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숲에 누워 나의 두 눈은 검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한 번의 짧은 삶, 두 개의 육신이 있었다. 지금 그 두번째 육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 어쩌면 의식까지도 함께 소멸할 것이다. 내가 겪은 모든 일이 머릿속에서 폭죽 터지듯 떠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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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너는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모두가 너를 잊게 될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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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지만 전하고 싶은 간절함을 담은 마음의 소리가 여기에 있다. 서로가 보내온 시간이 궁금했지만 듣지 못했기에 더 만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서로의 마음의 길을 보았듯이 이 책을 통해 그 마음이 연결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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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학생들의 그리움에는 미안함이 더해진다. 나만 살아 나왔다는 죄책감. "유가족에게 저희 존재 자체가 상처일 수 있으니까. 저희를 보면 더 힘들 수 있으니까 그게 너무 죄송하죠." 스스로도 품은 미안함에 무게를 더하는 것은 생존자와 희생자를 갈라놓는 사회적 시선이다. ‘그래도 너는 살아 돌아왔잖아.’ 생존학생들은 유가족이나 형제자매에 대해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피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 했다. "졸업식은 축하받는 자리인데 유가족들이 오셨으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축하받지 못할 것 같고 축하받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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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학생과 형제자매 들은 안산과 단원고라는 공간을 공유한다. 형제자매 중에는 단원고 졸업생도 있고 희생된 형제자매를 따라 단원고에 입학한 사람도 있다. 생존학생에게 형제자매는 떠난 친구의 동생, 형, 오빠, 언니다. 세월호참사 전에는 서로 몰랐지만 지금은 만나서 밥을 먹는 사이가 된 이도 있고, 그전에는 만났지만 지금은 만나기 어렵게 된 이도 있다. ‘생존자’와 ‘유가족’이라는 다른 위치가 만든 조심스러움과 불편함이 이들 사이에 존재한다. 이들에 대한 다른 사회적 시선과 태도 또한 그들 간의 거리감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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