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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척 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 - 상
A.J.제이콥스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종교는 내게는 좀 어렵고 무겁게 느껴지는 내 삶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에 하나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중 첫번째가 아닐까싶다.나도 저자처럼 미친 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볼 엄두는 내지 못하겠지만 한번쯤은 미처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미친 척하고라는 뜻은 진심은 아니지만,한 번 해 본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한 번 해 보는 데도 그 정성과 열의는 실로 미친사람처럼 보일 정도를 열심히 성경 말씀만을 따라 1년을 살아간다.
성경은 아주 다양한 언어로 그리고,다양한 책으로 번역되어 있고,번역된 성경의 종교의 특색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져 있다고 한다.그래서 저자는 자문위원단을 구성하여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 다양한 의견을 수렵하며 저자 또한 상상을 초월 할 만큼의 성경을 주문하고 읽어낸다.
의도된 경험이긴 하지만,저자는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그대로 수용하려고 노력한다.나는 가끔씩 이해되지 않는 종교적인 강요나 설교는 완전히 거부한다.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노골적으로 비난도 해가며 저자의 비 종교적인 가족들처럼 때론 비신사적인 마음가짐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성당에 가곤했다.어찌도 그리 발걸음은 더디가고 시간은 더디가는지,어째서 그리도 지겨운지 실로 안타가울 지경이였다.
무엇보다 종교는 자발적인 선택의 이끌림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신과 나와의 사이에서의 관계는 그 누구도 강요해서도 안되며 매우 조심해서 다루어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생각없이 내뺃어지는 말한마디가 종교와의 얇은 막으로 지탱하고 있는 것을 겹겹의 셀로판지를 겹쳐놓은 것처럼 시야를 어둡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함께 종교를 경험해 본 아이들은 주변의 어쭙잖은 강요에서 그다지 큰 동요가 일어나지 않지만,사춘기 혹은 나의 간절한 의도가 없이 선택한 종교는 계기가 생기지 않고서는 마음을 통하기가 쉽지 않은듯하다.주님이 나를 부를신것이 확실한데도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지 늘 확인할 수 없어 안타가워하기 때문이다.
성숙하지 못한 자아는 언제나 불만의 목소리로 나를 표현한다.그 것은 종교뿐만 아니라 결혼 생활 더 나아가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저자는 무모해 보이는 일을 도전하고 그 만의 방식으로 도전과정을 즐기며 누가 보아도 험난해 보이는 그 길 위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성격인 유머로 어려움을 헤쳐나가고,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자신이 할 수 없는 일,하고 싶은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구별 해 가며 체험과정을 극복해 나간다.1년동안 성경말씀대로 살기 위한 그의 생활은 어찌보면 보이기 위한 저자의 글쓰기 위한 이벤트에 불과해 보일 수 도 있겠지만,그에겐 확실한 동기가 부여된 1년 동안의 체험은 저자 자신을 그리고,글을 읽는 내게도 사뭇치는 것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나에게 종교가 가슴에 사뭇쳤던 구절이 있다.천주교에서는 성가정의 날이 있다.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지만,그 날 신부님의 말씀 중에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십자가에 못박히셨다.자신의 영광된 자리를 보장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고난을 선택하시고 십자가에 스스로를 결박했다는 것이다.그럴게 숫하게 들어 온 이야기 인데 그 날은 다르게 들렸다.내게 신은 가혹하고 잔인하고 자비심이 없는 권력자의 모습으로 무섭고 두려운 존재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그렇게 두려우면 말 잘 듣고,순종적이면 문제가 없겠지만,태생적으로 반항적인 성향은 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은 강요에 지나지 않았다,그런 마음 속에 자비로운 성자의 모습으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시는 듯한 감동이 밀려왔다.그 때 느꼈던 그 감동은 지금도 간직하려고 애쓰고 있다.그리고,그 후부터는 일요일마다 성당에 가는 것이 억울하지 않았다.
천주교나 기독교 모두 성경을 통해 신앙생활과 더불어 일상생활에 접목시킬 수 있도록 가르침을 준다.
성경책을 열심히 읽어 본 적이 있다.딸아이의 주일학교에서 칭찬스티커를 받기 위해 저녁마다 정해져 있는 성경구절을 읽어 주는 것이였다.나를 위한 성경읽기였다면,못했을 것도,자식을 위해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도 스티커를 받아 주기 위한 너무도 비종교적인 목적으로 읽어 주었던 것인데도 성경책의 이상한 말투가 싫지 않은 경험을 해 보게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성경책을 읽어 보게 되었다.잠언서와 전도서를 읽어 보았다.그의 말대로 종교적인 나와 비종교적인 내가 엇갈려가며 때론 순응하여 때론 말도 안된다는 투로 거부를 하며 서로 중심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었다.순응하지 못하는 반응을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또한 나의 모습이기에 문제의 근원을 찾아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새삼느낄 수 있었다.
종교란 때론 스스로 너무도 자기애적인 성향으로 타인의 종교에 대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어지스러움과 비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가 있다.성경에서도 어느 구절에서는 왼쪽빰을 때리면,오른쪽빰을 내어주라고 하였다가,신을 거부하는 자에겐 지옥불로 낙향시키는 모습은 내가 종교라는 틀에 갖히기 싫어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이다.(아직은 사랑보다는 두려움이 크다)하지만,하느님,신,저자가 나홀로 종교의식을 감행하였던 것처럼,나 또한 지금은 성당 안에서 받는 위안보다는 내가 스스로 지어 놓은 성전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말씀을 따르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끼고 있다.저자는 믿음에 충실한 자들을 보면서 그 순수한 의도에 감동하고 때론 부러워한다.그것은 나또한 내 안의 주님과 아직 소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도 공감하며 안타가워하고 있는 부분이다.
종교란 내가 절실할 때 언제나 나의 곁에서 마음을 의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이 것은 급박한 상황에서 기도를 드리는 에이제이의 순수한 기도처럼 나 또한,삶의 한가운데에서 돌부리에 걸려넘어져 다시 일어나 걸어야 할 때 엄마야~하고 소리치듯 두 손을 부여잡고 머리를 무릎사이에 묻고 반사적으로 기도를 드리게 된다."주님 저의 아이를 도와주십시오"그리고,약속을 한다"앞으로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겠습니다"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엄마의 호통에 겁이질려 순간 울면서 매달리듯,나 또한 아직은 스스로 나의 삶에 책임을 지지 못하고,두려움에 종교에 순응하는 척을 할 뿐이다.그러하기에,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 중엔 기독교이면서 기독교적이지 않은 사람,천주교도이면서 편협하지 않은 사람,절에 다니면서 매우 개방적인사람,나의 것만을 좋다고 강요하지 않는 사람,그리고,자신의 종교를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책을 읽다보면,저자와 나의 사이에 다리 역활을 해 주는 통역자가 있다는 것을 가끔은 잊어버린다.나의 턱없이 부족한 외국어 실력에도 불구하고,뉴욕에서 살고 있는 저자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준 이수정옮긴이가 저자를 만나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책 이야기에 부록으로 더해져 더욱 저자와 친밀함을 느껴 볼 수 있었다.
종교적인 지식이 워낙에 문외한 나에게 저자의 1년여의 생활은 내가 가고자 하는 종교의 믿음의 길에 대한 두려움을 그의 경험을 엿보면서 대리만족과 어려울 수록 더욱 기지를 발휘하는 맨솔맨 에이제이덕분에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마태오13:14~13:42) 중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마르코 4"10~12:루가 8:9~10)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알아 듣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 보지 못하리라,
이 백성이 마음의 문을 닫고
귀를 막고
눈을 감은 탓이니,
그렇지만 않다면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 서서
마침내 나한테 온전하게 고침을 받으리라'
예수께서는 언제나 비유로만 이야기를 하셨다 한다.보는 것을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하였고 듣는 것을 들으려고 했으나 듣지 못하기 때문에 감추어도 깨달은 자는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경험과 과정이 종교적으로 옳고,그름을 떠나서 그의 과감한 선택에 감사할 뿐이다.저자의 사고방식처럼 내게도 무릇 간절히 바라고,사뭇치는 것이 있다면,감추어 놓으신 비유의 말씀을 깨달는 날이 올때까지 나에겐 1년이 아닌 평생을 바쳐야 열릴 수 있는 문이 될 지라도 두드려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