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 딸이니까 - 미노스의 가족동화
미노스 지음 / 새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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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이 옅어가고 세상 살기가 이전보다 각박해져 가는 요즘, 메마른 어른이들을 위한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감정이 무뎌지고 푸석해져 가는 어른이들의 마음을 치유해 줄 이야기 혹은 장소들 말이다.

조금은 야하고 약간은 은밀하지만,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동화들을 각색하여 만든 어른이 뮤지컬 '난쟁이들'이 그렇고, 쥬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지난 노래들을 들으며 자리에서 열심히 흔들 수 있는 홍대의 '어른이 대공원'이 그렇다. 그리고 이 책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 딸이니까'도 무뎌진 어른이들의 감성을 촉촉히 적셔 주기에 충분했다.

결혼한 딸이 손녀에게 들려줄 동화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해왔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도, 더군다나 동화 작가의 세계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기에 
딸의 그 말에 그저 너털웃음을 웃고 말았습니다.

- 작가의 말 中

이 책은 네살박이 손녀를 위해 딸이 이 세상에 하나 뿐이 동화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에서 시작되었다. 넘쳐나는 이야기 보따리들 중 내 소중한 이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이 안타깝게도 하나 둘 고갈되어가는 것을 보며 시작된 일이었다.

전문 화자가 유창하게 읊어낸다기보다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가 익어가는 겨울 밤 화롯불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건네 주는 듯한 느낌의 글들이었다. 가족'동화'라는 분류에 맞게 어린 친구들에게는 재미난 이야깃 거리로, 어른이 친구들에게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묵직함으로 다가올 것 같았다.

기를 쓰고 달려왔지만 종착점은 여전히 안 보인다. 
종착점이란 애당초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앞서가던 수많은 주자들을 따라잡기 위해 숨 가쁘게 뛰어왔건만,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앞에도 뒤에도 뛰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혼자서만 덩그러니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 「서프라이즈!」 中

모든 글들이 가볍게 읽히는 반면,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인생을 먼저 살아본 조금 더 큰 어른이가 새로운 놀이 장소로 손을 이끌어주어 가는 와중, 함께 웃고 떠드는 느낌이랄까? 그 즐거움 뒤에 오는 행복한 떨림이 이 책에는 있었다. 매일 매일 하루 앞만 보며 지루하게 혼자 달려보지만 여전히 제자리 걸음하는 내게, 혹은 꼴찌를 하고 있는 내게 옆에서 기운을 북돋아주고 함께 손뼉을 치며 나아가는 것 같았다.

모처럼 거울 앞에서 보는 40대 후반의 자신이 부쩍 늙어 보였다.
희끗거리는 머리카락에, 벗어지는 이마, 늘어나는 주름살…….
머리를 감고 면도를 하기 위해 거울 앞에 앉은 기영. 
눈을 감았다가 무심코 거울을 보던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울 속에… 거울 속에… 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 「아들 속의 아버지」 中

그리고 타지에 계신 우리 부모님들이 전화로 두런두런 해주던 이야기들이 더러 오버랩 되어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잔소리 같이 느껴지던 그 말들이 사실은 나를 위한 것임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던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되었다. 

결국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렇다. 이야기 방식이 서투를 뿐, 내 아들 딸 - 여전히 자신들에게는 어리게만 보이는 어른이들 - 이 잘 되길 빌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본인의 방식으로 건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쉽게 풀어 다시 한번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었다. 마치 아버지가 딸에게, 그리고 손주에게 진심을 담아 잘되길 바라며 이야기하듯이......

불행한 생활이 시계를 빨리 가게 하고, 행복한 생활이 시계를 늦게 가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불행도 행복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 흔들리는 당신 마음일 뿐이었지요.

- 「랄랄라 시계마을」 中

오늘 저녁에는 부모님에게 전화를 한 통 드려봐야겠다. 어릴 때 안방 제일 따뜻한 구석 자리에 나를 눕히고 들려주시던 재미난 이야기도 들려달라고 조를 참이다.

불행과 행복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나는 행복을 찾는 어른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나의 행복을 찾아, 미로를 빠져나 갈 탐험을 떠날 요량이다. 작가 미노스가 만들어 준 등불을 들고서 말이다.

행복한 책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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