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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기담
전건우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8월
평점 :
고시원이라고 하면 사시나 행시 등 공부하는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어요. 특히 신림동 고시촌이 떠오르죠. 친구 중에 한 명이 그 곳에서 한동안 생활했던 적이 있어서 잘은 모르지만 고시원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대충은 안다고 생각했어요.
전건우 작가의 <고시원 기담>은 제가 알던 고시원에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들려주면서요.
고문고시원이라는 곳. 원래 이름은 공문고시원이었는데 간판에서 'ㅇ'자가 떨어지면서 고문고시원으로 불리는 곳.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양 산업이 된 고시원에는 많은 이들이 떠나고 단지 8명만이 남아 있어요. 소설은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뱀 사나이, 얼음장, 괴물이라고 불리는 이의 행적을 쫓아가는 과정을 함께 그려내면서 끝없는 긴장감을 형성하기도 해요.
여러 가지 장르가 뒤섞인 듯한 소설이라 딱히 하나의 장르로 정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요. 초능력이라는 SF나 미스터리 소설 같은 요소도 있고, 유령의 존재를 보여주는 공포 소설 같은 내용도 담겨 있어요. 하지만 작가 후기에 실린 것처럼 이 모든 요소들이 지향하는 바는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이들, 즉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요.
특이한 점 하나는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이름 없이 성으로만 불린다는 점이에요. 작가는 어떤 의도로 등장인물들을 성으로만 표현했던 걸까요? 아마 그들이 우리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의미 아니었을까요?
한국이라는 나라에 들어와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을 대변하는 깜,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이들을 대변하는 편, 살아있지만 결코 살아있지 않은 최 등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소설의 결말이 더욱 마음에 와 닿네요.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며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듯했던 그들이 하나가 되는 그런 모습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도 여전히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기묘하고 환상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섬뜩하면서 오싹한 분위기의 소설이지만 그 끝에는 모두를 향한 따뜻함이 담겨 있는 소설. 그래서 마지막에는 살며시 미소 지을 수 있는 소설이라 더욱 좋았던 시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