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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기억 ㅣ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9
윤이형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똑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마다 그 일을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은 슬픈 일로, 어떤 사람은 기분 나쁜 일로, 어떤 사람은 조금 불편한 일로, 어떤 사람은 행복했던 일로. 그렇기에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개인마다 옛 일을 다르게 기억하듯이 사람에 따라 옛 일을 기억하는 정도도 서로 다르다. 어떤 사람은 옛 추억을 상당히 자세하게 기억하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시간의 한 부분을 뭉텅 떼어낸 듯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도 하다.
은행나무 노벨라 9번째 작품 <개인적 기억>에서는 절대적(?) 기억력을 갖춘 지율과 평범한 기억력을 갖고 있는 은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언뜻 생각하기에 모든 일을 기억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지만 막상 하나의 행동이 그것과 연계된 모든 일들을 끝없이 떠오르게 한다면 아마 제정신으로는 한 순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좋은 일이 있듯이, 나쁜 일도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기에 지율의 기억력은 변형된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정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를 조금 돌려 말하자면 어떤 기억들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어느 순간 사라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대를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지율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지율은 고등학교 친구들이 놀려대던 ‘머신’이 아니다.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만을 쌓아놓은 채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컴퓨터가 아니다. 지율은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지율과는 반대로 너무 많이 잊어서 괴로운 이도 있다. 바로 은유이다. 그녀는 오로지 마지막 순간만 기억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기억해야 할 행복한 순간,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전혀 떠올리지 못한다. 지율의 증상만큼 은유의 증상 또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둘의 사랑이 멋지다.
은유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p.129)
과잉기억증후군의 지율에게 은유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기억하지 못 하더라도 은유의 모든 것은 지율에게 특별하고 대체 불가능한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억되는 추억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멋지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다. 과연 지율과 다르다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의 푸네스는 어떤 인물일지. 그는 또 어떤 기억의 모습을 들려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