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추억은 잊혀진 기억 같아서요
박상현 지음 / 렛츠북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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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은 게 아냐. 잊혀진 것도 아냐. 너무 그리워서 잊은 척하고 살지 않으면 내 삶이 무너질 것 같아서야. 그래서 그 무엇도 추억하지 않는 거야. 추억은 잊혀진 기억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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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거의 쉼 없이 반려견을 키웠다. 외로움과 쓸쓸함에 몸부림치는 외동아들에게 항상 아들을 바라봐주는 작은 꼬마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부모님의 감사한 배려였다. 하지만 마음 아프게도 나는 반려견이 자신의 수명을 다 해 무지개 다리를 건널 때까지 그 곁을 지켜준 적이 한 번도 없다. 내 옆으로 오는 아이들은 항상 때 이른 죽음을 당했다. 강아지를 낳은지 얼마 안 된 진돗개에게 물려죽거나 나이가 들어 치매에 걸려 나가서 돌아오지 않거나, 혹은 너무 어린 나이에 병에 걸려 죽거나, 산책을 나갔다가 달려오는 차로 돌진하여 죽기도 했다. 그들은 짧게는 2~3년, 길게는 6~7년에 걸쳐 내 곁을 지켜주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있어주지는 않았다. 아마 착한 아이들이라 하늘에서 먼저 데리고 갔을 것이다. 모두 참으로 소중하고 예쁜, 그리고 누구보다 착하고 순한 아이들이었다.

 

이 책 '왜냐하면 추억은 잊혀진 기억 같아서요'는 내 옆에 있어주는 반려견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물론 사람이 반려견의 생각과 입장을 어찌 다 파악하고 알겠느냐만은 -우리가 강형욱씨도 아니고 말이다-, 반려견을 키우다 보면 알 것이다. 비록 이 녀석이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하고 서로 교감하는 부분들 말이다. 책에는 그런 부분들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인지 내가 키웠던 녀석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떠오르며 추억에 젖었다. 기억 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서서히 잊혀져 가던 기억들이 말이다.

 

책은 '재롱이'라는 주인공 개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바쁜 가족들로 인해 혼자서 견뎌야 하는 외로운 시간들이 많았지만 부러 그 시간들에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자신의 가족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래서 피부병에 걸려 발이 아파도, 산에서 길을 잃어 엄마, 아빠를 찾아다니다가 다리에 상처를 입어도 엄마, 아빠가 걱정할까봐 안 아픈 척 열심히 꼬리를 흔들며 산을 같이 올랐던 작은 개, 당신과 나의 반려견의 죽음에서 말이다.

 

이야기는 재롱이가 가족들에게 감사했던 순간들, 행복한 순간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많은 부분들이, 내가 그간 키워왔던 반려견들을 보는 것 같아, 문득문득 눈물이 차올랐다. 그들은 나의 작은 관심과 사랑을 고파했다. 그리고 내가 건네는 별 거 아닌 관심과 사랑에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그리고 그런 행복을 전하기 위해 그 작은 몸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나를 더 웃게 만들어 주었다. 그걸 알면서도 항상 그들에게 그 어떠한 감사함도 전할 줄 몰랐던 어린 나를 반성했다. 내가 좋거나 혹은 내가 외롭거나, 내가 행복하거나 혹은 내가 힘이 들 때만 그들을 찾았던 내 자신을 깊이 뉘우쳤다. 그리고 얼마 전 부모님이 계신 제주도로 보낸 나의 어린 반려견 세자가 생각났다.

 

하루 하루가 바빠서 제대로 키우지 못할 걸 알았음에도 불구, 또 다시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키우고자 했던 세자. 매일 늦게 오는 나를 기다리며 어두운 방 한켠에서 그 외로움을 견디다 못 해, 항상 벽지를 물어 뜯어 놓았던 녀석. 그걸 이해 못하며 반갑게 꼬리치며 달려오는 녀석을 부여잡고 매번 나무라기 바빴다. 그러다 견디지 못해 나는 결국 세자를 부모님이 계신 제주도로 보냈다. 그런 내 상황과 마음을 아신 부모님은 나를 대신해 세자를 열심히 돌보고 키워주셨다. 주말마다 세자를 데리고 오름도 다니고, 하루에 3~4번 이상 산책도 시켜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세자가 시름시름 앓다가 뻣뻣하게 굳어서 알고 봤더니, 오름을 오르다 수많은 진드기에게 물렸는데, 그 진드기가 피 속에 있는 적혈구를 다 없애는 녀석들이라 했다. 나는 눈 앞이 캄캄했다. 세자를 살릴 길은 수혈을 하는 것인데, 사람과 달리 반려견은 수혈 자체도 어렵고 비용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죽을 때까지 그런 생활을 계속 해야한다고 했다. 결국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세자가 살 수 있을 때 까지만 그를 잡아두고 보내주기로 이야기를 마쳤다.

 

그러던 중, 부모님으로 부터 세자가 다시 일어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의 지극정성한 간호 덕분이었다. 물론 완치는 아니었고 예전보다 움직임이 덜해졌진데다 가끔 이유없이 픽픽 쓰러지기는 했지만 세자는 살았다. 나는 세자에게, 그리고 세자를 돌봐준 부모님에게 모두 감사했었다. 그런 감정들이 이 책을 읽으며 솟구쳐 올라 더욱 마음이 쓰라렸다.

 

반려견은 장난감이 아니다. 나의 재미를 위해, 나의 외로움을 잠깐 채우기 위해 돈으로 사는 로봇이 아니다. 사랑을 줄 줄 알고 사랑을 받을 줄 알며, 사랑하기 위해 삶을 이어가는 녀석들이다. 부디 우리가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베품과 사랑을 받는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과 생각을 다시금 일깨워준 이 책을 바려견을 키우는 모든 이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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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에 남아있던 마지막 숨을 토해 냈다. 그 속에 아쉬움을 조금 더해 본다.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미련은 남깆 않기로 했다. 숨을 뱉어내며 입가를 살며시 올려본다. 모두의 안녕을 위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웃어본다. 그리하여 어여쁜 내 마지막 미소를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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