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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생
정길연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4월
평점 :
술 마시고 화가 나면 그곳이 어디든지 간에 여자 친구를 내버리고 가는 남자가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여자 친구를 내버리고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기 기분에 따라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일이 내 친구에게 일어났던 일이고, 현실에서 보았던 그런 일을 소설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정길연 작가의 소설 <우연한 생>에 나오는 단편 ‘당신의 심연’에 나오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남자의 태도만이 아니다. 여자의 태도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을 그렇게 하찮게 대하는 남자와 왜 계속해서 만나는 것일까? 나 역시 친구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똑같은 질문을 던졌었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사랑하니까, 그리고 평상시에는 그러지 않는 남자니까. 이해할 수 있는 답변이었지만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었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답변이었다.
정길연의 작가의 <우연한 생>에는 이처럼 힘든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이 나온다. 7편의 단편에 담긴 여성들의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도 너무나 답답하다. ‘당신의 심연’에 나오는 여성만 그런 것이 아니다. ‘수상한 시간들’ ‘자서, 끝나지 않은’에 나오는 여성들의 모습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잠깐의 인연 때문에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의 장례까지 맡아하는 여인이나 세 번째 아내가 되어 전처의 아이들을 키워야했던 여인이나.
이들은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아마 여자이기에 그랬던 것은 아닐까? 매정하게 떨쳐내지 못하는 마음, 보듬어 안을 수밖에 없는 마음, 문학평론가 방민호님의 말처럼 상대를 향한 연민 때문일 것이다. 이런 연민의 마음, 사랑의 마음이 여성을 장기판의 말이 아니라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사는 주체적인 인격체로 만들어준다.
7편의 단편들이 상당히 재미있다.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고 글에 담긴 의미도 마음속 깊이 다가온다. 모두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