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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뜨겁게
배지영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실은 난 하고 싶은 게 전혀 없다. 당장 종말이 온대도 후회될 것도 없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게 분명한 지긋지긋한 일상의 연속이니 아쉬울 게 없다.
사랑에 대한 기대도 없다.
뒤통수나 때렸던 사랑이 나이 먹는다고 근사한 로맨스가 되어 나타나지 않을 게 분명하니 말이다.
그런데도 불안감은 여전하다.
꿈도, 열정도 없이 삶이 흘러가는데로 공회전 같은 일상을 반복해오던 스물아홉 살 인턴기자 ‘윤제이’.
대단한 야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보통 혹은 평균'이라는 삶의 기준점도 그녀의 손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그럴듯한 경력없이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살아온 그녀는, 충족되지 않는 경제적 문제로 자신이 일하는 잡지사 옆에 있는 성인용품 가게의 제품설명과 후기를 쓰는 알바까지 몰래하며 산다.
그러나 소위 투잡을 뛰는 것은 그녀 뿐만이 아니다. 같은 나이이면서 주민등록증의 생일이 다소 빠르다는 이유로 언니 노릇하는 한 기자는 자기계발서에나 나올 법한 처세술을 매일같이 그녀에게 읊어대지만 실상은 그녀 역시 빠듯한 삶으로 인해 주말에 투잡을 뛰고 있다.
내가 언제 성공하고 싶다고 했어요? 누굴 이기겠다고 한 적도 없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방법을 알려주는 건데요.
난 그냥 평범하게, 땅바닥에 발 딱 붙이고서 살고 싶을 뿐이라고요.
예전의 명성의 흔적에 기대어 입사한 서울대 출신의 조기자는 결국 잡지사의 부조리함을 이기지 못하고 나가고 그를 대신해 제이는 잡지의 꼭지기사로 낼 '배명호'라는 인물을 취재 하러 나선다. 그는 외계인과의 교신을 통해 실종된 사람들을 찾아준 사례가 인물로 본인의 아내도 외계인에게 실종되어 그녀를 찾으러 다닌다고 한다.
그런 배명호에게 남자친구가 (외계인에게) 실종됐다며 접근하는 제이를 '검증' 한답시고 몸 구석구석을 훑으며, ‘시그니처’ ‘텔레파시’ ‘MJ’ 같은 뜻 모를 단어들을 내뱉던 그의 기사쓰기를 포기하고자 하는 그녀.
그때 제이의 귀를 보고 시선에 사로잡힌 배명호가 그녀를 믿고 남자친구의 행방을 같이 찾아주기로 한다. (중략)
<오란씨>, <링컨타운카 베이비> 등의 소설로 대중과 평단의 인정을 받은 배지영 작가의 신작 '안녕, 뜨겁게'는 제목과 책의 띠지만 봤을 때 이별을 겪은 남녀의 흔한 이야기 같은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책 안에는 현실적인 '우리네' 이야기가 다분하다. 취업하기 힘든 현실에 갇혀 꿈도 열정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네' 20~30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넘어서면 할수록 자꾸 미끌어져 내려와 버리는 벽에 막혀 도피하고 숨어드는 우리가 그 곳에 있다.
더불어 이 책에는 '관계의 급작스러운 단절'로 말미암아 형성된 마음의 병을 안고 사는 우리도 있다. 외계 생명체에게 아버지와 아내를 납치당한 제이와 배명호가 겪어야 했던 불가항력적인 이별은 물론, 이별을 원하던 연인을 억지로 붙잡으려하다 연인이 자신을 피해 차도에까지 뛰어드는 것을 목격한 ‘성인 용품점’ 사장 미스터리까지. 생각하지 못한 이별 탓에 쉬이 발걸음을 돌려 쿨하게 뒤돌아 서지 못하는 우리가 그 곳에 있다.
단지 '이별' 혹은 '헤어짐'이 아쉬워서가 아니다. 제대로 된 이별의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던 것은 바로 만남의 지속이 아니라 뜨겁게 헤어지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뜨겁게 헤어지는 것. 쿨하게 '그래, 안녕'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그 다음을 잘 이겨내고 걸어나갈 수 있게 격려하며 뜨겁게 안녕을 외치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사람과의 관계를 펼쳐진 책처럼 낱낱이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어.
적당히 오해하는 편이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오래 사랑할 수 있는 법이기도 하지.
외계인이라는 소재를 차용하여 부분부분 의아스러운 구절이 있긴하지만,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이지 않나 싶다.
특히 쉽게 읽히고 공유할 생각이나 차용할 부분들이 많아서 더 좋았다. 재미난 소설이었다. (끝)
내가 언제 성공하고 싶다고 했어요? 누굴 이기겠다고 한 적도 없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방법을 알려주는 건데요. 난 그냥 평범하게, 땅바닥에 발 딱 붙이고서 살고 싶을 뿐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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