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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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은 쉽게 말해 정서적으로 누군가를 조종하려는 행위다. 그리고 가스라이팅에는 항상 두 사람이 존재한다. 혼란과 의심의 씨앗을 뿌리는 가해자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 자신의 지각력을 기꺼이 의심하는 피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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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깊은 열패감에 휩싸인 적이 있다. 아니, 무조건 내가 틀렸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내 사회생활이 미진한 탓이라 여겼던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난생 처음 배우는 업무였다. 그래서 자신이 없었다. 한없이 낮아진 자신감 탓에 12~3년을 외길처럼 걸어 온 같은 팀의 A팀장의 말이 다 옳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와 멀어지고 보니, 그가 사실은 굉장히 이상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의 일화를 소개하자면 이런 일이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명령이었는데 그때는 밑에서 뭐라도 배우자는 심정으로 알겠다고만 했다.


A팀장 : 야, 너 가서 아이스크림 좀 사와라.
나 : 네?
A팀장 : 날도 더우니 아이스크림 사오라고.
나 : (법인카드라도 주실 줄 알고 멀뚱히 바라보며) 네.
A팀장 : 너 B, C팀에서도 예쁨 받으니까 저 사람들 거까지 사와.
나 : ...... 아, 네.
A팀장 : 뭘 멀뚱히 봐. 가서 사오라니까.


자신이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니 내 돈으로 사오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우리 팀만 먹기 눈치보이니 다른 사람 몫까지 전부 사서 돌리라는 말이었다. 다소 억울하긴 했지만 그간 팀장님에게 배운 것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다른 팀분들에게도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기에 좋은 마음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서 돌리자 했다. 하지만 이걸 왜 내가 내 의지로 사서 돌리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문은 들었다.


뿐만 아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출장지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A팀장은 거의 술을 마시지 못했기에 전날 나보고 현장분들의 술상무가 되어 끝까지 마시라고 명령한 터였다. 그는 피곤을 이유로 먼저 들어가 숙소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새벽 4시가 되어서야 현장 작업자분들에게서 벗어나 모텔로 들어 올 수 있었다. 그는 침대, 나는 침대와 화장실 사이에 난 작은 공간에서 이불을 펴고 겨우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 5시쯤 들린 함성 소리 탓에 겨우 청했던 잠이 달아났다. A팀장이 일어나 축구를 보기 위해 티비를 켰던 것이다. 얼큰하게 취한 데다 늦게 숙소로 돌아온 탓에 힘들었다. 이불을 덮어쓰고 다시 잠을 청하자, 6시 반에 그가 나를 깨웠다. 본사로 돌아가자는 거였다. 그러다 차를 타고 올라오던 와중, 졸린 탓에 눈을 뜨고 있는 게 너무 힘이 들어 보였는지 팀장이 운전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본사에 도착하고 그는 뻔히 내가 있는 자리에서 C팀장에게 이렇게 일렀다.


A팀장 : 쟤(나) 데리고 현장 못 다니겠어.
C팀장 : 왜요?
A팀장 : 쟤 술 마시고  뻗어서, 내가 차로 여기까지 모시고 왔잖아. 상전이야, 아주.
C팀장 : 팀장님이 운전하셨어요? 얼마나 주체 못하고 마신거야.
A팀장 : 그러니까 말이다. 요즘 애들은 정신머리가 거지야.
C팀장 : 팀장님이 참아요. 사고 안난 게 다행이지.


난 억울하지만 가만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야기에 조미료가 처지긴 했지만 현장분들이 주시는 술을 스스로 주체를 못하고 마신 건 내가 잘못한 것이 맞기 때문이다. 그래도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일 뿐만 아니라 A팀장과 일하며 많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나는 그를 좋은 이상향이라 생각을 했기에 군말없이 그를 따랐었다. 그게 잘못된 지시이든 아니든, 혹여 그가 지시하여 잘못된 일이었어도 내가 잘못한 거라 여기면서 말이다. 그러다보니 홧병이 생겼다. A팀장이 내 뒤로 지나가기만 해도 긴장을 하여 목을 타고 혈압이 올랐고 웬지 모르지만 닭살이 쭈뼛쭈뼛 돋았다.


그러던 와중, 내가 출장을 간 사이 나에게 한 마디 일언반구 없이 나를 다른 사업소 현장으로 내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절망했다. 하지만 사라져 가던 자존심이 다시금 살아 돌아왔으며 그간 내가 얼마나 잘못된 상태로 팀장님과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난 이동까지 남은 약 한 달간 처음으로 내 목소리를 내고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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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은 단순한 정서적 학대가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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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스턴 작가가 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는 위에 밝힌 나의 사례와 같이, 가해자로부터 정서적 지배를 당한 피해자들의 이야기 및 그러한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점들을 서술한 책이다. 약 10년 전에 나왔던 초판을 다시 발매했다.


가스라이팅이란, 거부, 반박, 전환, 경시, 망각, 부인 등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고, 이로써 타인에 대한 통제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연극 <가스등(Gas Light)>에서 비롯된 정신적 학대를 일컫는 심리학 용어이다. 이 연극에서 남편은 아내의 돈을 뻿기 위해 그녀의 정서를 조작한다. 그는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만들고는 부인이 집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아내를 탓한다. 이에 아내는 점차 자신의 현실인지능력을 의심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남편과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비일비재하게 이런 일이 발생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당사자들이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작가는 가스라이팅을 다음과 같은 3단계로 나누며 점차 심화되는 단계라 한다.


1단계 '불신'.  비교적 가벼운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는 단계로  피해자가 혼란과 좌절감을 느끼고 불안을 느끼는 단계이다.


2단계 '자기방어'.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증거를 찾고, 상대가 잘못된 것을 인정하도록 지나칠 정도의 말다툼을 한다. 자주 괴로움과 절망을 느끼는 단계로 상대방과 계속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은 없지만 아직 희망을 포기핮 않은 단계이다.


3단계 '억압'. 이 지점에 이른 사람은 적극적으로 가해자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그래야만 가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심신이 완전히 지쳐 가해자와 더 이상 다툴 여력도 없다.


또한 가스라이팅 가해자의 유형에는 매력적인 유형, 선량한 유형, 난폭한 유형을 나누며 특징을 잡아두었다. 나의 전 A팀장은 아마 가장 가깝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며 좋았던 것은 내가 처했던 기분 나쁘고 힘들었던 상황이 명확히 어떤 것인지 밝혀졌다는 것이다. 또한 이제는 내 스스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 생활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있어서 였다. 더불어 아직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 내 주변에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대방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이것은 비단, 나와 같이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나 가족, 친구끼리도 일어나는 일이다. 친밀을 가장하여 나를 낮추고 종속되게 하고, 자존감을 사라지게 하는 관계 말이다. 혹시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고 그 상황으로 벗어나왔으면 좋겠다. 추천추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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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혹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은 항상 그의 방식대로 일이 진행된다.
* 그에게 “너는 너무 예민해”, “나 말고는 그 누구도 너를 참을 수 없을 거야”, “이게 바로 네 부모가 너를 무시하는 이유야”, “진정한 프로라면 비난을 받아도 참을 수 있어야 해”, “나는 그런 이야기한 적 없어. 아마 너 혼자 상상한 것이겠지”와 같은 말을 들은 적 있다.
* 그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 그의 행동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변명을 한다.
* 그를 만나기 전에 그날 잘못한 일은 없는지 머릿속으로 점검한다.
* 그가 윽박지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 그를 알기 전의 나는 훨씬 자신감 있고 삶을 즐기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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