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빌라
이한나 지음 / 카노푸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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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고민이다. 방을 구해도 고민, 구하지 않는 것도 고민에 하소연할 사람이 없다는 답답함도 있었다. 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이 많은 집 가운데 내 한 몸 누일 공간이 하나도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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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가지의 단편으로 묶인 ‘나의 빌라’는 각 이야기가 가지는 장르적 특성도 다양하다. 마치 5층짜리 맨션에 자리 잡고 사는 각 층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는 느낌이다. 다만. 이들은 외로움이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는 듯하다.
 
판타지, SF, 공포 등의 장르가 다양하게 탑재된 5층의 이야기 중 나는 1층 초입에 위치한 <원룸요정>과 컴컴한 2층에 자리한 <사라지다>가 가장 흥미로웠다.


<원룸요정>은 작은 방 한 칸에 살며, 제대로 된 월급도 못 받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기저로 상상을 더해 풍자한 소설이다. 최저임금에 근접한 월급을 받고 회사를 다니며 과일이 먹고 싶어도 비싸서 사먹지 못 하는 주인공 앞에 작은 요정이 나타나며 일어나는 일화를 그린다. 먹은 돈의 2배 이상을 똥(?)으로 싸는 요정에게 기댄 ‘한 원룸 밤의 꿈’이라고 하면 좋으려나. 결국 과한 욕심은 스스로를 망친다는 결과를 가장 잘 보여준 이야기이지 않나 싶다.


<사라지다>는 현재 여러 곳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몰카 범죄’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 다만 여자화장실 몰카라는 최악의 방법이 소설의 소재로 사용되는데, 여기에 공포라는 장르적 풀이가 사용되어 흥미를 돋운다. 빌딩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싸구려 재질의 화장지를 훔치는 도둑의 이야기로 시작한 소설은 도둑을 찾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던 와중 전임자가 행하던 범죄행위를 통해 그 해답을 찾으려다 무언의 공포에 마주하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다. 상상을 동원해가며 읽으면 심장이 쫄깃해져와 마치 우리집 화장실에서 공포의 대상을 조우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백미인 단편이었다.


3층의 <완벽한 혼자>와 4층의 <100층>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고독이나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소재로 하여 근 미래 시대에 일어날 법한 이야기 구조를 취해, 다분히 SF소설 같은 느낌이 났으며, 표제작인 <나의 빌라>는 나무인간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 넓은 땅에서 내 몸 하나 뉘일 곳 없는 현재 상황을 소설에 잘 녹여 풍자한 이야기로 책을 대표하는 이야기답게 기발했다.


다섯 편의 이야기 모두 현재 우리가 직면한 소재들을 가졌다는 점 빼고는 공통의 교집합을 찾기 힘들었음에도 불구, 한편을 쭉 읽고 나면 왠지 모르게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각 이야기의 소재도, 주인공도, 장르도 다 다른데도 말이다.


이 책이 작가의 첫 소설집이라고 한다. 이야기들의 갈등구조나 서사적 맥락을 조금 더 쫀쫀히 잘 짜본다면 장편의 글들도 무리없겠다 싶었다. 아마 타고난 이야기꾼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첫 이야기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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