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27분 책 읽어주는 남자
장-폴 디디에로랑 지음, 양영란 옮김 / 청미래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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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분 지하철에서 책을 읽어주는 남자.

눈을 감고 상상해보면 낭만적인 분위기가 솔솔 묻어난다. 착 가라앉은 저음에 또랑또랑 울려 퍼지는 남자의 목소리가 새벽잠에 취한 사람들을 깨우는 모습.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남자(길랭)가 읽어주는 책이 내 생각과 다르다. 왠지 낭만적인 시라든가, 명상록이라든가, 애절한 사랑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체르스토르 500이라는 파쇄장치에서 살아남은 책의 낱장들이다. 서로 다른 책들에게서 나온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다. 길랭이 지하철에서 책을 읽어주는 이유도 내 예상에서 완전히 빗나갔다. 사람들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주은 USB가 이 남자의 삶을 온통 뒤흔들어 놓는다. USB에 담긴 쥘리라는 여성이 쓴 그녀의 일상이 길랭을 사로잡는다. 이제 길랭은 파쇄장치에서 살아남은 책 대신 쥘리가 쓴 72개의 문서를 읽어주기 시작한다. 이제 길랭은 쥘리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한다.

 

길랭은 또 다른 만남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쁨을 누린다. 지하철에서 그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었던 모니크와 조제트의 초대로 길랭은 매주 토요일 양로원에서 책을 읽어주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난 노인들은 어쩌면 의미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주제로 열띤 논쟁을 벌인다. 이런 이들의 모습에서 길랭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이 작품에는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얼마나 사람들을 따뜻하게 하고 생동감 있게 만드는지가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된다. 길랭은 자신이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에게서 실망, 아니 슬픔을 읽었지만 이후 쥘리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에게서는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의 눈빛을 깨닫는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사람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따뜻한 교류가 이루어지는지가 책 곳곳에서 아름답게 그려진다.

 

길랭은 주세페의 도움으로 쥘리를 찾아보기 시작한다. 이 둘은 과연 서로 만나게 될까? 그녀가 쓴 72개의 문서로 사랑에 빠진 길랭, 하지만 쥘리는 그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데 그녀를 향한 길랭의 사랑은 그의 바람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길랭이 쓴 편지에서 너무나 가슴에 와 닿은 문구 하나를 인용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건, 우리 인생에서 영원히 고정불변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14,717처럼 흉한 숫자도, 약간의 도움이 주어진다면, 언젠가는 예뻐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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