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치하야 아카네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흔적이라는 말에서 관계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은 흔적을 남긴 사람과 흔적이 남은 사람이라는 양자가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흔적이 좋은 의미이든 혹은 그렇지 않은 의미이든 간에 말이다. 이처럼 흔적은 관계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면 어떤 관계에서 흔적이 남게 될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관계, 이를테면 부모와 자식, 친구 관계, 직장 상사와 직원의 관계 등에서도 흔적이 남겠지만 우리가 손쉽게 보게 되는 많은 흔적들은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서 남겨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남긴 흔적은 여타의 흔적들과는 달리 아주 오랜 시간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그만큼 그 흔적의 깊이가 남다라는 의미이다.

 

치하야 아카네의 <흔적>은 바로 관계와 관계에서 새겨진 흔적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6편의 단편들이 이어지는 연작 소설로 흔히 로맨스 영화에서 보는 듯한 구조로 이어진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혹은 그녀와 관계가 있는, 아니면 그 혹은 그녀의 주변인들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구성이다.

 

이들 단편들 속 이야기는 사랑으로 인한 흔적을 말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만큼의 달콤함과 애틋함이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자가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겪게 되는 고통과 아픔을 애잔하게 그리고 있다.

 

사랑이 도대체 무엇인지 여전히 아리송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을 보면 사랑은 분명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흔적을 남기는 가장 강력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사랑 혹은 관심을 구하는 소녀도, 능력 있는 남편의 옆에서 가사와 육아에 지쳐가는 아내도, 자신과 닮은꼴인 죽은 상사로 인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에 빠져버린 남자도 모두 사랑이 남긴 애닮은 흔적들을 가지고 있다.

 

문득 내 모습을 돌아본다. 내게는 어떤 흔적이 남아있을까? 학교와 집밖에 몰랐던 내게는 그런 아련한 사랑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오히려 지금 그런 흔적들을 남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만들어가는 흔적을.

 

내일 나는 무슨 흔적을 만들까? 언젠가는 아련한 기억으로 남길 그런 사랑, 아니면 가슴 아파 혼자 흐느껴야 하는 그런 사랑? 어떤 흔적을 남길지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음에 감사한다. 사랑은 저자의 말처럼 살아 있는 존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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