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장마리도르, 파리의 작은 창문
김지현 지음 / 달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프랑스와 파리, 이 지명은 왠지 따사로운 햇살보다 약간은 뿌연 필터로 찍은 촉촉한 느낌이연상된다. 이 책은 그 물성 하나만으로도 파리의 분위기를 잘 자아낸다. 표지의 시크한 그림과 색감. 그 속에 있는 흑백 톤의 사진들이 빛바랜 느낌의 종이와 어울려서 집어 드는 순간 파리로의 안내를 시작한다.

사실 우리 세대에게 영화 <아멜리에>의 화사함과 독특한 풍경은 그전 1980년대 누벨 이마주 세대들의 우울과 불안한 청춘이 들끓는 프랑스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어놓았다. 물론 미술을 비롯한 예술이라는 맥은 같지만. 그 후 여러 할리우드 영화들 속에서 보인 이미지와 덧대어져 프랑스, 특히 파리는 예술가들과 연인들의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동경하는 도시가 되었다.

 

이 책은 파리에 5년간 살면서 미대를 다니던 저자가 장마리도르 거리에 있는 집에 앉아 보내온 통신문이다. 모든 결정은 단지 ‘파리’이기 때문으로 귀결된다. 이 책은 도로시처럼 갑자기, 꼼꼼한 계획과는 무관하다. 무작정 프랑스로 날아간 저자가 막상 도착해보니 로맨틱보단 우울의 분위기를 감지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는 과정이 시작된다. 이 책에 담담하게 담겨 있는 소소하고 세세한 일상은 화사하고 세련됨이 아닌 잿빛 파리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골목길 안의 작은 극장, 낡은 카페, 인적 드문 동네 공원, 볼 것만은 정겨운 벼룩시장 등등. 그녀가 파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쫓아가다보면서 진짜 파리로 떠난 듯한 기분이 든다. 유학생이었기에 그녀가 겪은 파리는 관광객과도, 현지인과도 다른 여유와 치열함이 뒤섞여 나타나는 게 흥미롭다.

 

게다가 궁금했던 파리 미술대학의 일정과 그 과정들도 조금씩 엿볼 수 있으니, 유학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조언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미술유학의 녹록치 않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을 극복해나가는 이야기에서 프랑스 미술 교육에 관한 정보와 유학팁이 곳곳에 숨어 있다. 무엇보다 파리를 객관적으로 보고 무조건적으로 찬양하지 않으려는 저자의 의도된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책과 영화를 봤을 때보다 파리로 떠나고 싶어지게 한다.

 

머무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시선. 학교 수업보다도 더 큰 가르침을 준 도시 파리에서 저자는 붕 떠 있는 이방인이 아니라 치열하게 사유하고 창작하는 미대생으로 살아간다. 그 생활 속에서 파리이기에 누릴 수 있는 진짜 파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그녀는 파리에 자신을 맡겼다. 이 책은 그래서 잿빛의 쉬크한 파리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어김없이 동경하게 만든다. 떠나게 만든다. 그녀의 창문은 파리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통로였으며, 자신의 미래와 꿈을 꿈꾸게 하는 캔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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