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 수술 보고서 시공 청소년 문학 56
송미경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무언가 예사롭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하기는 했다. 광인이라면 어떤 종류의 광인일까. 어떤 광인이건 간에 고치고자 한다면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이지 어째서 수술이라는 외과적인 의미를 담은 표현을 썼을까. 또한 보고서라 함은 자못 학술적으로 보이는데 이는 정말 학술보고서일까. 제목에서 느껴지는 첫 인상은 일종의 기괴한 공상과학소설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일말의 호기심으로 처음 만나게 되는 이는 한때는 광인이었지만 지금은 정상인이며 단 한번도 의사가 아닌 적이 없었던 의사 김광호다. 그리고, 그가 수술하게 될 환자 이연희가 있다. 이 책은 김광호가 이연희를 수술한 후 이연희로 하여금 작성하게 한 수술 경과 보고서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 작성한 보고서이기 때문에, 정말로 이연희의 예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우리가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소리는 똑딱똑딱과는 비슷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그것은 라떼라떼라떼, 초코초코초코, 쿠키쿠키쿠키 같은 달콤한 소리라고 생각되었지요

 

라고 말하는 이연희는 의사 김광호의 말을 빌리면 빛나는 직관의 소유자다. 그런 그녀가

 

도대체 이 수술은 어떤 사람이 받아야 하는 거지요? 누가 광인이고 누가 정상인이라는 걸까요? 수술을 받아야 할 사람은 개 짖는 소리를 내다가 심지어 쥐를 물어오기까지 한 내 자신이 아니라, 그런 나를 보며 즐거워한 우리 반 아이들이 아닌가요?

 

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먹먹해진다. 이 보고서는 집단 따돌림을 받고 심각한 강박 장애를 겪은 결과 3년간의 진료 후에도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던 환자 이연희에 대한 치유의 과정인 것이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야 이연희가 어째서 일초가 지나면 다음 일초가 오는 예측 가능성을 원하며 시간의 연속성을 상실한 단편적인 기억에만 단순 반복적으로 매달리는 광인이라는 진단을 받았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런데, 수술 방식이 정말로 특이하다. 일반인들이 뇌수술을 떠올릴 때처럼 난해하기만 하다. 수술대가 아닌 책상 위에 눕히고, 소지품에 대한 가산요인과 감점요인을 말하며, 더플코트와 초록색 스웨터의 올 하나 하나를 풀어 놓고, 뇌를 솜 뭉치로 살살 문질러 주다니. 아니, 돌이켜보면 이 수술 방식을 포함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이 책 자체가 경이롭다. 생각하면 할수록 무거울 수 밖에 없는 주제를 때론 담담히, 때론 유쾌하게, 그런 아픔일랑 모르는 척하면서도 정확히 짚어서 환상적으로 수술하고 있다.

 

그것은 뱀의 허물과도 같았어요. 그리고 간호사들이 유리병을 들고 문을 향해 나갈 때 그것은 날개처럼 흐느적거렸어요. 나는 오래도록 신고 있던 때묻은 신발을 드디어 벗어 버린 것처럼 개운해졌어요

 

덩달아서 독자들도 이런 개운함을 느끼지 않는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수술의 의미를 좆아 가다가 이번엔 절로 웃음이 터지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분쟁에 가담하지 않던 내 담당 의사 김광호는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었어요. 그는 이 모든 분쟁과 다툼이 자신의 환자 때문이고 그것은 곧 자신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하며 옷을 찢어 댔어요. 그러자 나를 제외한 모두가 반성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손을 잡고 동그랗게 서서 서로 용납해야 한다는 노래를 불렀어요.

 

물론, 이 장면의 목적이 웃음만을 의도한 것은 아닐 터이지만, 여기서 웃음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가 독자들로 하여금 이 상황을 긍정하며 열렬히 받아들이도록 했다는 것이 아닐까? 웃음이 묻어나는 대목은 이 뿐만이 아니다, 각주로 참여한 의사 김광호의 주석들은 진지한 듯 하지만 보는 이들을 유쾌하게 만든다. 솜방망이가 뇌에 깊이 닿자 담당의사는 황급히 얼른 치우라고 소리치지만, 정작 이연희는 그 어떤 정신적 쾌감으로도 이르지 못했던 극도의 정결함과 극도의 황홀경을 느끼며

 

혹은 아주 약한 전류가 흐르는 전기 자극기로 내 뇌를 자극하는 것도 같았어요

 

라고 말하는데, 이에 대해서 의사 김광호가 올린 각주를 보자.

 

56)뇌 수술에 전기 자극기라니! 이연희 환자의 과대망상이군요. 하긴, 보이지 않는 느낌들에 대해 사람들은 더 과대망상을 품게 됩니다. 저는 지금 지극히 정상적이지만 이연민을 생각할 때면 과대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사람들 사랑하는 것이 왜 사람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군요.

 

담당 의사의 실수로 이연희는 착각 속에서 원래 의사들이 예기치 못했던 수술의 효과를 얻고, 의사 김광호는 그런 착각을 정정하는 모양새 속에서 또 다른 메시지를 담아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독자로서 순간적일지언정 이런 식의 상황 전개가 재미있다고 느낀다. 뭐랄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 해야 할까. 수술 중에 벌어지는 여러가지 사소한 듯한 일화들이 얼핏 보아서는 우연히 벌어지는 듯 보이지만 그 하나 하나로부터 어떤 의미와 메시지를 전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그 순간 알았어요. 내가 어제와 그제를 기억하며 그것을 똑같이 기억해 내는 것과 실제 내 뇌가 저장한 기억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요. 내 뇌가 저장한 기억은 내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었어요. 그러나 내가 찍은 사진 같은 기억들은 그렇지 않았던 거죠. 나는 내가 원하는 부분만을 기억했던 거예요(후략)

 

이렇게 이연희가 광인 말기에서 벗어나 광인과 정상인의 경계로 돌아오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바로 독자를 위해 작가가 의도한 고도의 계산된 환상적인 수술장치들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만으로도 화들짝 놀라게 되는 것이다.

 

실제의 뇌수술을 상상해 보면, 그것은 고도의 민감한 수술이라서 극도의 긴장 속에 한치의 실수도 용납되면 안되리라는 것은 일반인들도 익히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이 책은 바로 그런 고도의 심리 수술을 짐짓 태연하게 때론 유쾌하게 그러면서도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절로 감탄이 나오도록 정교하게 수행해 냈다. 감탄스럽다.

 

아쉽게도 의사 김광호는 이 수술의 방식을 아직 정식적인 방법으로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환상과 실재가 뒤섞인 환자의 수술 보고서만을 협회에 제출하며, 만약 이 보고서를 읽고 다시 오만한 신경정신과전문의 협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여 진다면 이 수술에 관한 과학적이고 진실된 수술 보고서와 논문을 협회와 학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식 보고서를 손꼽아 기다리기만 하여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방법이겠지만, 다시 한 번 이 책의 들어가며를 펼쳐서 나가며까지 정독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 번 읽어서 미처 담아내지 못했던 진주 구슬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 짧지만 짧지 않은 책 속에서 수많은 구슬들을 찾아내어 드디어 올곧게 엮어 낼 수 있다면, 이미 그 정식 수술 보고서를 우리 스스로 찾아낸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이연희의 수술대가 책상이었다면, 우리의 수술실은 바로 이 치유의 책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