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 매거진 Nau Magazine Vol.3 : Berlin 나우 매거진 Nau Magazine Vol.1
로우 프레스 편집부 지음 / 로우프레스(부엌매거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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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일요일 저녁, TV에서 재방송하던 <꽃보다 할배 리턴즈>를 보고 베를린에서 지낸 일주일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니지만 그때는 참으로 아찔했었다.

 

2002년 첫 해외여행 당시, 여행사 측의 실수가 있었다. 표를 받았는데 귀국일이 내가 요청한 날보다 일주일 뒤로 잡혀있었던 것이다. 자유여행이었던 내 티켓을, 같은 날 그 여행사를 통해 독일로 가던 단체여행객들의 표와 함께 구매한 탓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상황을 파악하고는 없는 시간을 쪼개 공항에서 변경하려 했지만 불가능하다 했다. 그러면서 독일 현지에서 표 변경 가능 여부를 물어보라했다, 시작부터 불안했지만 설마 여행사 측에서 실수를 했을까하는 생각에 일단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예정된 유럽여행 일정을 모두 마치고 독일 베를린으로 들어왔다. 항공권에 대한 불안이 여전히 남아있었기에 도착하자마자 공항부터 찾았다. 그런데 현지에서도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여행사에서 (아마도) 가장 저렴한 티켓을 일괄 구매했던 탓이었던 건지 내 티켓의 일정변경이 불가했던 것이다.

 

정말 눈앞이 깜깜해지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유럽을 돌며 수중에 남은 돈도 거의 없었다. 약 일주일간  계획에도 없이 감금(?)아닌 감금을 당해야하는 상황이었다. 6일치의 숙박비를 제하고 나면 빵으로 연명해야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발만 동동 굴리고 있을 때, 다행히 숙소에서 구세주를 만났다. 한국에서 같은 비행기에 올랐던 누나가 나의 상황을 알고 얼마간의 돈을 빌려준 것이다. 그렇게 나의 베를린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실 처음 계획한 일정상으로는 독일은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 부족한 여행기간 내에 여타 여행지에서 시간을 너무 소비한 탓에 도착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오도록 일정을 잡았던 탓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껏해야 숙소 근처에 있는 볼거리 몇 개 정도만 잡아뒀었다. 그것도 시간이 맞지 않거나 여차하면 둘러보지 않아도 될 만한 것들로만 생각해두고 있었다. 그래서 여행지를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동독과 서독이 베를린 장벽을 가운데 두고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정도 밖에 몰랐던 게스트 하우스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짧은 영어를 써가며 조악한 정보를 겨우 끌어 모아 여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공원을 위시하여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체크포인트 찰리 등을 바라보았다.

 

짙은 회색이 그득한 가난한 도시는 굶주려보였고 여전히 적막해보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색하고 무서웠다. 딱딱한 어조와 억양이 주는 강압적인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고 그 분위기에 익숙해지자, 그곳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도시 전반에 깔린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는 가끔 나를 감성적으로 변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때마다 무엇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남았기에 다른 여행지와 달리 그냥 공원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지나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네들의 삶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렇게 베를린에게 마음을 열어갔고 귀국 날에서는 오히려 아쉽기 까지 했다.

 

그리고 <나우 매거진 : 베를린>편을 통해 며칠 상간으로 다시 만난 베를린은 방송을 통해 어렴풋하게 기억하던 그곳에서의 나의 기분과 추억을 상세히 꺼내주었다. 짙은 색감의 사진들에는 여전히 회색빛이 묻어, 어딘가 톤 다운된 느낌이었지만 그게 내가 느낀 베를린의 색이라 좋았다. 길지 않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글들 역시 읽고 느끼고 공감하기에 좋았다. 물론 짧은 시간 안에 그 도시에 대해 얼마나 내가 잘 알겠냐 만은, 그런 기억들이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꺼내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았다.

 

원래 한번 여행 간 곳은 되도록 지양하는 편 –회사 생활을 하는 터라 긴 휴가를 득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여행지에서 조차 여유를 부리지 못하기에 되도록 다양한 풍경을 보는 삼을 지향하기 때문이다-인데 시간도 어느 정도 흘렀겠다, 다시 한 번 베를린을 추억할 겸 떠나 보고싶다는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내년 여름휴가는 베를린으로 훌쩍 떠나볼까 보다. 나우 매거진 한 권만 살짝 들고, 훌쩍.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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