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 라이프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줄 감상 평 : 위로받을 수 없는 존재, 인간

    이 책의 표지는 파크라이프라는 제목의 이 책을 요시다슈이치 문학의 시작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그의 문학세계의 중간부터 읽었던 난 그 문학의 시작을 확인해야만했다. 아마 읽기 전에는 작년부터 알게 된 요시다 슈이치에 대해서 더 가까이 가고 싶었던 마음이 컸을 것이다. 경과와 정점을 먼저 본 후 들여다 본 그의 시작은 가히 뿌리를 찾는 여행이었다. 그리고 과연 그의 세계관이 어떠한 의구심에서 출발했는가에 대해서도 명쾌해질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낯선' 자신의 내면이었다. 퍼레이드에서 유쾌한 동거를 통해 밝혔던 우리가 덮고 살던 각자의 수치스러운 본성에 대한 회의는 바로 이 작품 '파크라이프'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책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실상 인간은 같은 우주 아래 껍데기만 빌리고 속은 공유하도록 설계되었지만, 되려 맨션같이 속은 더욱 더 감추고 겉 껍데기만 공유하고 이해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감출 게 없으니까 그게 싫어서 애써 뭔가를 감추는 척 한다는 피상적 삶의 한계가 연장되고, 또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결국 위로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것이 명확해진다. 너나 나나 다를것 없이 추레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거품같이 가벼워 어디로 튈지도 모르는 자신의 본성을 두려워해 억누르고 살아가는 것이다. 공원의 단면도나 해부 인형에서처럼 실제로는 아무 것도 없는 속 빈 강정의 삶에서도 우리는 내 속이 남들에게 비춰졌을 때의 수치심을 두려워하며 수박 겉핡기식의 인생을 살아간다. 이 책의 묘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저 겉모습만보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수근거리는 것이 인간이다. 최근에 본 지인의 글에서 이러한 표현을 본 적이 있다. "일기란 정말 솔직히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글인데, 정작 남들이 내 솔직한 마음을 보게 될까 두려워 일기라는 것을 적지 않는다." 실로 공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내 부인, 가족이라도 내 존재를, 본성을 드러내기는 힘들 것이다. 아니, 사실 그렇게 감춰온 것이 너무 오래되어서 실제로 내 본성이 어떠한지 설명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본성이 이따금씩 튀어나오기라도하면 그 낯섬에 혼란까지도 느낄 것이다.

    같은 책 안에 수록된 또 다른 단편인 '플라워스'에서는 그렇게 내 본성이 뭔지도 모르고 누르고 누르고만 살아온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것은 퍼레이드에서의 결론과 같다. 다른 사람의 내면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적당한 거리두기에 익숙한 채 살아갈 뿐이다. 가까이 다가가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마음을 터놓는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플라워스에서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믿었던 회사 동료가, 알고보니 다른 회사 동료의 아내와 성관계 파트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래 놓고는 뻔뻔하게 그 동료와 친하게 지내고, 그 동료의 적 앞에서는 또 그 동료를 욕하고. 옮긴이는 이것을 가까워졌다고 믿었을 때 휙 멀어져버리는 종류의 관계라고 표현한다. 이것이 바로 거리두기이다. 그 사람의 본성을 알면 알 수록 우리는 멀어져간다. 속을 털어 놓으면 놓을수록 가까워져야 진정한 위로인데, 오히려 그 사람의 본성을 보면 볼 수록 그럭저럭의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것이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멀어져야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품는 것이다. 부부사이에도, 친구사이에도, 심지어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생기는 그 거리두기를 소설은 이렇게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등장인물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독자도 거리두기를 시작한다. 요시다 슈이치의 마법에 빠져든 것이다. 그는 우리를 그렇게 객관적으로 보게 해준다. 결코 가벼워질 수 없는, 본능이 튀어 오르는 삶을 가벼운 삶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무게 중심이 없는 삶을 살아가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끝없이 자신에게로 무한대의 중력을 행사할 뿐이다. 저마다의 중력으로 우리는 상대방을 자신의 본능과 가치관 속으로 끌어들이려하지만 서로 가까워지기라도 하는날에는 위로와 공생보다는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 인간이다. 추악하게 드러났던 간단의 본성을 보자마자 발길질을 했던 택배회사의 모든 직원들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한다. 제발 감추고 살아가달라는 그 발길질에서 남의 모습을 보고싶어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씁쓸함이 보인다. 그렇게 두드려 맞지 않기 위해서, 갈등을 피하고자 우리는 거리를 둔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존이라고 생각한다.

    거리두는 삶을 나쁜 삶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 사람이 내가 될 수 없는 삶이기 때문에, 거리를 두며 그냥 저 인간은 저런 인간이야 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더 편할 때가 많다. 사실 교육의 본질이 본성을 감추고 거리를 두며 공생하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거리두기는 인간의 문화이자 암묵적 약속이 되었다. 다행히도 나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바로 사색과 공감이라는 장치다. 사색으로 발견한 본성과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들과의 공감은 때때로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그것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 파크라이프의 공원이었다. 물론 이 공감도 상대방과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 공감이라기보다는 또다른 갈등으로 변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답변은 또다시 회귀한다. 그냥 피상적으로 관찰하는것이 팔자가 편한 길이다. 염세적인 결론이라 송구스럽지만, 이 결론은 가장 현실적이고 평화로운 결론이기도하다. 어쨋든 갈등없는 삶을 살아가는 공원의 삶이 고요했던것이 그 증명이 되기 때문에.


*내가 뽑은 명 문구*

20p) "몇 명에게 사랑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누구한테 사랑을 받았느냐가 중요한 데 말이야..."

70p) "감출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게 싫어서 애써 뭔가를 감추는 척 한다던가 뭐라나..."

79p) "빌린 물건이라... 정말 그러네. 겉 모양만 개인의 소유물이고 알맹이는 모든 인류의 공유물이라. 맨션이랑은 정 반대겠다. 맨션은 속이 개인 소유물이고, 밖은 공유물이니까."

83p) "그렇잖아. 공원에서는 아무 것도 안해도 누구도 책망하지 않아. 오히려 권유나 연설처럼 뭔가를 하려 들면 쫓겨나지."

153p) 이 세상에 존재하는 꽃의 수만큼 사람에게는 감정이 있다.

155p) "보통 이중인격이라고 하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겉과 속이 다르잖아.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으로 묶인 이중인격이란 게 있을까? 겉도 속도 다 좋은 사람."

172p) 마리코는 나에게도 변화를 요구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볍게 뛰어올라 날아다니라고. 그렇지만 나는 만약 그렇게 하면 바다 깊은 속에서 솟아오르는 물거품처럼 언제까지고 떠들기만 하다 결국은 부서져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191p) 바보취급당하는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져선 안 된다.

201p) 나가이 씨의 일생일대의 반항을 '빨리 가고 싶다'는 간단의 치졸한 안달이 익살스러운 촌극으로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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