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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수록,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ㅣ 문지 에크리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평점 :
한 편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오래된 서신과 고백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낸 서사로 읽힌다. 작품은 무대 위에서 몸을 던져 춤추는 무용수들의 세계와 그 무대를 지켜보는 시선이 교차하며, 예술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부서지기 쉬운 내면을 함께 비춘다. 빛은 찰나에 반짝이며 사라지고, 실은 이어지고 엮이며 관계를 만든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두 이미지는 삶과 예술을 꿰뚫는 상징으로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작품 속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동작의 묘사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몸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려는 절실한 몸짓으로 다가온다.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각과 감정이 육체의 떨림으로 흘러나오고, 그 순간 독자는 빛처럼 스쳐 지나가는 존재의 본질을 마주한다. 동시에 무대 뒤에서 흐르는 고독, 예술을 감내하는 육체의 고통,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이 실처럼 얽혀 하나의 서사가 된다.
한강은 특유의 절제된 문체로 무대 위의 순간을 기록한다. 문장은 차갑게 맑고 동시에 깊은 울림을 남기며, 독자를 무대의 어둠과 빛 속으로 이끈다. 그는 화려한 수사를 피하고 오히려 여백을 남겨, 독자가 스스로 그 빈 공간을 감각으로 채우게 만든다. 그렇게 『빛과 실』은 읽는 이에게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몸과 마음, 예술과 삶 사이의 긴장과 교차를 직접 체험하게 한다.
이 작품은 예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생계를 위한 직업도, 오락을 위한 장치도 아닌,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감내하는 고통과 기쁨의 총체로서의 예술을 그린다. 결국 『빛과 실』은 한강이 오래도록 탐구해온 삶의 본질과 죽음의 그림자를 다른 방식으로 변주한 결과물이며, 동시에 예술에 대한 장엄한 오마주다.
정리하자면 『빛과 실』은 빛처럼 스쳐 사라지는 찰나와 실처럼 이어지는 연속성을 통해 인간의 삶과 예술의 의미를 탐색하는 장대한 서사이자, 한강이 언어로 빚어낸 가장 무용적인 문학적 무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