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
사쿠라기 시노 지음, 박현미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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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 책을 볼 때 가장 먼저 책 제목을 보고 과연 이 책은 어떤 내용일까 상상해본다.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이라는 책을 받았을 때에도 제목과 책 표지를 보면서 상상을 했다. 어두운 풀숲에 쪼그리고 앉아서 물끄러미 쳐다보는 소녀의 모습은 조금은 섬뜩하면서도 무언가 강인함을 내비친다. 그런 느낌의 표지에 더해 아무도 없는밤에라는 표현은 왠지 스산하고 어두운 톤의 내용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제목을 다시 보니 단편 7편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좋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7편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대부분 의지할 데가 아무도 없는존재들이다. <프리즘>의 치즈루의 경우를 보면 그녀에게 달라붙어 등골을 빼먹는 동거남이나 능력도 없이 허세만 부리는 남자나 모두 그녀가 의지할만한 존재는 되지 못한다. <결 고운 하늘>의 나나코 역시 그러한 존재다. 남편이라고 하는 존재가 있지만 제대로 자리도 잡지 못한 채 그녀 곁에서 맴도는 별반 의지할 데 없는 인물이다. 이렇듯 7편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어떤 면에서 의지할 데가 아무도 없는 존재들이다(다만, <파도에 꽃피우다>에 나오는 호아하이는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남편이 있지만 물리적인 입장에서 고국을 떠난 낯선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자체가 이미 의지할만한 존재가 아무도 없는상태임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주인공 각각이 겪는 아픔과 고난, 역경 등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 단편집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모습을 보인다. 기생충 같은 놈팡이를 만나 몸까지 팔게 된 치즈루 뿐 아니라 자손을 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요청을 받는 호아하이, 같은 회사 동료이자 연인인 노구치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의 원인이자 희생자가 되는 히토미 등은 모두 밤이라는 어두운 시간 속에 있는 자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이 아무도 없는 밤에라는 절망 속에만 빠져 있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시 삶 가운데서 일어나게 피워낸다. 핸드폰에서 두 남자의 번호를 지워버리는 치즈루, 중국어 강좌와 서예 교습소 조수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호아하이, 안녕이라는 말과 함께 남편과의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나나코까지 이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다시 일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강인함을 갖추고 있다.

 

처음 읽은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이었지만 내게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작가가 살아온 홋카이도의 스산한 정경을 담은 작품이면서도 그 안에서 샘솟는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또한 각 주인공들의 심리적 모습을 짧은 단편 속에 세세하게 그려낸 작가의 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작품이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빨리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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