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아보니까 사람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좋아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빠지지도 않는 것 같아요. 뛰어난 사람들만이 시간이 갈수록 좋아질 수 있어요. 대두분의 사람들은 나빠질 가능성이 더 많아요. 조금만 방심하면 나빠지게 돼 있는 게 인간이거든요. 35
더 많이 기뻐하고 더 많이 슬퍼하고 더 많이 갈망하시길. 자신의 인생에 더 많은 꿈들을 요구하시길. 이뤄지든 안 이뤄지든 더 많은 꿈들을 요구했던 그 시절의 기억이 당신들을 살아가게 만든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될 테니. 그러니 지금 스무 살이라면, 꿈들! 언제나 꿈들을! 더 많은 꿈들을! 43
그런데 이런 확신의 세계에서는 이야기가 잘 생겨나지 않죠. 이야기라는 건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을 납득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69
그래서 나는 열심히 쓰면 모두가 다 잘될 것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어요. 하지만 열심히 쓰면 좋은 소설을 쓸 가능성은 높아지겠죠. ‘열심히 쓰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어‘와 ‘열심히 쓰면 좋은 소설을 쓸 가능성이 높아져‘는 전혀 다른 말이에요. 그 사이에는 우연과 운 같은 게 숨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쓰는 일뿐이에요. 그 일에서 보람을 찾아야만 하는 거죠. 그 다음에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의 일들이에요. 76
이렇게 되면 운이나 우연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건 길을 가다가 돈을 줍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예요. 탐지기를 매일 들고 다니다가 돈을 줍는 것에 가까워요. 77
복권을 사지 않으면 복권에 당첨될 수가 없단 말이에요.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은 간절함인데, 그 간절함이 반복적인 행동에서 나오는 일이겠죠 68
이거 정말 대단한 일 아닌가요? 제가 완전히 몰입해서 어떤 소설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대단한 일이죠.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개입하는 한 권의 책으로서의, 물질로서의 소설이 된다는 것 말이죠.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112
가족 안에서 우리는 이 고독을 느껴요. 부모와 자식은 평생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에 버금가는 게 바로 연애하는 남녀죠. 우리는 대개 자기밖에 몰라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일이 거의 없는데, 사랑이라는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거죠. 115
돌이켜보면 열심히 산다는 건, 그 많은 나날들을 열심히 과거 속으로 보낸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144
전업작가가 된 이후로 저는 누군가에게 제 시간을 팔지 않고 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수입의 감소,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같은 걸 대가로 치러야만 했지만요. 전업작가가 된다는 것은 24시간을 오로지 자만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150
그렇게 보자면 말이죠, 그 순간 내게 필요한 책은 한 권이면 충분하니까 한 오만 원 정도만 있으면 거기에 꽂힌 책들은 다 살 수 있는 거예요. 물론 한 번에 모두 다 살 수는 없지만, 원한다면 어떤 책이든 다 살 수 있어요. 지금 당장 내게는 한 권의 책이면 충분하니까요. 제게는 미래라는 것도 그런 의미예요. 당장 바로 앞의 시간이 미래인 거죠. 집합적인 미래를 대비하자면, 지금 내게는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해요. 그러자면 얼마나 벌어야만 하는지 계산이 나와요. 그래서 당장 읽을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읽지 않고 일단 돈을 버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런 집합적인 미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당장 눈앞의 순간, 지금뿐이에요. 152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저는 이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책을 다 살 수는 있는 사람이에요. 어떤 영화도 볼 수 있으며 어떤 노래도 들을 수 있어요. 제가 가진 돈이 그 정도는 된단 말이죠. 물론 자가용 비행기를 살 정도의 부자는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 바로 한국에서 파는 음식들은 거의 다 사서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부자는 됩니다. 지금 당장 저는 이처럼 풍요로운데, 왜 한데 묶이지도 않는 미래의 각 순간들을 하나로 묶어놓고 그 순간마다 필요한 돈을 모으려고 애를 쓰겠어요? 한 번에 그 순간 모두를 내가 살 수도 없는데 말이에요. 153
처음 말했듯이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지요. 지행합일이라고 아는 바를 행동하면 사람은 바뀝니다. 그런데 아는 걸 행동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이젠 책을 더 안 읽어도 될 정도로 아는 것은 무척 많은데요, 머리속의 그 아는 것들은 저를 조금도 바꾸지 못해요. 현미밥에 채소를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잖아요. 하지만 매일 그렇게 먹어야 바뀌는 거죠. 매사에 정직한 삶이 좋은 삶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은 없죠. 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는 한은 그대로예요. 154
더 나아가서 지행합일이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라는 뜻인데, 이 말은 행하지 않으면알지 못한다는 뜻과 마찬가지니까 처음에는 제가 아는 것이 무척 많다고 했지만, 그중에서 행하는 것이 거의 없다면 이 말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과 같다는 뜻이 되는 거죠. 그러니 바뀔 수가 있나요? 그런 점에서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이 할 수 있어요. 155
글을 쓰지 않고, 막연하게 써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 아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다는 말과 마찬가지예요. 글을 쓸 때에만 우리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156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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