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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치마 - 개정판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사회에 나오고 나서는 왜 그렇게 바쁜지 책 한권 읽기가 쉽지 않다. 일에 치이고, 집에 들어오면 아이에게 치이고, 아무 생각 없는 남편에게 치이고. 그러다 보니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은 힘이 없다는 핑계로 책을 멀리한 지 어언 10년. 올해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오랜만에 잡은 책이라 그런지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도, 공감대가 형성이 안 되는 이야기들도, 처음 접하는 작가들도 너무나 많았다.
<처녀치마>의 권여선 작가도 이번에 처음 접한 작가이다. 잠깐 작가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더니 많은 분들이 전작 <푸르른 틈새>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셨는데, 얼핏 보니 작가의 색깔이 상당히 독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8편의 단편에 실린 작가의 이야기는 여타의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최근에 다시 독서를 하기 시작해서 어려움을 겪었던 터라 가능하면 소설을 읽더라도 가벼운 소재의 이야기들을 찾아 읽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작가가 말하는 바가 선뜻 다가오지는 않았다. 작가가 살아온 시대라 조금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삶에서 배운 경험치도 다르다 보니 그런 듯 하다.
8편의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은 변하는 구나’라는 것이었다. 그런 변화가 상대방에게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내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만난 사람들은 분명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전에 그들을 알았던 내가 어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그 사람들이 어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서로의 생각이 변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는 그대로 인대 세상이 변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트라우마>에 나오는 尹씨와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그렇다. 한때 수많은 시위에서 선봉을 섰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이제는 완연히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나간다. 게이바로, 회비 문제로, 심지어는 경비원과의 다툼까지. 이들은 이전의 그들이 아닌 완전히 낯선 인물로 살아간다.
우린 정말 다들 맛이 간 걸까요, 아니면 원래부터 이런 인간들이었던 건가요?(p.93)
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쁜음자리표>의 T 역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T인지 S인지 Y인지 모를 그 사람은 똑같은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채 읊조리는 Y는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T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나의 문제이기도 했다.
나는 T를 바라보았다.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인가를 지켜왔다는 생색은 거짓말이다. 내가 행한 모든 것은 나를 향한 것이다. (p.267-268)
우리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변한다는 것이 결코 나쁜 일만은 아니다. 그 변함이 서로에게 플러스 플러스이거나 마이너스 마이너스가 플러스로 바뀌는 변화라면 말이다(책을 읽어보시면 무슨 말인지 아실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