 개개인이 생각하는 과정도 다를 것이고 내리는 결론과 선택 역시 다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교육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제가 하는 대답은 어디까지나 제가 생각하는 답은 이렇습니다.’ 라는 것이지 그것만이 단 하나의 정답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교육이 무엇일까 라는 물음을 가질 때마다 이리저리 생각하던 어느 순간,

교육? 교육이 한자로 어떻게 되더라? 가르칠 교()에 기를 육(). 아하! 가르칠 교()에 기를 육() 해서 교육? 그렇다면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서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교육의 본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 제게 당신이 생각하는 교육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에 대한 답을 간결하게 할 수 있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건강하고 밝게 자라 우리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생각하고 궁극적으로 우리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고민과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 하겠습니다.

 

,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까요?

 

웃자고 한 얘기이지만 정말 여기까지만 해도 오늘 제가 드릴 말씀은 다 드렸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께 드리는 두 번째 제언의 핵심이 우리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 이것이 교육에 대해 정답에 가까운 답이라 가정해 봅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라면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는 목적론 즉, 교육의 최우선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 할 수 있을 텐데 현재 교육의 현실을 보기 전에 우선 법조문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교육기본법을 보겠습니다.

 

2(교육이념)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법조문 찾기 전에는 현실은 어떻든 간에 법조문은 훌륭한 구절로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내심 있었습니다. 가령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길러내는 것을 초-중등 교육의 목표로 삼는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법조문을 찾아서 확인해본 저는 제 기대가 맞은 것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지만 법과 현실의 괴리가 떠오르자 기분이 금방 가라앉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교육 현실이 추구하는 목표 내지 목적은 무엇입니까?

법조문에만 있는 아름다운 구절 말고 지금 우리 교육현장이 실제로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이냐를 묻는 겁니다.

 

무엇입니까?

 

저는 강한 어조로 단언컨대 현재 우리 교육의 목표는 서울대를 선두로 하는 소위 명문대에 보내는 것, 오로지 그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등 교육 12년은 입시전쟁만을 위해 존재하고 입시전쟁의 볼모로 잡혀 있습니다.

오로지 입시전쟁만을 위해 지내야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은 어린이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기고, 중등학생은 잠조차 충분히 자지 못 합니다.

 

 

정신적 성숙기를 거치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보고 자신의 앞날을 마음껏 꿈 꿔 보지도 못하고 설령 그렇게 할라 치면 입시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되기 일쑤이며 그런 고민은 일단 대학에 가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라는 얼핏 보면 점잖아 보이는 충고를 귀가 아프게 들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 아이들은 학생이기 이전에 개개인 한명, 한명이 소중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모든 권리를 모조리 빼앗긴 채 살벌하기 짝이 없는 살인적인 입시전쟁으로 내몰리고, 입시전쟁의 끝자락에서 극소수의 승자 즉, 서울대를 최고정점으로 하는 명문대 입학에 성공한 학생을 제외한 남은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으로서 본격적으로 사회에 발을 내디딜 때부터 살벌하고 살인적인 입시전쟁 이라는 거대한 경쟁의 장에서 밀려난 낙오자라는 멍에를 스스로 짊어진 채 남은 삶을 시작하는 것이 현실이지 않습니까?

 

서울대에 가지 못하는 수많은 아이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극소수의 서울대 입학생을 위해 들러리 노릇을 해야 합니까?

 

서울대에 가지 못한 수많은 아이들의 존재 이유 내지 가치는 서울대 입학에 성공한 사람을 보다 빛나 보이게 해 줄 들러리 노릇 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까?

 

서울대를 갔건 못 갔건, 우리 아이들 중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시전쟁에 내몰려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기인 10대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것도 모자라 서울대 입학생을 위해 들러리 서야 하고 경쟁이 끝나면 낙오자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야 합니까? 멍에를 스스로 짊어진 아이들이 자존감을 가진,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입만 열면 경쟁으로 시작해 경쟁으로 끝내는 경쟁 만능, 경쟁 우월, 경쟁 지상주의 자들에게 저는 대통령 이전에 최소한의 상식과 양심을 가진 한 사람의 소시민으로서 묻고 싶습니다.

 

무슨 연유로 수많은 아이들이 극소수의 서울대 입학생을 빛나고 우월한 존재로 보이게 하는 들러리 노릇을 해야만 합니까?

 

입시전쟁에서 밀려나 일찌감치 자신이 낙오자라는 멍에를 스스로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할 아이들을 보면서 연민은 단 한 순간도 느끼지 못합니까?

 

그 아이들을 보면 오히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경쟁논리, 경쟁질서로만 움직이는 세상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만족하고 있습니까? 희열을 느낍니까?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아이들이 살벌하고 살인적인 입시전쟁에 내몰리고 경쟁에서 이긴 극소수의 인원만이 사회의 모든 이권을 사실상 독차지 한 채 그걸 바탕으로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짓밟고 무시하며 패자부활전은 존재하지도 않는 지금의 현실이 근대화된 문명사회에 부합합니까?

 

아니면 민주공화국임을 헌법에 천명한 대한민국이 마땅히 추구하고 구현해야 할 사회상에 부합합니까?

 

우리는 무슨 권리로 어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를 박탈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슨 권리로 아이들을 입시전쟁으로 내몰아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지 못 하고 덩치만 커져버린 정신적 박약 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 아니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까?

 

지금 당장 아픈 게 싫다고 썩은 살을 도려내지 않으면 몸 전체가 썩어 결국 죽고 말 것입니다. 우리 교육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살벌하고 살인적인 입시경쟁에서 교육을 해방시켜 제자리로 돌려놔야 합니다. 그러자면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우리의 뼈아픈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정직한 눈으로 정확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교육이 본질적인 목표를 잃어버린 채 갈팡질팡하며 입시전쟁에 볼모로 잡혀 있는 불편하고 뼈아픈 분명한 현실을 외면한 채 단순히 입시제도 변경에 그치는 것은 변죽만 올리는 짓에 불과할 뿐이며 기만이고 위선입니다.

본질을 흐리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비열한 짓일 뿐입니다.

 

아주 잠깐, 단 한 순간만이라도 우리 아이들이 입시전쟁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를 놓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고 최우선 과제가 되어 있다고 한번 상상해 봅시다.

 

얼마나 행복한 상상이고 고민입니까?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를 놓고 끝없이 고민하는 것이 교육이라 할 때, 우리 스스로가 저마다 교육 주체가 되어 다함께 생각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교육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나 목표에 부합하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육이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 임을 한 번 더 강조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우리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길러내는데 교육의 목표를 둘 것인가에 대한 답을 여러분께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답은 다음 방송에서 드리는 대신 여러분께 부탁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다음 방송 전까지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답을 여러분 스스로 답해보는 기회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각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스스로 찾아낸 자신의 답을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답과 비교해보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제가 일방적으로 제 생각만 말씀 드리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고 이 방송을 소통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하는 제 생각에 보다 부합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각자 스스로 찾아낸 답을 서로 주고받으며 상호간 소통과 사회적 합의를 향한 머나먼 여정의 첫 발을 내딛기 전에 오늘은 다시 한 번 불편하고 뼈아프며 가슴 아픈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중고등학생이 입시전쟁에 내몰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보며 자존감 있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커나갈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을 포함해 학생이기 이전에 우리 아이들 모두가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모든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 하는 너무나도 가슴 아픈 현실.

 

우리는 이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직시합시다.

 

정직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교육철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뿌리 내릴 수 있게 해주는 위대한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 우리 모두 이제는 외양간이 어떻기에 소를 자꾸 잃는가를 직시하고 다시는 소를 잃지 않게 외양간을 처음부터 다시 세웁시다.

 

2주 뒤 일요일 오후 3시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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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제언은 2주 뒤인 6월 7일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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