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마주하기 싫은 진실 속에 숨은 자기 찾기



마주 할 수 있을까?

 

    "트라우마"라는 말이 있다. 이는 특정 사건이나 사실, 물건 등에 환멸감을 느끼고 그 환멸감을 피하고자 그것들에게서 도피하려 하는 현상이나 행위를 통칭한다. 트라우마를 겪는 누구나 그것들과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잊고싶어한다. "잊으면 그만"이지 왜 "잊고 싶어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그 트라우마가 우리의 치부와 연관되는 중요한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연필로 살짝 긁혀서 입은 상처는 잊으면 그만이지만, 연펼심에 깊게 박힌 상처는 다시 연필 집기를 꺼려하게 되는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상처이기에, 그냥 덮어두고 외면하려 하는 것이다. "잊고 싶어서"


    그러나, 트라우마를 외면한채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진짜 자기 모습마저 외면해 버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외면하며 산다고 마냥 평안할 수 없으며, 무엇인지 모를 불안 속에 자신을 오히려 끝없이 가두며 살아간다.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제 각기 특별한 트라우마로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단절시키고 자기방어하게 된다. 그리고는 자기 자신이 세상에 등을지고 있는것도 모른 체 세상이 자신을 외면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단절 속에서 맹목적인 탈출의 희망을 느끼고, 자유를 만끽하려한다. 하지만 막상 정신병원을 나간다고는 해도 그들에게 자유가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자기 스스로 세운 트라우마  때문에 세상을 거꾸로 보려하기 때문이다. 즉, 궁극적으로 스스로가 트라우마 너머의 진실을 보려하지 않는 이상, 정신병원 안팎 모두에서 자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소설의 후반부를 보면 알 수 있듯, 폐쇄병동으로 나가는 것은 의외로 쉽다. 문제는 나가서 무엇을 할 것이냐는 것이다. 다시말해,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는지의 문제와 연관된다. 승민은 진짜 자신의 모습을 이해하고 누리려했기 때문에 눈이 안보이는 트라우마 따위보다 더 크게보이는 자신의 꿈을 향해 날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수명은 트라우마가 자신의 꿈보다 클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더 중요한 자신의 모습마저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수명에게 마냥 두려운 것인냥 인식되었고 수명은 늘 세상과 등지며 살아갔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도 모른채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던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수명이 트라우마를 마주하며 진실을 고백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이 보여 마음이 놓였다. 세상은 마주하는 순간 자신의 큰 꿈과 마주할 수 있다. 단지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자신의 치부와 마주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잊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잊으면 그만"인 것으로 치부할 때 원대한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정신병으로 가장한, 용기없는 자들에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어야지. 우울한 수험생과 승민이 그랬듯, 자신의 꿈을 트라우마 넘어로 볼 수 있도록, 세상을 향해 서도록 팔을 잡고 방향을 돌려주어야지." 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 내가 뽑은 명문구 *



- 53p) 외로움이란, 외롭지 않았던 적이 있는 자만이 두려워하는 감정이라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 141p) 우리에게 이유가 있듯 그들에게도 이유가 있다. 타인과 교신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게 비극일뿐이지. 사람들은 스스로 그걸 '영화'라고 칭했다. 병동은 각자의 영화가 동시 상영되는 극장이었다. 그러니 시끄러울밖에.


- 264p) 승민은 보호사나 진압 2인조에게 소리치는게 아니었다.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세상의 총구들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내 심장을 쏘라고. 그래야만 나를 가둘 수 있을 것이라고.


- 284p) "너라면 어떻겠냐? 원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날아다녔던 세상이 어느날 갑자기 비행 금지구역으로 변해 있다면."


- 291p) "꿈을 꿔요. 창문은 통로죠. 희망은 아편이구요.".... 사람들이 병원 규칙에 열심히 순응하는 것은 퇴원, 혹은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갈망의 궁극에는 삶의 복원이라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를 얻어 세상에 돌아가면 희망 대신 하나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다리에서 뛰어 내리는 것 말고는 세상 속에서 이룰 것이 없다는 진실. ... 세상은 기억의 땅으로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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