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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ㅣ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정명섭 지음, 산호 그림 / 들녘 / 2020년 7월
평점 :


좀비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에요. 뭐랄까?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어버린 채 오로지 피를 쫓아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좋게 보이지는 않아서 그렇기도 하고 인간이 인간을 사냥하는 모습이 그저 영화나 드라마 속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기도 해요.
<부산행>이나 <살아있다>처럼 영화로 본 좀비물은 장면에서 주는 잔인함이 강해서 이번에는 소설로 된 좀비물을 읽었어요. <부산행>, <반도>의 연상호 감독이 추천한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라는 소설이에요. 정명섭 작가가 쓴 소설인데, 작가의 작품들을 살펴보니 좀비소설뿐 아니라 역사추리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들을 쓰신 분이네요.
처음으로 읽는 좀비 소설이라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어요.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르게 장면 하나 하나를 상상하면서 읽는 매력을 느껴보고 싶기도 했고요. 무더운 여름날 시원하게 더위를 날릴 그런 내용이 아닐까 기대하면서요.
미국 아칸소에서 시작한 독감으로 지구는 좀비가 들끓는 곳이 되자 일부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지구를 탈출해요. 백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지구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탐사대가 지구로 향하지만 많은 탐사선들이 지구에 불시착하면서 실제 지구에 발을 내딛은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아요. 그 중의 한 명이 K-기준이 이끄는 탐사대이고요. K-기준은 좀비와의 전투 후 주변을 정찰하다 맨홀에 빠지고 그곳에서 좀비가 생기기 시작한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일기를 발견해요.
소설은 두 가지의 이야기를 그려낸 액자식 구성이에요. 좀비들과 전투를 다룬 이야기가 하나라면 또 다른 이야기는 일기 속에 그려진 좀비가 발생한 이유와 이에 대처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속에서 생긴 여러 가지 사람들 간의 갈등, 대립 등을 다루고 있어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진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어쩌면 소설 속 이야기가 결코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긴 하지만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를 그런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너무 무서워지더라고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그런 어려움을 딛고 다시 일어나요.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었어요. 아직 명확하게 답을 찾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느껴지긴 하네요. 인간이 인간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무엇인지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