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됐지
이성호 지음 / 말글빛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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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와 이야기를 할 때,충고를 한답시고,엄청나게 어렵게 둘러 이야기 하는 성향이 있다.아이가 4살이든,10살이든지 간에...나름대로 풀어 이야기 한다는 것이 나 스스로도 어찌하다 이야기가 묘한 곳에 닿아있는 경우엔 수습하기가 쉽지 않다.

 

연세대학교 교육학과 이성호교수님의 책은 어렵지 않다.일단,무슨 말씀을 하시고 계신 것인지..어떤 부분이 가려운지 정확히 알고 긁어주는 엄마의 손길 같다.(나는 아이의 등을 긁어 주어도 늘 핀잔을 먹는다.등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 것도 노하우가 있어야 하나보다.)

 

예전에 나는 정말 잔소리를 싫어했다.엄마의 잔소리,선생님의 잔소리,정말 듣고 싶지 않아 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듣기의 대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였던 적이 있다.그런 내게 결혼은 한 귀로 듣고,흘려 버리기엔 너무도 엄청난 양의 잔소리가 나를 둘러 쌓았다.신랑의 잔소리,시아버지의 잔소리를 위장한 옛날 이야기,아마도 아버지의 최고의 잔소리는 밥상 앞에서 였을 것이다.짜다.싱겁다.맵다.어머니를 늘 좌불안석하게 만드시는 아버지의 잔소리는 결국 모두 나를 향한 소리임을 알게 되었을 쯤에 아버지는 우리들 곁을 떠나셨다.그리고도 가끔은 아버지의 잔소리가 들린다.때론 그 잔소리를 듣기 위해 집중할 때가 있다.얼마나 다행이였나 아버지의 잔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던 아버지의 어린시절 이야기,숱을 팔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사주시던 막걸이 한사발 이야기.청계천 다리 및에서 볼펜을 팔던 이야기.이제는 들을래야 들을 수 없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그리워지기 까지 했다.그래도,다시 듣게 된다면,아마도,껄껄 웃으면서 맞장구 치며 나도 즐거워 할 수 있을런지..그 때 가봐야 알겠지만...

 

저자는 교육자로써,그리고,아들로써,아버지로써 남편으로써,제자이면서,스승의 현재의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 준다.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됐지.라며..

 

관계맺기,사귀기란 가족,이웃,그리고,나 자신과와도 끊임없이 배워서 익혀야 하는 전문분야이다.아이의 옹아리를 알아 듣고 반응하는 엄마들은 자신이 알아 듣고 있다고 확신하기도 하지만,아이의 표정과 소리에 집중하여 알아 듣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아이가 나의 잔소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듣기 싫기 때문일것이다.빈번히 같은 소리를 하며,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아이를 몰아세우는데 어찌 좋을 수가 있을까?유일하게 나의 잔소리가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아이가 아플 때,그 땐 아이의 모든 반응에 집중하여 아이를 간호한다.열이 나는지.배가 아픈지.코가 누런지.하얀지.밥은 먹을 수 있는지..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알아서 찾아가며 헌신하며 간호를 한다.

 

아이와의 관계 또한 저자의 이야기처럼 나의자아영역과 아이와 나의공감영역그리고,아아의 자아영역이 만들어가는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안락지대를 보유하면서  적당한 양과 질의 공감영역을 갖는 것을 익혀 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접촉지대인 공감영역 안에서 어떤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p79

 

관계적 사고력

큰 아이가 1학년 때.서로 관계 된 것을 찾으시오라는 질문에 아이는 찾아만 보고는 시험을 보았던 적이 있다.찾아만 보라고 그랬지.줄을 그으라는 말이 없었다나....저자의 말처럼 세상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관계맺는 것이다.누구누구는 쉬워 보이기는 하지만,그 나름대로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너무나 당연시 되는 평범한 문제라도,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관계가 편안해 질 수 없을 것이다.이성호 교수의 말씀처럼 기다려 주면,아이는 알게 된다.또한 어른도 그러할 것이다.포기가 아닌 인정과 따뜻한 격려로 말이다.이제 우리 아이도 시험 볼 때.줄 긋기는 잘 하고 온다.

 

아이에게 가끔씩 물어본다.사실 협박에 가깝다고 해야하나,"엄마 잔소리 듣기 싫지 않니?엄마도 말하기 짜증난다.사실 힘들어~"아이의 반응은 두가지로 나온다.엄마가 나를 싫어한다는 건가?또 그런다 또,누구 엄마고 누가 자식인지 선을 긋지 않으면,우리 모녀의 대화는 알아차릴 수 가 없다.사람이 이렇게 형편없이구는 어리섞음은 아이와 나를 힘들게 하지만,알아차리고 반성을 하게 되면,미묘한 변화가 시작 된다. 

 

"엄마?정말 궁금한데,하느님은 왜 천사와 악마 두가지를 다 만드셨을까?"

"엄마?정말 궁금해서 그런데,사람은 왜 고기를 먹을까?"

"엄마?사람은 왜 죽어야하는 거야?"

아이의 질문은 언제나 대답하기 모호한 질문을 한다.혹은 너무 익숙해져 질문으로 생각지 못하던 것들을 물어본다.하지만,정작 아이는 질문을 하곤 나의 대답해 주면,듣는 둥 마는 둥..나는 심각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데...그럴 때.나는 다시 한번 되묻는다."너는 왜 그렇다고 생각하니?왜 그래야만 했다고 생각하니?우리 잠깐만 생각해 보자,엄마도 생각해 볼께"아이의 대답은 너무 획기적이거나,혹은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금새 잊어버린다.하지만,나에겐 그 질문은 다시 되씹어 보게 된다.그리고,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왜 그래야만 했는지 생각하고,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어불러서 살아가는 세상은 질문과 그에 적합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서로 문제를 만들고,해결하는 과정에 오류가 생겨나면서,불신이 생겨나게 된다.정말 우리가 그 답을 알 수 있을까?누가 옳은지,누가 틀린지.아이가 던지는 질문들처럼 가장 단순한 질문일 수록 답은 내가 헤아려 보아야 하는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숨이차오른다.

 

난 하느님이 아니고,신랑이 아니고,아이가 아니고,말 많은 이웃 아줌마가 아니다.다만,가정을 하고 그들인 것처럼 동일시 하여 생각하고,그것이 맞을 것이라고 착각할 뿐이다.착각은 오해를 만들어 불편한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그래서,헤아려 보는 힘..옳은 것을 선택하는 힘,힘이 되는 잔소리가 필요하다.아마도 우리들에게 그렇게 힘이 되는 잔소리를 들려 주고자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는 듯 싶다.

 

따끈한 아랫목에서 갓 구워 속살이 노란 따끈한 고구마를 나눠 먹는다.이야기를 나누며,한 입 베어먹을 때 마다 입 안 가득 피어오르던 달콤함을 함께 나누어 주는 저자의 고구마를 건네 받고는 호호 불며 기다린다.작은 한 입에도 불구하고 밀려 드는 행복에 미소를 지어 보게 된다.혼자 먹기엔 너무도 맛이 좋은 고구마 함께 나누고 싶다.고구마 굽는 냄새가 집 안 가득 넘쳐 나게 내일은 시장을 들러야겠다.아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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