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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탐정 -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집장의 37년 단어 추적기
존 심프슨 지음, 정지현 옮김 / 지식너머 / 201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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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사전이 누군가가 쓴 책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다. 책상과 부모님의 책장, 컴퓨터 안에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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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은 조기교육을 좋아하셨다. 내가 어릴 때만해도 국민학교 1학년이 영어 과외를 받는다는 것이 드문 일이었다. 몇 몇 보습학원들이 집 주변에 있었지만 그마저도 사람이 별로 없을 때였다. 그런 때 개인과외라니. 우리 부모님의 조기교육 열성이 얼마나 엄청나셨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각설하고 우리 부모님은 세계화 시대에 발맞추어 나를 집 앞에 살던 새댁에게 매일 한 시간씩 영어를 가르치라 맡기셨다. 친구들은 다 놀이터에게 흙 먼지를 뒤집어쓰고 놀고 있는데 혼자만 올라와 공부를 한다는 것이 죽을 맛이었다. 매일 몸을 베베 꼬며 수업을 한 귀로 흘리는 나를 어르고 달래가며 새댁은 수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 만나는 꼬부랑글자를 국어보다 먼저 쓰고 읽으며 자랐다.
알파벳 A를 시작으로 꼬박 1년동안 과외를 받았다. 그러다 여차 저차한 이유로 집 앞 새댁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나의 영어 과외는 (드디어) 그날부로 끝이 났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때의 나는 동네 아이들과 너무나 놀고 싶어 하던 철부지였을 뿐이다- 그리고 (대망의) 과외 마지막 날이 밝았다. 과외 선생님은 말 안듣던 철부지를 여기까지 끌고 온 자신이 대견했던지 내게 앞으로도 영어공부를 꾸준히 하라며 촘촘한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무언가를 내미셨다. 얇은 종이에 하얀 글자가 빼곡한 그 것, 그 유명한 ‘옥스퍼드 영어사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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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모든 변화가 수수께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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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단어탐정’은 우리나라의 영어공부자들-혹은 영.포.자(영어 포기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OED(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줄임말)에서 37년간 재직했던 존 심프슨의 이야기-이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가 담겨있다. 그는 아내 힐러리가 우연히 본 구인광고를 통해 OED 편집부에 입사한다. 또한 처음에는 그다지 사전편찬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전 편집장으로 인해 결국 그도 편집장에 까지 이르게 된다. 그는 재직하던 동안 그가 근무했던 역사적 현장–언어의 역사적 변화가 일어나는 OED 사무실-에서 본인에게 있었던 변화들과 언어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초입에 있던 말처럼 나 역시 사전이란 어느 순간 뚝하고 만들어져 내려온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언어에 대해 치밀하게 연구하고 분석하여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책을 읽으며 상황의 변화에도 –종이로 된 사전→전자사전→인터넷/모바일- 불구하고 꾸준히 자신이 일임한 일에 대해 끊임없이 궁구하고 매진해 나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사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여타의 사전과 달리 그 단어의 역사적 의미나 기원을 작성해두어, 외려 잘 읽지 않았었는데 -사전을 사용할 당시만 해도 당장 내게 필요한 것은 영어단어의 어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한 해답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시간이 날 때마다 활용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따르면 1928년에 12권 분량의 초판본이 완성되었고 이후 60만개 –초판에 비해 20만개가 추가됨-의 단어가 실린 2판 개정판이 1898년에 완성되었으며 현재 3판 개정판을 준비 중이라 하니 사실 이것만 읽어도 영어 박사가 될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여의치 않을 경우엔 온라인 판을 활용해야겠지만 말이다.)
처음에 책을 받고 식겁했던 것이 기억난다. 책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단순하게 언어를 가지고 사건을 추리해가는 과정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탓이겠지-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양의 방대함에 놀라고 내용의 치밀함에 감탄했던 것이다. 책이 너무 두꺼워서 몇 날 며칠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중간 중간 졸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궁금한 사건들이 –단순히 제목에 근거한 장난이다- 많아, 시간이 날 때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OED 조직의 단어탐정과 함께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