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선생(이하 호칭 생략)이 번역한 열린책들의 '장미의 이름'은 에코의 이탈리아어 원저를 번역한 William Weaver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중역한 것이라고 합니다. 오역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몇 차례의 개정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판매되고 있는 판에서도 정정이 안 된 부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프롤로그의 첫 부분입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1) 이로써 하느님이 비롯되시고, 신심 깊은 수도자의 본분이 비롯되니, 수도자는 날이면 날마다 영원불멸의 진리로 화신(化身)하는 저 불멸의 성사(聖事)를 겸허하게 찬미한다.


각주 1)  '요한의 복음서' 1:1~2

- 이윤기


'요한의 복음서' 1:1~2'로 각주에 표시된 두 문장은 요한복음 1장 1절입니다. 이윤기는 공동번역 성서 번역을 쓰고 있습니다.


1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2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 공동번역 성서, 요한의 복음서 1:1~2


이윤기가 저본으로 삼은 위버의 영역은,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This was beginning with God and the duty of every faithful monk would be to repeat every day with chanting humility the one never-changing event whose incontrovertible truth can be asserted.

위버는 1절을 쉼표만 달리 하고 킹제임스 성경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 KJV

위버의 저본인 에코의 이탈리아어 원문은,

In principio era il Verbo e il Verbo era presso Dio, e il Verbo era Dio. Questo era in principio presso Dio e compito del monaco fedele sarebbe ripetere ogni giorno con salmodiante umiltà l'unico immodificabile evento di cui si possa asserire l'incontrovertibile verità.

인데, 에코의 번역은 이탈리아 주교회의 성경(La Sacra Bibbia CEI)의 번역과 거의 똑같습니다.

In principio era il Verbo, il Verbo era presso Dio e il Verbo era Dio. -CEI

처음에 말씀이 [이미] 계셨고,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느님이었다.

요한복음 1절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의 앞 절이 요한복음 1장 2절(Οὗτος ἦν ἐν ἀρχῇ πρὸς τὸν θεόν)입니다.

Questo era in principio presso Dio...  이 분(말씀)은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이미] 계셨다.

그리스어 원문의 지시대명사 Οὗτος(이것, 이 사람, 그, 그녀)를 한국어 성경들에서는 대부분 '말씀'으로 옮기고 있고, 대다수의 현대 영어 성경들에서는 말씀의 인격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대명사 He - 말씀이 이후에 예수로 육화하기 때문에- 를 사용하고, 이탈리아어 성경들에서도 역시 대명사 Egli(=he) 를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에코는 원어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것인지 남성형 지시대명사 questo(이것, 이 사람, 그)를 채용했습니다. 킹제임스역은 'The same'이라고 번역했는데, 위버는 에코가 사용한 Questo를 This로 옮겼습니다. 문제는 era in principo(처음에/태초에 계셨다)를 was in the beginning 으로 옮기지 않고, 과거진행형 동사구 was beginning 으로 번역했습니다.

This was beginning with God 라는 오역을 보고, 이 절이 요한복음 1:2임을 알아채지 못한 채 this가 말씀을 가리키는 대명사임을 포착하지 못 했거나(그렇다면 각주에서 요한복음 1:2는 대체 어떻게 들어가게 된 것인지 의문입니다), 아니면 완전히 독자적인 번역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로써 하느님이 비롯되시고' 라고 번역되었고,

and 다음에 이어지는 the duty가 주어인 절은 앞절의 was beginning과 독립된 절임에도, '수도자의 본분이 비롯되니' 라고 번역되었습니다.

비롯되다 : 처음으로 시작되다 - 표준 국어대사전

아마 절대 다수의 정통적인 교단이나 신학자들이 해석하는 기독교의 신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언제나 존재하는, 비롯될 일이 없는 존재입니다.

14세기 유럽에서 아드소가 '이로써 하느님이 처음 시작되었다' 라고 주장했다면 화형이나 부관참시, 둘 중 하나를 당했을 것 같은데, 이 번역은 아드소의 성격을 완전히 이단자로 만든게 아닐까요.

이 부분만큼 중대한 오역은 아니지만, 뒷부분도 원문과는 다소 거리가 느껴집니다.


이로써 하느님이 비롯되시고 신심 깊은 수도자의 본분이 비롯되니, 수도자는 날이면 날마다 영원불멸의 진리로 화신(化身)하는 저 불멸의 성사(聖事)를 겸허하게 찬미한다.

앞서 말했듯 수도자의 의무는 앞 절의 '시작하다' 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날이면 날마다'가 '화신하는'을 수식하는 부사인지, '찬미한다'를 수식하는지 헷갈리고, 오히려 전자의 의미로 읽을 독자가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원문에는 '화신하다' 로 볼 만한 단어(incarnarsi-incarnate)가 들어있지 않은데, incontrovertible(논쟁이 불가능한, 반박이 불가능한)를 오역한 것인지, 아니면 누락한 채 의역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사가 진리로 화신한다는 것은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원문에 의하면 사건이 진리로 화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속성이 진리이며, 그 사건은 이미 변경 불가능하게 완결된 상태입니다.


직역에 가깝게 번역해 보면,

the duty of every faithful monk would be to repeat every day with chanting humility the one never-changing event whose incontrovertible truth can be asserted.

모든 충실한 수도승의 의무는 그 단하나의 절대 변하지 않는 사건-그 사건의 반박불가능한 진리가 단언될 수 있는-을 기도문을 읊조리는 겸손함을 갖고 매일 되뇌어야 하는 것이다.

compito del monaco fedele sarebbe ripetere ogni giorno con salmodiante umiltà l'unico immodificabile evento di cui si possa asserire l'incontrovertibile verità.

충실한 수도승의 의무는 그 유일한 변경할 수 없는 사건-그 사건의 반박불가능한 진리가 단언될 수 있는-을 시편을 옲조리는 겸손함을 갖고 매일 되뇌어야 하는 것이다.

salmodiante-시편을 노래, 낭송하는-를 psalmodize 라는 좀 더 원어에 가까운 단어를 택하지 않고 chanting으로 옮겼고, unico를 the one,

immodificabile를 never-changing으로 옮겼습니다.

몇 달 앞서 한국에서 최초로 '장미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을 출간했던 이동진 선생-유명 연예인 이동진 씨와는 동명이인이며, 외교관 출신의 번역가입니다-의 번역은 (아마도) 영역본이 저본이어서인지, 마찬가지로 요한복음 1:2 부분에서 오역이 발생했지만, 후반부는 비교적 정확하게 옮겨져 있습니다.


참고로 요한복음 1장 1,2절을 보면,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καὶ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οὗτος ἦν ἐν ἀρχῇ πρὸς τὸν θεόν. - NA28

'전부터 계셨다' 로 번역되는 근거가 되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미완료 과거시제 ἦν 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Οὗτος (이 사람, 이것) 는 1절의 로고스를 가리키며, 한국어 성경들에서는 대부분 '말씀'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πρὸς τὸν θεόν 하느님과 함께πρὸς, 인데, 전치사 πρὸς 에는 단순히 함께 계신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있으며, 교류를 하고 계셨다는 의미까지 있다고 합니다.

In principio erat Verbum et Verbum erat apud Deum et Deus erat Verbum

hoc erat in principio apud Deum - Vulgata

Verbum말씀은 라틴어 문법에서 중성명사로서, 2절에서 중성 지시대명사 hoc 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어에서는 중성이 사라졌고, verbum은 남성명사  il verbo 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il Verbo로 옮긴 CEI판에서는 남성 3인칭대명사 egli를 사용했고, 다른 번역들에서는 말씀으로 il Verbo 대신 여성명사 la Parola 를 쓰면 여성 3인칭대명사 essa를 사용하기도 하고, 이후 예수가 될 말씀의 인격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냥 egli를 쓰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듯 에코가 원문에 적은 요한복음은 이탈리아 주교회의 성경(La Sacra Bibbia CEI)의 번역과 거의 같습니다.

In principio era il Verbo, il Verbo era presso Dio e il Verbo era Dio. 

Egli era in principio presso Dio - CEI

In principio era il Verbo e il Verbo era presso Dio, e il Verbo era Dio. 

Questo era in principio presso Dio - 에코

코이네 그리스어의 미완료과거시제와 비슷한 직설법 반과거 시제 era로 번역했습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문장입니다. 고린도 전서 13:12의 일부가 불가타의 라틴어와 이탈리아어로 들어간 것 같은데, 위버는 킹제임스 성경을, 이윤기는 공동번역에 가깝게 옮겼습니다. 


Ma videmus nunc per speculum et in aenigmate e la verità, prima che faccia a faccia, si manifesta a tratti (ahi, quanto illeggibili) nell'errore del mondo, così che dobbiamo compitarne i fedeli segnacoli, anche là dove ci appaiono oscuri e quasi intessuti di una volontà del tutto intesa al male.


But we see now through a glass darkly, and the truth, before it is revealed to all, face to face, we see in fragments(alas, how illegible) in the error of the world, so we must spell out its faithful signals even when they seem obscure to us and as if amalgamated with a will wholly bent on evil.


그러나 videmus nunc per speculum et in aenigmate(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해서)2  진리는 우리 앞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세상의 허물을 통해 그 진리를 편편이 볼 수 있을 뿐이다(아, 이 또한 알아보기가 얼마나 어렵더냐?). 우리는 사악한 의지에 물들여 가려보기가 쉽지 않더라도 이제는 이 진리의 표적을 가려 볼 수 있어야 한다.


원문과는 약간 구조가 다르지만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가려서 보다'로 번역된 compitare(한 자 한 자 구분해서 신중히 읽다)의 늬앙스가 좀 살지 않는거 같습니다.

'...어렵더냐?' 는 '어렵더냐 !' 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직역에 가깝게 해보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거울을 통해 수수께끼 속에서 보며, 그리고 그 진리는, 자신의 얼굴을 우리 얼굴에 마주하기 전에, 세상의 오류 안에서 파편으로(아, 얼마나 읽기 어려운가)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의 충실한 인장(印章)들을 한 자 한 자 읽어내어야만 한다. 심지어 우리에게 그것들이 모호해 보이고, 완전히 악으로 향한 어떤 의지에 의해 거의 엉킨 듯이 보이는 곳에서도.


참고로 고린도전서 13:12는,

βλέπομεν γὰρ ἄρτι δι’ ἐσόπτρου ἐν αἰνίγματι, τότε δὲ πρόσωπον πρὸς πρόσωπον· ἄρτι γινώσκω ἐκ μέρους, τότε δὲ ἐπιγνώσομαι καθὼς καὶ ἐπεγνώσθην. - NA28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거울을 통해 수수께끼 속에서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이다].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내가 [하느님께] 완전히 알려졌던 것처럼 나도 완전히 알게 될 것이다.

τότε δὲ πρόσωπον πρὸς πρόσωπον 그때에는 그러나 얼굴이 얼굴을 향하여... 요한복음 1:1-2에 있는 πρὸς 가 보입니다.

Videmus nunc per speculum in aenigmate: tunc autem facie ad faciem. Nunc cognosco ex parte: tunc autem cognoscam sicut et cognitus sum. - Vulgata

Ora vediamo come in uno specchio, in maniera confusa; ma allora vedremo a faccia a faccia. Ora conosco in modo imperfetto, ma allora conoscerò perfettamente, come anch'io sono conosciuto. - CEI

For now we see through a glass, darkly; but then face to face: now I know in part; but then shall I know even as also I am known. - KJV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 공동번역


이어지는 대목은,


Giunto al finire della mia vita di peccatore, mentre canuto senesco come il mondo, nell'attesa di perdermi nell'abisso senza fondo della divinità silenziosa e deserta, partecipando della luce inconversevole delle intelligenze angeliche, 

trattenuto ormai col mio corpo greve e malato in questa cella del caro monastero di Melk, mi accingo a lasciare su questo vello testimonianza degli eventi mirabili e tremendi a cui in gioventù mi accadde di assistere, ripetendo verbatim quanto vidi e udii, senza azzardarmi a trarne un disegno, come a lasciare a coloro che verranno (se l'Anticristo non li precederà) segni di segni, perché su di essi si eserciti la preghiera della decifrazione. 


Having reached the end of my poor sinner’s life, my hair now white, I grow old as the world does, waiting to be lost in the bottomless pit of silent and deserted divinity, sharing in the light of angelic intelligences; 

confined now with my heavy, ailing body in this cell in the dear monastery of Melk, I prepare to leave on this parchment my testimony as to the wondrous and terrible events that I happened to observe in my youth, now repeating all that I saw and heard, without venturing to seek a design, as if to leave to those who will come after (if the Antichrist has not come first) signs of signs, so that the prayer of deciphering may be exercised on them.


가련한 죄인의 삶이 이윽고 막바지에 이르고 보니 이제 내 머리는 백발......바야흐로 바닥 모를 심연, 고요와 적막의 신성이 가득한 그 심연을 헤맬 날을 기다리는 한편 천사의 은혜인 지성의 광명에 의지하고 세상과 더불어 나이를 먹는다.

늙고 병든 육신을 여기 안온한 멜크 수도원의 독방에 가둔 나는 지금 소싯적에 우연히 체험하게 된 저 놀랍고도 엄청난 사건의 기록을 이 양피지에다 남겨 놓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나는 보고 들은 바를 한 순간 한 순간, 한마디 한마디를 그대로 옮기되 굳이 어떤 구상의 형식을 세우지 않으려 한다. 뒤에 오는 이들(가짜 그리스도가 먼저 오지 않는다면)에게 표적을 표적으로만 남기는 뜻은 글을 아는 교우로 하여금 이를 음미하게 하기 위함이다.


nell'attesa di perdermi nell'abisso senza fondo della divinità silenziosa e deserta 침묵하는 황량한 신성의 바닥없는 심연 안에 perdermi 를 기다리며, 인데 perdermi(perdersi 잃다 + mi 나를)는 자신을 잃어버리다 혹은 길을 잃다, 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바닥이 없는 심연(성경에서는 '무저갱'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안으로 빠진다면 영원히 추락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길을 잃는 수준을 넘어서 완전히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것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partecipando della luce inconversevole delle intelligenze angeliche (천사적 지성들의 소통할 수 없는 빛을 나누어 가지면서)를 위버는 sharing in the light of angelic intelligences 로 번역했는데, "[인간의 지성으로는] 'inconversevole 대화할 수 없는, 소통할 수 없는' 빛" 에서 inconversevole가 누락되었습니다.

매우 사소하지만 caro - dear 는 (편안하고 평온한) '안온함' 보다는 '사랑하는, 친애하는' 이 더 정확할 거 같습니다.

azzardarmi a trarne un disegno - venturing to seek a design 은 '굳이 구상의 형식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감히 디자인(계획, 의도)을 찾으려고 시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원문에서는 trarne = trarre(끌어내다) + ne(그것들로부터 = 그 사건들로부터)로 되어 있어서 '그 사건들로부터 계획, 의도를 끌어내려 한다' 라는 의미가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segni di segni - signs of signs 는 '표적을 표적으로만' 으로 번역되었는데, (본업 기호학자였던 에코의 글이기도 하고) 내용상으로도 '표적'보다는 '기호'로 번역하는게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앞에서 '표적'으로 번역되었던 segnacolo와 구분이 될 것도 같습니다.

perché su di essi si eserciti la preghiera della decifrazione - so that the prayer of deciphering may be exercised on them 은 '글을 아는 교우로 하여금 이를 음미하게 하기 위함이다'로 번역이 되었는데, 원문의 대체적 의미는 들어 있지만 좀 빠진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직역하면 '해독의 기도가 그것들(기호들의 기호들) 위에서 행해지도록 si eserciti 하기 위해서이다'

아드소가 목격한 사건들은 신이 어떤 계획을 갖고 만든 기호들이라고 할 수 있고, 신의 계획을 해석하려 않고 사건들을 그대로 기록한 아드소의 수기는 기호들의 기호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이 남긴 수기를 보면서 신의 계획을 해독하기를 바라는 기도를 행하라, 는 것이 요지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직역에 가깝게 해보면,

죄인인 내 삶의 끝에 이르러, 머리는 백발이 되어 세상처럼 늙어가며, 침묵하는 황량한 신성의 바닥없는 심연 속에 나를 잃기를 기다리며, 천사적 지성들의 소통할 수 없는 빛을 나누면서, 

이제 나의 무겁고 병든 몸과 함께 사랑하는 멜크 수도원의 이 독방에 갇힌 채, 내가 젊은 시절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던 놀랍고 끔찍한 사건들에 대한 증언을 이 양가죽 위에 남기려 허리띠를 동여 매는데, 감히 그 사건들로부터 계획을 끌어내려는 시도는 없이, 내가 보고 들었던 모든 것들을 그대로 되풀이하려는데, 마치 뒤에 올(만약 적그리스도가 먼저 오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기호들의 기호들을 남겨주듯, 해독(解讀)의 기도가 그 기호들 위에서 행해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영역본을 보면,

mia vita di peccatore 나의 죄인의 삶 을 my poor sinner’s life 나의 불쌍한 죄인의 삶 으로 하면서 '불쌍한'을 추가하고,

abisso senza fondo della divinità silenziosa e deserta -침묵하는 황량한 신성의 바닥없는 심연-를 the bottomless pit of silent and deserted divinity 로 abyss 대신 pit을 택했습니다(킹제임스 성경을 비롯해서 많은 영어 성경들이 the bottomless pit 으로 영역하고 있습니다)

mi accingo a lasciare su questo vello testimonianza , mi accingo - 하려고 자신의 허리띠를 동여맨다, 준비한다, 는 군인이 전쟁을 앞두고 옆구리에 칼을 차는 것에서 유래된 표현이라고 하는데, prepare to leave..번역했고, su questo vello 이 양가죽 위에, 를  on this parchment 이 양피지 위에, 로 풀어서 번역했습니다.

원문은 절들이 계속해서 쉼표로 연결되고 있는데 위버는 '...천사들의 빛을 나누며' 이후를 세미콜론으로 대체해서 전반부 후반부를 나누고 있습니다.


제1일 1시과 마지막 대목입니다.


Diversamente dalle altre, questa si segnalava però per la mole incommensurabile dell'Edificio. Non avevo l'esperienza di un maestro muratore, 

ma mi avvidi subito che esso era molto più antico delle costruzioni che lo attorniavano,nato forse per altri scopi, e che l'insieme abbaziale gli 

si era disposto intorno in tempi posteriori, ma in modo che l'orientamento della grande costruzione si adeguasse a quello della chiesa, o questa a quello.

Perché l'architettura è tra tutte le arti quella che più arditamente cerca di riprodurre nel suo ritmo l'ordine dell'universo, 

che gli antichi chiamavano kosmos, e cioè ornato, in quanto è come un grande animale su cui rifulge la perfezione e la proporzione di tutte le sue membra. 

E sia lodato il Creatore Nostro che, come dice Agostino, ha stabilito tutte le cose in numero, peso e misura. 


Unlike the others, this one was remarkable for the exceptional size of the Aedificium. I did not possess the experience of a master builder,

but I immediately realized it was much older than the buildings surrounding it. Perhaps it had originated for some other purposes, and the abbey’s compound had been laid out around it at a later time, but in such a way that the orientation of the huge building should conform with that of the church, and the church’s with its. 

For architecture, among all the arts, is the one that most boldly tries to reproduce in its rhythm the order of the universe, which the ancients called “kosmos,” that is to say ornate, since it is like a great animal on whom there shine the perfection and the proportion of all its members. 

And praised be our Creator who, as the Scriptures say, has decreed all things in number, weight, and measure.


다른 수도원들과는 달리 이 수도원의 본관은 주변 건물에 견주어 엄청나게 컸다. 본관을 축조한 거장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지만 나는 곧 이 건물이 주변 건물보다 훨씬 오래 전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원래 이 본관 건물은 다른 용도로 축조되었는데 수도원이 들어서면서 이 건물을 본관으로 삼고 주변 건물은 배치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되, 이 거대한 건축물과 교회의 상호 정위는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니 어려운 일이 아닌가. 

모든 예술 가운데서 자신의 리듬 속에 우주 질서(고대인들의 이른바 코스모스)를 체현하는 데 가장 큰 힘을 기울여야 하는 예술이 바로 건축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장식 행위의 산물인 건축물은, 자기가 속한 종(種)의 완성미와 균형미를 대표하는 한 마리의 동물과 같다. 

수와 무게와 치수를 주관하시는 우리 창조주를 찬양할진저. - 장미의 이름, 2000년 신판 


수도원 구조를 묘사하면서 나온 Edificio 는 이탈리아어로 (웅장한 규모의) 건물, 건축물을 의미하는데, 에코는 대문자를 사용해서 먼저 지어진 건물의 고유명칭으로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위버의 Everyman's Library판과 열린책들판에 수록되어 있는 수도원 평면도 모두 중간이 책 가운데 접히는 부분에 걸려서 '집회소' 위치를 찾기 힘듭니다)

위버는 이를 같은 의미의 라틴어 Aedificum으로 옮겼고, 이윤기는 이를 '본관'이라고 옮겼습니다. 이 건물에는 필사실과 도서관 등이 들어 있습니다. 중세 수도원의 업무중에 연구와 필사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기도를 드리는게 더 본질적인 업무가 아닐까 싶어서, 이 건물을 '본관'이라고 부르는 것에 약간의 위화감이 듭니다. 이동진은 '도서관' 이라고 옮겼고, 일본어역에서는 '문서관' 이라고 되어 있다는데, 이게 더 적절한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Non avevo l'esperienza di un maestro muratore, ma mi avvidi subito che.. I did not possess the experience of a master builder, but I immediately realize

'나는 석공 장인의 경험을 갖지는 않았지만,  --을 바로 알아차렸다' 란 의미로, '축조한 거장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지만... 알아내었다'와는 좀 차이가 있고,

nato forse per altri scopi 아마도 다른 목적들을 위해서 생겨난 듯한, 이므로 확실한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che l'insieme abbaziale gli si era disposto intorno in tempi posteriori, ma in modo che l'orientamento della grande costruzione si adeguasse a quello della chiesa, o questa a quello.

수도원의 전체가 나중에 그것(문서관)의 주위에 배치되었다는 것을, 그러나 그 거대한 건물(문서관)의 방위가 성당의 방위에 맞춰진, 혹은 성당의 방위가 문서관의 방위에 맞춰진 방식이었다.

건물들을 조화를 이루어서 배치하는 것이 어려운 일일 것 같기는 한데, 원문에 의하면 잘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다른 판본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2022년 나온 '디 에센셜: 장미의 이름(완전판)' ebook 미리보기를 보면 아래와 같이 개정이 되어 있습니다.


다른 수도원들과는 달리 이 수도원의 본관은 주변 건물에 견주어 엄청나게 컸다. 건축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나도 곧 이 건물이 주변 건물보다 훨씬 오래전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이 본관 건물은 다른 용도로 축조되었는데 후에 그 주변에 수도원 건물들이 들어선 것이리라. 그러나 그 와중에도 건축가들은 이 거대한 본관과 성당, 그리고 성당과 본관의 상호 정위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했던 것이다. 모든 예술 가운데서 자신의 리듬 속에 우주 질서(고대인들의 이른바 코스모스)를 체현하는 데 가장 큰 힘을 기울여야 하는 예술이 바로 건축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장식 행위의 산물인 건축물은, 자기가 속한 종(種)의 완성미와 균형미를 대표하는 한 마리의 동물과 같다. 수와 무게와 치수를 주관하시는 우리 창조주를 찬양할진저. - 디 에센셜: 장미의 이름(완전판)


che gli antichi chiamavano kosmos, e cioè ornato,

which the ancients called “kosmos,” that is to say ornate,

고대인들이 코스모스-즉 아름답게 장식된 것/ 아름답게 장식된-라고 부른 것,

ornato 는 '장식, 건축의 장식물'을 의미하는 명사, '장식을 가진, 장식이 화려한' 이란 형용사 혹은 ornare 꾸미다, 장식하다의 과거분사고, e cioè 는 '즉, 다시 말해' 라는 의미로 앞서 나온 말을 풀어서 설명하거나 구체적인 예를 들거나 할 때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장식인 것 혹은 장식이 되어 있는 것은 코스모스이며, '장식행위의 산물인 건축물'은 원문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e cioè 뒤에는 앞에 나온 것과 같은 품사가 오는 것이 일반적(다른 품사도 올 수 있습니다)이어서, ornato는 아마 명사일 것 같기는 한데, 형용사로 번역한 번역가들도 있고, 위버 역시 형용사라고 봤습니다. 

참고로, 이 ornato 의 직계어원인 명사 ornamentum이 들어간 유명한 문장이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나오는데,

namque et Graeci nomine ornamenti appellavere eum et nos a perfecta absolutaque elegantia mundum.

왜냐하면 그리스인들 역시 '장식'이라는(ornamenti - 명사 ornamentum 의 속격형태) 이름으로 그것[mundus 우주]을 불렀고, 그리고 우리는 완벽하고 절대적인 우아함으로부터 '우주'라고(mundum - mundus의 대격)  불렀다.

in quanto [    ] è come un grande animale su cui rifulge la perfezione e la proporzione di tutte le sue membra.

[생략된 주어]가 한 큰 동물과 같다는 점에서, 그 동물 위에서 그 동물의 모든 사지(四肢)의 완벽함과 비례가 빛나는.

membro, member 모두 라틴어 membrum 에서 나온 말인데, membro는 흔히 사용되는 멤버, 회원 이라는 의미 외에 팔 혹은 다리, 몸에 달린 관절로 꺽이는 부위, 남자나 수컷의 자지 등의 뜻을 가지고, 원문에 있는 복수형 le membra는 '종' 이 아니라 사지-두 팔과 두 다리 혹은 네 다리-, 혹은 몸통에 붙은 다리들 등을 집합적으로 의미하는데, 몸통에 붙어있기는 한데 팔과 다리처럼 물건을 쥐거나 걷는데 사용되는 기관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날개는 결코 멤브로도 멤브라도 아니라고 합니다). Il capo (머리) - Il tronco (몸통) - Le membra (팔과 다리).

원문의 삽입절 come dice Agostino(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것처럼)를 위버는 as the Scriptures say(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처럼)로 변경했고, 이윤기 역에서는 누락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에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재고 헤아리고 달아서 처리하셨습니다. - 지혜서 11:20 후반' 을 해석하는 대목이 있어서 들어간 것이라고 하는데, 위버는 원 소스를 밝히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직역에 가깝게 번역해보면,

다른 수도원들과는 달리, 이 수도원은 그러나 '문서관'의 측정할 수 없는 거대한 크기로 인해 두드러졌다. 나는 석공 장인의 경험을 갖지는 않았지만, 아마 다른 목적들을 위해 지어졌던 것 같은 문서관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건물들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것과 수도원의 부속 건물들이 나중에 문서관의 주위로 배치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는데, 그럼에도 그 거대한 건물[문서관]의 방위가 성당의 방위에, 혹은 성당의 방위가 문서관의 방위에 맞추어진 방식이었다.

왜냐하면 건축은 모든 예술들 중에서 가장 대담하게, 고대인들이 코스모스-즉, 아름답게 장식된 것-라고 불렀던 우주의 질서를 자신의 리듬 속에서 재현하려고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 [동물의] 모든 사지의 완벽함과 비례가 그 [동물] 위에서 빛나는 하나의 거대한 동물과 같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수와 무게와 치수로 정하신-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듯- 우리의 창조주께서 찬양을 받으소서.


(이 큰 동물이 과연 네 다리만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절한 한국어 단어를 찾을 수가 없군요).


뒤에서 두 번째 문장을 어떻게 이해할 지가 다소 애매한데,

1. Perché l'architettura è tra tutte le arti quella che più arditamente cerca di riprodurre nel suo ritmo l'ordine dell'universo, che gli antichi chiamavano kosmos,

For architecture, among all the arts, is the one that most boldly tries to reproduce in its rhythm the order of the universe, which the ancients called “kosmos,”

여기서 목적격 관계대명사 che - which 의 선행사는 무엇인가? 고대인들이 코스모스라고 불렀던 것은 무엇인가?

a. 우주 b. 우주의 질서


2. in quanto [     ] è come un grande animale su cui rifulge la perfezione e la proporzione di tutte le sue membra. 

since it is like a great animal on whom there shine the perfection and the proportion of all its members. 

essere(이다, 있다) 동사의 3인칭 단수 현재형 è 의 생략된 주어는 무엇인가? since it is like a great animal.. 에서 it 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a. 건축 b. 우주 c. 우주의 질서 d. 장식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용했던 코스모스 κόσμος 는 인구어 조상어의 어근 ḱens- (선언하다, 정돈하다)가 어원이라고 하는데,

LSJ 에 실린 시대순 의미는, 질서, 장신구,장식품, 통치자, 우주... 등 입니다.

일리아스에서 질서, 장신구라는 의미로 모두 등장하는데,

ὃς ἔπεα φρεσὶν ᾗσιν ἄκοσμά τε πολλά τε ᾔδη μάψ, ἀτὰρ οὐ κατὰ κόσμον, ἐριζέμεναι βασιλεῦσιν,

그는 자신의 머리 속에 질서 없는(ἄκοσμα) 많은 말들을 알고 있었는데, 무모하게, 그러나 질서에(κόσμον) 맞지 않게 왕들과 다투려고 했다. - 2권 213-4행

ἵππους εὖ κατὰ κόσμον ἐρυκέμεν αὖθ’ ἐπὶ τάφρῳ, 말들을 잘 질서κόσμον에 따라 바로 거기 참호 위에 멈춰 세우고 - 11.48, 12.85

ἀμφότερον κόσμός θ’ ἵππῳ ἐλατῆρί τε κῦδος - 둘 모두에게, 말에게는 장식물κόσμός이고 마부에게는 영광이다 - 4.145

αὐτὰρ ἐπεὶ δὴ πάντα περὶ χροῒ θήκατο κόσμον 그러나 그녀가 몸 주변에 모든 장신구를κόσμον 다 둘렀을 때 - 14.87

시간이 지나 피타고라스가 (혹은 다른 인물이) 코스모스에 '우주'라는 의미를 더했다고 합니다. 

ὅτι πρῶτος Πυθαγόρας τὸν οὐρανὸν κόσμον προσηγόρευσε διὰ τὸ τέλειον εἶναι καὶ πᾶσι κεκοσμῆσθαι τοῖς τε ζῴοις καὶ τοῖς καλοῖς - Photius, 비블리오테카(Bibliotheca)

피타고라스가 최초로 그 οὐρανὸν(하늘,천체,우주를) 코스모스라고κόσμον 명명했다는 사실인데, 그것이 완전하기 때문이며, 또한 모든 동물들과 아름다운 것들로 완벽하게 장식되어 있는κεκοσμῆσθαι 상태이기 때문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명문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8권 48-49절에,

Τοῦτον ὁ Φαβωρῖνός φησιν ὅροις χρήσασθαι διὰ τῆς μαθηματικῆς ὕλης, ἐπὶ πλέον δὲ Σωκράτην καὶ τοὺς ἐκείνῳ πλησιάσαντας, καὶ μετὰ ταῦτʼ Ἀριστοτέλην καὶ τοὺς Στωικούς.

Ἀλλὰ μὴν καὶ τὸν οὐρανὸν πρῶτον ὀνομάσαι κόσμον καὶ τὴν γῆν στρογγύλην· ὡς δὲ Θεόφραστος, Παρμενίδην· ὡς δὲ Ζήνων, Ἡσίοδον. 

파보리누스가 말하기를 이 사람(피타고라스)이 수학적인 재료를 통해 정의들을 사용했다고 하고, 소크라테스와 그에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들이 더더욱 많이 [이 정의들을] 사용했으며,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이 [그것을 이용했다고 한다].

게다가 틀림없이 [피타고라스가] 그 하늘을 최초로 코스모스라고 불렀고, 지구를 둥글다고 [최초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테오프라스토스에 따르면 파르메니데스가 [그렇게 불렀다고 하며], 반면에 제논에 따르면 헤시오도스가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가짜 플루타르코스의 '철학자들의 자연학적 견해(Placita Philosophorum)' 2권 1장 1절에,

Πυθαγόρας πρῶτος ὠνόμασε τὴν τῶν ὅλων περιοχὴν κόσμον ἐκ τῆς ἐν αὐτῷ τάξεως.

Θαλῆς καὶ οἱ ἀπʼ αὐτοῦ ἕνα τὸν κόσμον.

피타고라스가 최초로 만물을 둘러싼 영역을 그것 안에 있는 질서로부터 코스모스라 이름 지었다.

탈레스와 그로부터[나온] 자들은 우주가 하나[라고 말했다].

이런 대목들을 보면 피타고라스가 코스모스라고 부른 대상은 우주이며, 그 우주에 질서가 있기 때문에 코스모스라고 불렀다고 이해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대적 해석으로는 피타고라스의 코스모스는 우주라는 물리적 공간이기도 하고, 그 우주에 존재하는 수학적 질서이기도 하고, 그 둘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윤기는 1번은 '우주 질서(고대인들의 이른바 코스모스)'로 번역했고, 2번은 '건축물'로 번역했습니다[이 경우 '건축물'이 아니라 건축(l'architettura, architecture)이라고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윤기보다 앞서 국내 최초로 '장미의 이름(으로)'을 번역 출간했던 이동진은 원문, 영역과 비슷하게 모호하게 번역을 했습니다.


다른 번역들을 보면, 


Denn die Architektur ist unter allen Künsten diejenige, die am kühnsten in ihrem Rhythmus die Ordnung des Universums nachzugestalten sucht,

das die Alten Kosmos nannten, das heißt Schmuck, insofern es wie ein großes Tier ist, auf dem die Vollkommenheit und die Proportion all seiner Glieder erglänzt. - Burkhart Kroeber

왜냐하면 건축은 모든 예술들 중에서, 가장 대담하게 자신의 리듬속에서 우주의 질서를 재현하는 것을 추구하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며, 고대인들은 그 우주를 코스모스-즉, 장식-라고 불렀는데, 우주는 그의 모든 사지의 완벽함과 비례가 그 위에서 빛나는 한 거대한 동물과 같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고대인들이 코스모스라고 부른 것을 우주 das Universum(중성명사)로, 거대한 동물과 같은 것도 우주(es=중성)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독일어 질서와 건축은 여성명사고, Kosmos 와 Schmuck-보석, 장신구, 장식, 화려함 은 남성 명사입니다.


Want de architectuur is onder alle kunsten die welke met de meeste stoutmoedigheid tracht in haar ritme de orde van het universum weer te geven, de orde die door de Ouden kosmos werd genoemd, dat wil zeggen sieraad, orde, want ze is als een groot dier waarover de volmaaktheid en de harmonie van al zijn ledematen uitstraalt. -  Jenny Tuin & Pietha de Voogd

왜냐하면 건축은 모든 예술들 중에서 가장 대담하게 자신의 리듬 속에서 우주의 질서를 재현하는 것을 시도하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며, 그 질서를 고대인들이 부른 이름이 코스모스, 즉, 장식, 질서인데, 그녀는 그의 모든 사지의 완벽함과 조화가 그 위에서 빛나는 한 거대한 동물과 같기 때문이다.

건축, 질서, 장식은 여성 명사, 우주는 중성, 코스모스는 남성에서 유래한 통성 명사인데, 

....,de orde die door de Ouden kosmos werd genoemd '고대인들에 의해 코스모스라고 불렸던 그 질서'... 관계대명사 대신 명사 질서 orde를 넣어서 불린 대상을 명확히 했고, 'dat wil zeggen sieraad, (즉/다시 말하면 장식, )' 뒤에 원문에는 없는 '질서'를 다시 한 번 넣었습니다.

ze 그녀는 is als een groot dier 한 큰 동물과 같다..에서 3인칭 여성 대명사를 사용해서 건축과 질서, 둘 중 하나가 동물과 비슷한 것으로 보이는데,

앞에서 강조하는 걸 보면 질서를 마지막절 주어로 번역하려고 한 게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Бо серед усіх мистецтв саме архітектура найпалкіше намагається відтворити у своєму ритмі лад вселенної, яку старожитні називали kosmos, себто окраса, 

адже вона схожа на велетенську тварину, яка тішить око досконалістю і злагодженістю всіх своїх членів. - Мар'яна Прокопович

왜냐하면 모든 예술들 중에서 바로 건축이 자신 리듬 속에서 온 우주의 질서를 가장 열정적으로 재현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며, 그 우주를 고대인들은 코스모스-즉, 장식-라고 불렀는데, 그녀는 그 모든 사지의 완벽함과 조화로 눈을 즐겁게 하는 거대한 동물과 닮았기 때문이다.

яку старожитні називали kosmos 여성 단수 목적격 관계대명사 яку 를 사용해서 부른 대상은 여성명사 우주로, 

вона схожа на велетенську тварину 동물과 닮은 것은 3인칭 단수 주격 여성대명사 вона 로 번역했습니다.

질서, 코스모스는 남성 명사, 건축, 우주, 장식은 여성 명사입니다. 문맥상 우주를 동물과 닮은 것으로 번역한 것 같습니다.


Ибо из всех искусств архитектура отважнее всех стремится воссоздать собою миропорядок, который древние люди именовали kosmos, то есть изукрашенный, 

он целокупен, как некое громадное животное, поражающее совершенством и согласием во всех членах.  - Елена Костюкович

왜냐하면 모든 예술들 중에서 건축은 가장 대담하게 자기 자신에 의해 우주질서를 재창조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며, 우주질서를 고대인들은 코스모스-즉, 장식된-라고 불렀는데, 그는 모든 사지에서 완벽함과 조화로 경탄을 자아내는 어떤 거대한 동물처럼 완전하다.

l'ordine dell'universo(우주의 질서)를 миропорядок(우주질서) 라는 하나의 남성 명사로 번역해서, 고대인들이 코스모스라고 부른 것은 '우주의 질서'로, 

он целокупен, как некое громадное животное,(그는он-3인칭 남성 단수- 완전하다/총체적이다, 마치 어떤 거대한 동물처럼)로 동물과 비슷한 것의 주어로 3인칭 남성 대명사를 사용했습니다. 러시아어 코스모스 космос 도 남성 명사이기는 한데, 원문에서 라틴 문자로 적어 놓은 것을 보면, '우주질서'를 주어로 번역한 것이 맞을 듯 합니다.

건축 архитектура 은 여성 명사입니다.


Διότι η αρχιτεκτονική είναι, ανάμεσα σ’ όλες τις τέχνες, εκείνη που ψάχνει με τον μεγαλύτερο ζήλο να αναπαράγει στον ρυθμό της την τάξη του σύμπαντος, αυτού που οι αρχαίοι ονόμαζαν «κόσμο», στολίδι δηλαδή, αφού είναι ένα μεγάλο ζώο που πάνω του αστράφτει η τελειότη τα και η αρμονία των μελών του. - Έφη Καλλιφατίδη

왜냐하면 건축은, 모든 예술들 중에서, 가장 큰 열정을 가진 채 그 자신의 리듬 속에서 우주의 질서를 재현하려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고대인들은 우주를 코스모스-즉 장식-라고 불렀는데, [생략된 주어는] 그 모든 사지의 완벽함과 조화가 그 위에서 빛나는 하나의 거대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건축은 여성, 질서는 여성, 우주는 중성 명사입니다. 

αυτού που οι αρχαίοι ονόμαζαν «κόσμο» (고대인들이 '코스모스'라고 불렀던 그것)에서 남성/중성 대명사 αυτού 를 사용해서 고대인들이 부른 대상이 우주라고 번역했고, 거대한 동물의 주어는 이탈리아어와 마찬가지로 생략되어 있습니다.


For blant alle kunstarter er arkitekturen den som best går inn for å reprodusere rytme og orden fra selve universet, det de gamle i tidligere tider kalte kosmos, men utsmykket og prydet, som et stort dyr er forskjønnet ved den perfekte proporsjonering av kropp og lemmer. - Carsten Middelthon

왜냐하면 모든 예술 분야들 중에서 건축은 우주 그 자체로부터 오는 리듬과 질서를 재현하고자 가장 전념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 우주를 이전 시대의 고대인들은 코스모스- 그러나 꾸며지고 장식된-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마치 한 거대한 동물이 몸과 사지의 완벽한 비례에 의해 아름다워진 것과 같다.

건축은 남성 혹은 여성/남성 둘 다 가능한 명사, 리듬, 질서는 남성 명사, 우주는 중성 명사인데, 

det de gamle i tidligere tider kalte kosmos 이전 시대의 고대인들이 코스모스라고 부르던 것 det, 에서 중성 지시대명사 det을 사용해서 우주를 의미했고, 마지막 절의 주어는 역시 애매합니다.


Car l’architecture est, d’entre tous les arts, celui qui cherche avec le plus de hardiesse à reproduire dans son rythme l’ordre de l’univers, que les anciens appelaient Kosmos, à savoir orné, dans la mesure où elle est comme un grand animal sur lequel resplendissent la perfection et la proportion de tous ses membres. - Jean-Noël Schifano

왜냐하면 건축은, 모든 예술들 중에서, 고대인들이 코스모스-즉, 장식-라고 불렀던 우주의 질서를 자신의 리듬 속에서 가장 대담하게 재현하려 시도하는 것인데, 건축은 그 사지의 완벽함과 비례가 그 위에서 빛나는 하나의 거대한 동물과 같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원문과 마찬가지로 목적격 관계대명사의 선행사가 무엇인지는 모호한데, 동물과 비슷한 것은 '건축'으로 번역했습니다.

...elle est comme un grand animal 그녀(elle=여성 명사 건축)는 한 거대한 동물과 같다... 질서, 우주, 코스모스, 장식orné 모두 남성 명사입니다.


なぜなら、あらゆる芸術のなかでも建築は、太古の人びとがコスモスと名づけた宇宙の秩序を、最も果敢におのれのリズムのうちに取り入れて再創造することを めざすものであり、いわばおのれの四肢の完璧な均衡の上に燦然と輝いて立ち上がる巨大な生き物にも似せて、それが造られることをめざすものであったからだ。- 河島英昭

왜냐하면, 모든 예술 중에서도 건축은, 태고의 사람들이 코스모스라고 이름 붙인 우주의 질서를, 가장 과감하게 그 자신의 리듬 속에 거두어들여 재창조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며, 말하자면 그 자신의 사지의 완벽한 균형 위에 찬연히 빛나며 일어서는 거대한 생물에도 비슷하게, 그것이 만들어지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코스모스라고 불린 것이 무엇인지는 모호하고, 동물과 비슷한 것은 건축으로 번역된 것으로 읽힙니다. 전체적으로 원문과 약간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이 일본어역은 인도 건축 전문가인 카미야 타케오(神谷武夫) 씨가 자신의 사이트에 올려둔 것인데, 책에서 그대로 옮긴 것인지, 아니면 편집을 가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문장을 보면 (확언할 수는 없지만) 번역가가 쓴 글이 아닌가 싶은 느낌은 듭니다. 

'장미의 이름' 일본어판은 1990년에 처음 나왔고-중국어판은 1987년이 초판이라고 하니, 1986년 3월 출간된 이동진의 '장미의 이름으로'는 역시 빨랐던 것 같습니다-, 가와시마 히데오 교수가 별세한 후, 2025년 아들인 가와시마 시로(河島思朗) 교수가 수 백 곳을 개정해서 '완전판' 이란 부제를 붙여서 출간했습니다.


이상의 번역들의 번역가들은 모두 이탈리아어 원서를 저본으로 번역했고, 에코의 다른 작품들도 번역했던 전문가들이었음에도 의미들이 조금씩 갈리고 있는데,

수도원은 처음에 만들어진 문서관과 이후에 들어선 건물들이 질서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건축은 우주의 질서를 재현하려고 해서 그렇다.

고대인들은 우주를 코스모스-즉, 장식-라고 불렀다.

우주가 질서있고 화려한 동물 같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도로 요약될 수 있는 부르크하르트 크뢰버의 독일어 역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이상 소설 초반부의 몇 대목을 살펴보았는데, 영역본에서 중역한 이윤기 선생의 번역은 다소 원문과는 거리가 있는 부분들도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이 번역의 독자적인 가치를 평가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원문에 가까운 번역을 보고 싶은 독자들도 있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 

장미의 이름 판권을 가진 열린책들에서 구판의 절판없이 새로운 번역본을 출간해 주면 좋을 것 같은데, 기존 번역본이 잘 팔리고 있는데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그런 일을 해 줄 것 같지는 않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