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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간들 - 제1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지월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고 나자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가 생각났다. 간암으로 투병하시던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처음에는 그저 멍하였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도저히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빈소를 찾은 수많은 친지들과 지인들 속에서 3일이라는 시간은 후딱 지나갔다. 엄마를 잃은 아픔이란 것을 느낄 새도 없었다.
막상 엄마의 빈자리는 장례를 모두 치르고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면서 서서히 나타났다. 엄마의 빈자리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고통과 아픔도 조금씩 커져갔다. 순간순간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이 솟아올랐다. 그런 아픔과 슬픔은 십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49일이 되는 날에서 시작한다. 소설의 첫 문장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나는 살아 있다.... [중략] ... 나는 살아 있다고. 사십구일이 지났는데, 여직 아무런 이상도 없이 잘 살아 있다.(p.9)
소설의 제목은 <상실의 시간들>이지만 사실 이 책은 상실 뒤에 이어지는 살아남은 자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아픔과 고통이 있을지언정 살아남은 자는 자신들의 삶을 다시 살아간다. 그러기에 49일로 시작해 99일에 이르러 (끝)이라고 마무리를 짓는 듯한 소설은 그 뒤로 278일, 304일의 삶 이후를 (계속)이라고 표시하고 석희의 입을 통해 이렇게 정리한다.
찰나생 찰나멸. 그러니 할 수 없나? 고작해야 찰나뿐이니, 힘껏 살아가는 수밖에(p.311)
하지만 책을 읽으며 눈에 들어온 또 다른 구절이 있었다.
울고 있는데 누가 어깨를 쳐서 돌아보니, 형부가 그걸 털어내고 있었다. 나한테는 그 재가 엄마였는데, 형부한테는 엄마가 이미 재였다........ 우리는 남이었다.(p.268)
우리의 삶은 철저하게 서로 다른 길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상실의 아픔을 대하는 방법도, 상실이 지속되는 시간들도 전혀 다르다. 내게는 이제 시작된 아픔이 누군가에는 이미 끝나버린 아픔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나온 (계속)이라는 표현은 살아남은 자의 삶이 계속 이어지는 모습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 누군가에게 계속되는 상실의 시간들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