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의 에로틱 라이프

슈퍼히어로의 에로틱 라이프
마르코 만카솔라 지음, 박미경 옮김 / 오후세시 / 2014년 6월

배트맨, 미스터 판타스틱, 미스틱, 슈퍼맨.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모두 다 아는 이들이다. 세상의 악을 무찌르는 우리의 영웅들이다. 물론 모두 영화 속에 존재하는 이들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 내용이 상당히 색다르다. 마르코 만카솔라의 <슈퍼히어로의 에로틱 라이프>는 제목에서 풍기듯이 영웅들의 액션이나 무용담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로 변한 슈퍼히어로들이 색다르면서도 은밀한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영웅들은 옛날 옛적 인물들이다. 나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기도 하지만 이미 중년의 나이를 넘어선 이들은 사람들에게 그저 유명 인사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이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갈까? 특히 이들의 사랑, 섹스는 어떤 모습일까? 작가는 바로 이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나간다. 작가는 미스터 판타스틱, 배트맨, 브루스 드 빌라(누군지는 직접 확인해 보시길^^), 미스틱, 슈퍼맨으로 나누어 이들 각자의 모습을 그려낸다.

잘나가는 과학기술 자문위원인 리드 리처즈(미스터 판타스틱)는 자신의 아들보다 어린 여성과의 은밀한 만남을 사랑이라 여기며 집착하지만 상대방은 이런 리드를 그저 어릴 적 자신의 영웅으로, 또한 가볍게 만날 수 인물로 생각한다. 이 둘이 만나는 동안 양성애자인 배트맨은 자신의 조수이자 동료인 로빈의 죽음 이후 변태적인 쾌락을 즐기며 생활하다 결국 어린 여성의 손에 죽음을 당한다. 반면 자신의 쇼를 진행하며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는 미스틱은 배트맨의 죽음을 수사하던 데니스 드 빌라를 만나며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이들에게 ‘잘 가요, 미스터 판타스틱(배트맨, 미스틱)’이라고 쓰인 의문의 쪽지가 도착하고, 이들은 슈퍼히어로의 파멸과 죽음을 원하는 누군가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책 제목처럼 이 책에는 영화 속 영웅들의 에로틱하고 은밀한 이야기들이 깔려있다. 하지만 돌려보면 그들도 또한 인간적 욕망을 표현하며 사는 우리네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는 모습일 뿐이다. 일레인에게 집착하는 리드를 우리는 주변에서 얼마나 자주 찾아볼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상대방을 구속하고 자신의 소유로 삼으려 하는 자들도 많다. 그렇다고 내가 자유주의 연애를 신봉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은 분명코 상대방을 구속하는데서 이루어지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또한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려보는 사람이 미스틱 뿐일까? 사랑하는 이의 모습 하나 하나를 그려보고, 생각해보고, 그리워하는 것은 영웅이나 우리 같은 일반 소시민이나 모두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영웅들을 소재로 하여 우리의 이야기, 한국적인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성적 묘사도 나오기는 하지만 우리 주변의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의 마음을 담아놓았다. 또한 긴장감을 더해주는 요소로 그 속에 슈퍼히어로를 한 명씩 죽음으로 몰아가는 과정을 그려내면서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에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무더운 여름 날, 어릴 적 영웅의 은밀한 생활 속으로 빠져드는 것도 더위를 피하는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