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오기 전에 - 죽음 앞에서 더 눈부셨던 한 예술가 이야기
사이먼 피츠모리스 지음, 정성민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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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의사가 말한다. 빛의 방을 빠져나간다. 공기도, 소리도, 시간도 빠져나간다. 내 몸은 의사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지만, 의식은 한없이 멀어져가고 있다. 나는 심연의 바닥에까지 내려간다. 그 및에서 길고 좁은 터늘을 통해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빛을 올려다본다.
"삼사 년쯤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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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생’(生)은 유한하다. 하지만 그 기간을 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00세 시대라 명명도리만큼 장수를 누릴 수 있는 반면, 불의의 사고나 갑작스레 발병한 병으로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이 책의 저자 사이먼은 어느 날 찾아온 루게릭병으로 인해 ‘유한한 삶’을 진단받는다. 길어봤자 3, 4년 안에 그의 생이 마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막 셋째 아이를 가진 터였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꿈꿔오던 그의 영화 인생이 점점 빛을 발하려던 순간이었다. 그는 순간 절망한다. 아마 누구든 자신에게 갑작스레 불어 닥친 죽음의 그림자에 마주하면 그런 감정이 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이먼은 생에 대한 끈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와 가족들은 점점 잃어가는 감각들, 마비되어 가는 신체를 보며 그것이 멈출 수 있게, 혹은 더디게 진행될 수 있도록 용하다는 곳을 찾아다닌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았다. 병은 상대를 봐주지 않는다. 자신만의 속도로 침범을 계속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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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모두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 죽는다고 해서, 지금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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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는 법적으로 루게릭병에 걸린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주지 않는다. 고통에 잠식되어 가는 모습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죽음 앞에 당도하기를 바란다. 사이먼 역시 병원으로부터 인공호흡기를 달아줄 수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반문한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죽는다고 하여 지금 스스로 그 생을 마감해야하는 거냐고 말이다.

 

계속 살고자하는 사람들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 아일랜드 법에 대해 그는 저항 아닌 저항을 한다. 와중 그의 큰 누나가 알아온 것들로 그는 개인적으로 인공호흡기를 달게 되고 동공을 추적하는 기술 ‘아이게이즈’를 선사받는다.

 

그리고 그는 3~4년 밖에 살 수 없다던 –몸의 상태가 나빠지고 인공호흡기를 때었다고 가정했을 때 아마 이정도 삶을 연명했을 것이라고 그는 일러 둔다- 생명을 더욱 연장한다. 그리고 4, 5번째 아이–무려 쌍둥이-를 가진다. 그는 그러한 사람에 기쁨을 느끼며 자신이 보통의 사람들처럼 인공호흡기를 떼어내고 삶을 포기했으면 이러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어질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그는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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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중심이 되는 무언가를 잃는다면, 그것에 대한 추억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미치지 않고 살 수 있으니가. 그래야 내가 느끼는 고통에 상응할 만한 것, "그건 진짜였어."라는 걸 명확히 말해줄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행복하든 슬프든 추억을 영원히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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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총 1,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사이먼이 아내인 루스를 만나 결혼 생활을 이어가며 루게릭병을 얻고 병원을 전전하는 모습을 그린다. 2부는 아이 시절의 사이먼이 이야기로부터 어른이 되기까지의 일생을 요약하듯 보여주다 후반에는 1부에 이어지는 내용들이 그려진다.

 

책은 삶에 대한 기록이자 의지이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여느 책들과 같이 어둡고 적막하며 쓸쓸하지 않다. 그의 책은 마지막 줄에 적힌 것처럼 여전히 평온한 음악 안에서 평안하고 즐거이 이어지고 있다. 가족들의 사랑 안에서 그가 삶을 바라고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루 만에 다 읽어 내려갈 정도로 흡입력이 있는데다 열심히 나의 생을 꾸려나가야겠다고 다짐이 들만큼 좋은 책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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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질병의 치료법을 찾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희망은 삶의 방식이다. 인생은 특권이다. 일반적이고 평범한 권리가 아니다.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게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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