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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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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실속 슬픔, 슬픔 속 현실 


비극의 땅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중 올리브나무와 한 노인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노인과 그의 가족들은 오로지 올리브 나무로 그들의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이웃인 이스라엘 정착민에게 돌멩이 테러가 발생했다. 안타깝게도 범인을 쉽게 찾으 수 없었던 탓에 죄는 전혀 관계없는 노인과 그의 가족에게 씌워졌다. 그가 기르던 올리브나무들이 시야를 가렸다는것이 이스라엘 당국의 입장이었다. 결국 이스라엘은 그 노인과 가족에게 생명과같았던 올리브나무들을 모두 벨 것을 요구했고, 노인은 결국 그 나무들을 벨 수밖에 없었다. 올리브나무를 베던 날, 이스라엘 군인들은 노인에게 톱을 주며 직접 자르라는 잔인한 명령을 내렸고, 노인은 웃고있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피눈물을 흘리며 자식같이 키워온 올리브 나무들을 베었다. 이 일화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지극히 많은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들 중에 하나이다. 이런 일련의 이야기들을 이 코믹저널에서 접한 후 나는 몇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과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는것에서만 그쳐야 하는 문제인가? 또한 그 땅에 존재하는 아랍인들의 핍박을 우리는 과연 진짜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나면 팔레스타인의 "실상"을 알수 있다. 글로만 접했던 그들의 눈물은 이 코믹저널 속에서 내게 현실이 되었다. 글로된 책을 통해 머릿속으로 그렸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상상은 그 이상의 '참담함'으로 확인되었다. 작가는 그 참담함 속에서 담담히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옮겨놓았다. 부당하고 억울한 그 땅의 역사, 주변국들과의 정치역학도 아닌 '현실' 그 자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예전에도 "존재했"지만 지금도 "존재하"는 팔레스타인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무죄추정의 원칙도 보장받지 못한 채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은 고문을 경험하고,  지옥과 다름없는 감옥에 수감되는 일을 일생에 한 번쯤은 겪어야하는 성인식으로 여기며, 가족과 친구를 잃는 일을 일상다반사로 받아들인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 이스라엘은 정착촌 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한편 테러와 상관 없는 자들의 진실은 왜곡하고 탄압한다. 또한 최소한의 삶의 질을 파괴하고 경제적인 자유와 권리마저 그들에게서 빼았는다. 자유도, 행복도, 희망도 없는 죽음의 땅에서 팔레스타인 일들은 지금도 살고싶다고 울부짖고있다. 그것을 이 코믹저널은 분명하고도 사실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조 사코는 이 코믹저널 속에서 팔레스타인의 테러활동을 옹호하거나 마냥 유대인의 시각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의 과격행위나 인격적으로 모순되는 이슬람교의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스라엘의 부조리함만이 강조되는 편향된 의견이 이 책의 주 내용 이라고고 말할 수 있으나, "사실"을 드러내는 것과 "사견"을 드러내는 것은 엄격히 다르다. 그는 단순한 "사실"만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비판이 적용될 수 없다. 오히려 키부츠와 같은 공동체사회만을보고 이스라엘을 긍정적으로 보는것이야말로 숨은 사실을 외면하는 행위일 것이다. 유대인과 아랍인이 인간의 존엄성 하에서 최소한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함에도 실제는 한 민족이 조롱 받고 있고 그 반대는 호위호식 한다면 이것이 차별의 문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조 사코는 그 '사실'을 밝히고 있다.

 

    한 시위 장면이 생각난다. 중동지역 유일한 민주주의가 발전한 이스라엘에서 그나마 볼수있었던 팔레스타인의 인권신장을 외치던 유대인들 무리를. 그러나 유대인이라는 한계속에 그들은 팔레스타인의 아랍인과의 백프로의 공감에는 실패하고,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그들은 그렇게 '보여지는' 시위만 했을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에게는 그저 교양있는 시민으로서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시위였다. 그러나 그 유대인들이 시위장에서 사라지자 울부짖는 몇 명의 사람들이 또다시 시위를 이어나갔다. 그들의 목소리는 살려달라는 목소리였다. 동정이나 관심에서 끝나는 '내일'에 관한 문제가 아닌 지금 당장 오늘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울부짖음이었다. 그러나 곧 그들은 군인들에게 매질을 당하고 개처럼 지프차에 끌려갔다.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은 우리의 교양을 위한 동정을 거부한다. 그들은 '오늘'을 살고싶어서 거리로 나간다. 언제쯤 그들이 그들의 인생이 아름답게 꾸려질 수 있을까?

 

 

 

     코믹저널이라는 신선한 장르를 접했다. 결론은 참 좋았다. 특히나 이렇게 글로써 상상할 수 없던 그 사회의 구석구석의 모습이 한눈에 드러나서 참 좋았다. 명장면을 올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엄연히 불법이니까.. 조 사코의 코믹저널은 앞으로도 애용해야겠다~

 

 

 

 * 내가 뽑은 명문구 *



- 38p) 내가 언덕 위로 반쯤 올라갔을 때 외침 소리가 들렸다. 적은 숫자지만 그것은 분명 시위였다! 한 50명 정도.... 앙들과 여자들도 한데섞여.... 그들은 약 10야드를 행진했다. 목청껏 구호를 외치며... 바로 2분 전에 내내 외쳐댔던 구호보다 훨씬 큰 소리로! 그렇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명을 걸고 외치고 있었다!


- 58p) 동방에서 온 유대인들하고는 잘 해나갈 수 이써요. 이란이나 아프리카에서 온 유대인들도 괜찮죠. 하지만 유럽 출신의 유대인들... 그들은 다르죠. 그들은 언제나 지배하려고 하고 차지하려고 해요. 당신은 사람이고 나도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람이죠. 모두 흙에서 만들어졌죠. 로마, 비잔틴, 십자군, 터키, 영국 모두 이 땅을 차지했었죠. 지금 그들은 어디있죠? 모두 사라져버렸죠. 지금 소련은 어디있죠? 사라져 버렸죠. 우리 모두는 사라집니다. 이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건 하느님의 힘이오. 오직 하느님만이 위대하시오.

- 60p) 골다메이어 수상은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팔레스타인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나타나서 그들의 나라를 뺏지는 않았다. 그런 민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민족은 '존재 했고', 아직도 '존재한다'. 그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은 아직도 피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그럭저럭 정착해서 사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난민인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염원이 있는 한은...


- 213p) "다시 감옥에 갈까 겁나지 않으세요?" "감옥에 다시 가든 안 가든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여기도 감옥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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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 역사 모노드라마
하워드 진 지음, 윤길순 옮김 / 당대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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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언제나 맑음?

 

 

    지금의 뉴욕은 과연 행복한 도시일까? 훤히 드러나는 마천루와 도시 곳곳을 채우는 관광객들, 손에 커피를 쥐고 돌아다니는 월스트릿의 회사원들은 뉴욕을 눈부시고 화려한 도시인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화려함이 뉴욕의 전부라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뉴욕의 뒷골목과 거리에는 화려함과 대비되는 그늘이 져 있다. 커피 한 잔 살 돈을 요구하는 거지들과 푼돈에 쫓기는 노동자들, 먹을것을 찾아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들. 이  어두은 모습도 뉴욕이다. 성공했지만 실패한 도시인 뉴욕에서, 마르크스는 진짜 실패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우리들이라며 손가락질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았던 런던 소호의 진창길의 노숙인들이 이백년가량 지난 지금의, 그나마도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자본주의의 중심인 뉴욕의 소호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것을 보며 한탄한다. 그리고는 그의 반성어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르크스는 과학 기술과 자본주의 경제가 현대세계를 양적으로 팽창시켰음에는 두말없이 동의한다. 그러나 그 반면에 "상품"이 인간의 "노동가치"를 앞서버린 부분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지적한다. 또한 인간이 아닌 상품이 주체가 되어 세계를 움직이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그는 그 이면에 자본주의를 교묘히 이용하는 부르주아 계층들의 횡포가 있다고 폭로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현해야 한다며 인간의 고군분투가 인정받는 세상이 도래하기를 부추긴다.

 

    사실 그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도 우리를 나무랄 처지에 있지는 않다. 그도 사상가였을 뿐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인 예니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이 책에서도 그에게 직구를 날린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선언'을 졸리다고 표현하면서, 글보다 행동이 앞서는 혁명을 그에게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딸인 엘레아느로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엘레아느로는 직접 링컨 대통령에게 남부 연방군에게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편지로 써서 부치고, 주일법에 대항하여 사람들을 조직했다. 즉, 그의 주변 가족들이 혁명을 말하고 직접 쟁취하기까지 한 모습을 회고하며 지난 세월동안 엉덩이에 뾰루지만 나도록 앉아서 글만 쓰고 말로만 사회주의를 외치던 스스로를 반성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되지 않기를 바라며 혁명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는 그 사상 자체에는 결함이 없음을 책을 통해 다시한번 고수한다. 그는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자신이 실패했다고 떠들어 대는 세상을 향해 호통친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의 중심인 뉴욕이야말로 실패한 도시라며 그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들을 조목조목 따져 살핀다. 노스 캐롤라이나 노동자들의 참사등의 사건들을 내세우며 지금 거리의 거지들이 과연 왜 생겨났는가에대한 반문까지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쉽사리 해명할 수 없다. 분명한 이 사회의 문제점들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나로서도 우리 사회의 실패들이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한 적어도 모두의 승리라고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려 자본주의에 성공한 부유층이 있는 반면 노동자들은 패자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가 세습까지 된다면 우리는 마르크스가 말한 착취의 연결고리를 영원히 끊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장했을 것이다.

 

    사실 세계는 아직까지 '진짜 사회주의'의 성공여부를 가려내지 못했다. 구 소비에트연방은 이 책의 마르크스가 말하듯 독재와 살인으로 얼룩진 가짜 사회주의 (스탈린주의) 였으며, 가장 이상적인 사회주의 공동체였던 파리코뮌은 성공을 앞두고 진압당했다. 또한 소비에트연방을 성공한 사회주의라고 치부하더라도, 결국에는 소련과 몇몇 국가들만 동참한 부분적 연합체였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사회주의 혁명의 요건으로 제시했던 초국적 프롤레타리아 연합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뉴욕에서 제대로 시험도 해보지 못했으면서 사람들이 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떠드는 것에 언짢아 한다. 

 

    그의 주장이 일리있게 느껴지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이 과연 완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는가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상하관계를 무너뜨리고 평등 속에서 노동자 전체의 초국가적 연합체를 주장했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소련의 모습은 괴리가 있어보인다. 노동자계층이 국가를 운영했으나 노동자 계층 안에서도 상부와 하부구조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스탈린과 그 친구들은 지배자 계층에 서서, 정치적 라이벌들을 숙청하고 국가를 그들의 독재속에 운영했다. 예닌은 이를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이 "왜 혁명가들은 6명 이상 모이면 누구를 제명하지 못해 안달"이냐며 사회주의의 혁명가들의 모순을 지적했다. 또한 소련은 지나친 양극체제로 세계를 이원화시켜 '애국심'에 가린 경쟁구도를 양성시켰다. 이는 곧 동료가 될 수 있었던 다른 지역의 프롤레타리아들의 반발을 샀고, 사회주의로부터 돌아서게 만들었다. 바쿠닌은 그래서 무정부주의 운동을 펼쳤는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의 충고에 우리는 조금은 귀를 기울이고 경계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된다. 어찌되었든 그가 예상한 국경없는 자본주의 세계가 오늘날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전 세계가 몇몇 소수의 자본에 의해 독점되는 날이 멀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초국적 자본력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사회주의를 수용한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 힘든 실정이지만, 우리 사회에 내재된 부의 흐름을 다시 정리해보고 부당함 정도는 느껴야 하부에 불합리한 지금의 이 체제에 보완책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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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사 궁금증 300문 300답 - 곽해선의 어려운 경제정보 쉽게 읽는 법, 최신개정판 300문 300답
곽해선 지음 / 동아일보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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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제 나도 읽을수 있다! 경제기사!"


    이 책은 경제영역이 다루는 폭넓은 범위에 대해 다양한 설명들을 제시한다. 경제적인 변수가 일상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서부터 한 나라가, 세계가 어떻게 어떻게 변화하고 대응하는지를 차근차근 인과관계로 설명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쉬운" 예들을 제시한다.


    정작 나는 자본주의세계에 살아가면서, 자본주의스럽게 살고 있었나 라는 반성이 들게했다. 경제적 이치를 알고 대응해야 마땅함에도 단순히 '저축이 좋은것이다' '안정감있게 살자'라며 자본주의적 삶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매번 터지는 경제사건때 피해를 봐야만 했고, 속수무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나면 경제기사를 읽고싶다는 의욕이 생긴다. 경제기사를 읽는다함은 현재의 경제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하여 가까운 미래의 경제변동을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절대적 해답은 내려주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대응 경우의 가지수는 생각하게끔 만들 수 있는것이다. 이렇게 경제를 예의주시하는 자세야말로 자본주의사회에서 패자가 되지않기위한 경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이 사회의 경제에, 곧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유연하게 행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앞으로는 이 책을 계기로 경제기사를 스크랩하고 공부할 생각이다. 앞으로 열심히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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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게의 전쟁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지금 보이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을 썼습니다."


    책 커버에 쓰여 있던 작가의 말, '지금 보이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을 썼다.' 이 말을 처음에는, '무슨 소리일까? 괜한 말도 안 되는 무한 긍정의 이야기인가?'라며 평소와는 다른 그의 이야기 전개에 이도저도아닌 신파극으로 끝날까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책 말미에서는 그가 정작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 진부한 '정의'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선악을 떠난 이야기였으며 오히려 주인공들은 세속적으로 묘사되기까지하였다. 정의의 추구나 선악의 구별보다 작가가 더 무게를 실어 말하려고했던 것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이다. 원칙적이고 무감동한 현실에 '희망'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는것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이 소설 속에서 통렬한 인생극으로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내일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에 감동하게끔 만든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준페이라는 등장인물의 선거 승리를 통해서 각자 자신들 인생의 아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든다. 즐거운 보통사람들의 역전이라는 데에서 단순히 개인의 승리만으로 끝나는것이 아닌 '연대'의 승리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들이 거두는 이 '연대'의 승리에는 세 가지의 세부적인 승리가 숨겨져 있다.

    준페이의 당선이 가지는 첫번째 의미는 어미 게의 원수를 그의 자식들이 갚는다는 내용인 '원숭이와 게의 전쟁'이라는 제목과 관계가 깊다. 바로 '복수의 성공'이다. 등장인물 중 미나토와 유코는 어린시절부터 품어왔던 원한과 아픔을 복수의 성공으로서 보상받고 있다. 그들에게 그러한 아픔을 주었던 대상은 '기득권층'이며, 준페이의 맞상대 현 5선의원은 그 '기득권층'을 상징하는 궁극적인 복수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유코는 어린시절 자신의 가족에게 직접적으로 아픔을 준 그를 복수의 대상으로 삼고있으며 미나토는 그 의원과 직접적인 원한관계는 없으나 그런 복수를 시행하는 유코를 응원하면서 자신의 '실패한 복수'를 보완하고 유코의 온전한 복수에 참여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미나토는 유코에게 '복수'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유코로부터 진정한 '복수'의 기회를 제공받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살인이라는 방법을 통한 보복은 미나토에게 더 큰 상처를 줄 뿐이었고 그의 복수에 연관되어버린 준페이를 통해 유코는 진정한 복수가 무엇인지 미나토에게 보여주었다. 이에 미나토는 그런 유코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녀를 도와주는 행위를 함으로써 온전치 못했던 자신의 과오를 채우게 된다. 그때야 비로소 죽은 부모님이 그에게 웃어주었고, 미나토도 해방감을 맛볼 수 있게되었다. 진짜 복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준페이가 5선의 원을 누르고 당선된 것은 이러한 각기 다른 방식의 복수의 온전한 성공을 가져다주었고, 그들의 아픔을 기쁨과 새출발로 전환시켜주었다고 볼 수 있다.

    준페이의 당선이 단순한 개인대 개인의 복수의 이야기만 내포하고 있지는않다. 준페이의 당선은 자신과 맞서는 것을 통해 스스로의 변화를 유도해내기도 한다. 그를통해 진정한 사랑과 정착된 삶을 누리게된 사와, 불우한 가족사를 이기고 당당한 모습으로 사회에 마음을 열게되는 도모카, 준페이를 도와주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것만 같았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 도모키 모두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이야기를 내비친다. 준페이의 당선은 그렇기에 무기력하고 용기없던 자신을 떨쳐내게 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준페이의 당선은 이 소설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을 '희망'을 찾는 것과 연관된다. 미쓰키는 그러한 희망을 대변하는 인물로 적합하다. 도쿄의 언저리 가부키초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결국 아키타에 자신의 인생을 정착시키는 모습까지, 미쓰키의 인생역전은 그와 유사한 조금 낮은 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보통사람들에게 따뜻한 희망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아 보인다.

    준페이를 통해 작가는 결국 '내일'을 바라보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 어쩌면 그가 승리하지 못했더라도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인생에 전환점을 맞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준페이가 그 주변을 둘러싼 관계들에 직간접적으로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앞날은어디서 어떻게 풀릴지 모른다. 때문에 아무리 암울하더라도 우리는 늘상 우리의 삶에 잘 풀릴것이라는 희망을 가져야한다. 작가는 이 중요한 메시지를 다양한 인물들이 섥힌 승리속에서 밝히고자 했을것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이번 소설에서도 전작과 비슷하게 소설을 전개해나갔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출연시키고, 그들의 관계를 이리저리 연결시켜 결국 하나의 사건이 가지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역설했다. 그렇기에 희망의 파급효과는 배가되었고 더욱더 작가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해주었다.

    자세히 들어다보면 우리의 세상은 저마다의 인생극장이 펼쳐지고 있는 무대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의 무대는 실오라기처럼 서로 이리저리 단단히 묶여있다. 어느 한 무대가 성공하면 그 다음 화려한 막이 올라가듯 우리의 무대도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현실이 힘들다고 좌절하지는 말자. 결국 누군가에 의해 우리도 희망을 경험할 수 있다. 어쩌면 벌써 우리는 희망을 실현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준페이와 그 주변인물들 처럼 환하게 웃을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가 뽑은 명 문구*

 

- 409p) "참 신기한 일이야. 이젠 아무것도 필요 없어. 이제는 아무것도 갖고싶지 않아.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생각하니까 비로소 가장 원했을것 같은게 저절로 굴러들어오네. 정말 신기해.

 

- 496p) "준페이 같은 사람이 정말로 국회의원이 된다면 왠지 가슴이 뻥 뚤릴것 같지 않아? 딱히 누구한테 괴롭힘을 당하면서 살아온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보복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자잘하게 속상한 일쯤은 있게 마련이고, 그게 자잘한 일이라며 참고 살아가는 거잔항? 물론 준페이가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지진 않겠지만, 왠지 그런 자잘한 인내 같은게 시원하게 날아가 버릴 것 같거든. 모두 그런 마음으로 준페이를 응원하는 거 아닐까. 오랜 세월 품고 살아온 짜증을 하나씩 지워 나갈 기력은 이미 없더라도 말이지."

 

- 503p) 수백 명의 군중이 아직 아무도 올라서지 않은 선거차를, 마치 거기에 자기들의 '행복한 모습'이 있기라도 한 것 처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밧줄이 쳐진 위치까지 나아간 미키는 자기 눈에 눈물이 어려있는 걸 알아챘다.

 

- 515p) "...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를 필사적으로 키워주려 했던 거였어. 그런데 그것도 할 수 없었으니 부모님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런데도, 자기들은 이미 한게에 다다랐는데도 나나 형한테는 늘 따뜻한 인간이 되라는 말만 되풀이했지. 그렇게 따뜻한 인간으로 키워줬건만..."

 

- 525p) "전 그렇게 생각해요. 남을 속이는 인간에게도 그 인간 나름의 논리가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남을 속일 수 있는거라고. 결국 남을 속이는 인간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반대로 속아 넘어간 쪽은 자기가 정말로 옳은지 늘 의심해 볼 수 있는 인간인거죠. 본래는 그쪽이 인간으로서 더 옳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세상은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인간은 아주 쉽게 내동댕이 쳐요. 금세 발목이 잡히는 거죠. 옳다고 주장하는 자만이 옳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 "이번에 지더라도 전 포기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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