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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
박경숙 지음 / 문이당 / 2015년 5월
평점 :
내게는 외국으로 이민 간 친구들이 많다. 그런데 미국, 캐나다, 일본, 독일, 호주 등등으로 떠나간 친구들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듣곤 한다. 이민 생활이 자신과 아이들에게 상당히 좋은 것도 맞지만 이민 생활이 주는 고통도 적지 않다고. 그 중에서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는 백인들이 동양인들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나 차별 대우 등이란다. 눈에 띄게 드러나는 차별 뿐 아니라 은연중에 이루어지는 인종 차별 때문에 화가 치밀어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오른단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그래도 세계적으로 적지 않게 올라간 오늘날에도 이런 차별이 횡행하는데 그 옛날 하와이로 처음 이민 간 선조들의 삶은 어땠을까? 그들이 고통과 아픔은 얼마나 컸을까?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아픔이 그들에게 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바로 이런 이미 1세대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소설의 중심에는 수향이 있다. 퇴기의 딸인 수향은 몸종 월례의 뱃삯을 구하고자 하와이에서 사탕수수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갑진과 결혼한다. 하지만 하와이로 건너간 수향은 갑진과의 애정 없는 삶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결국 서로 헤어지게 된다. 아들 삼일이와 함께 살아갔던 수향은 인삼 상인 한장수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지만 어느 날 한장수도 돌연 그녀의 삶에서 사라진다. 결국 그녀는 한장수와의 사이에서 낳은 크리스틴과 함께 하와이 조선 식당에서 술을 팔며 삶을 이어간다.
남편을 의지하며 살아가고자 했던 수향의 삶은 그녀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흘러간다. 사랑 없이 결혼을 했던 이갑진과의 삶도, 사랑했지만 결국은 떠나버린 한장수와의 삶도. 이런 삶을 살아간 그녀가 별다른 사람이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 수많은 이들이 수향과 비슷한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물론 수향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이들도 있다. 수향의 몸종이었던 월례의 삶이 그렇다. 한인 교회에서 일하며 교육을 혜택을 받으면서 수향과는 달리 신교육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월례와 같은 경우를 일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극히 드문 사례일 것이다.
낯선 땅에서 아프게 살아갔던 그녀의 삶은 오늘을 사는 우리네 삶과도 그렇게 다르지 않다. 희망을 가지고 살지만 어느 순간 절망에 빠져버리고, 사랑을 갈구하지만 늘상 이별의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바로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멀게만 느껴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할머니의, 어머니의,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