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조차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변종모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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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살다가 가벼운 채로 사라져간 것들을 나는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꽃은 한번도 누군가에게 무거운 짐이었던 적이 없다. 작은 씨앗으로 침묵하다 어느 날 가벼운 몸으로 태어나 한동안 흔들리고 부대끼며 스스로 아름답고 숭고하게 살기를 자처했다.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많은 것을 선사했을 것이다. 꺽인 꽃은 씨앗을 남기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향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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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좋아하고 에세이도 즐겨봐서, 이제껏 수많은 여행에세이를 만났다. 모두 나를 색다른 여행지로 데려가주거나, 이미 다녀온 곳들을 추억하게 해주는 고마운 책들이었다. 책을 마주할 때면 선덕거리는 마음에 어디든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곳에는 여행지에 대한 저자들의 맑고 밝은 푸른 감정이 스며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여행에세이 ‘나조차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는 다소 달랐다.

 

묵직했다. 쉽게 읽히지 않아, 도돌이표를 그리듯 곱씹어 읽었던 글도 많았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버티고 있는 글의 무게감이 상당했다. 글과 글 사이가 빈틈없이 빼곡이 찬 느낌이었다. 사실 그래서 좀 피곤하기도 했다. 그의 글을 읽자니, 여행에 대한 선망이나 가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기보다, 사려 깊은 저자를 따라 한 발자국 멀리서 그의 삶을 쫓아 나 자신을 반추하고 사랑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너무 낯설었던 거다. 이전의 여행에세이가 독자들에게 건네던 것들이 없었기에 익숙하지 않았던 거다. 여행지에서 느낀 찰나의 순간에서 오는 기쁨이나 희열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책은 자아의 성찰과 깊이 있는 사유가 독자에게 건네어진다.

 

잠시 쉬어갈 수 있던 시간은 책 한 컷을 가득 채우던 멋진 사진들을 바라볼 때였다. 홋카이도 비에이의 설원에 혼자 서 있는 나루 한 그루를 보며, 인도 바라나시에서 노란 꽃다발을 건네듯 들고 있는 눈매가 또렷한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여행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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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내가 나로 산다는 것이 조금 미안하고 많이 불편하지만, 수심을 알 수 없는 검은 밤바다가 있고 태양을 품은 뜨거운 아침의 금빛 바다가 있득, 각자의 사람이 수시로 변하는 일들로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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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프롤로그에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고 싶다고 밝힌다. 본인은 사실 과감하지도 단호하지도 않지만, 이번엔 조심스레 그곳에 가보라고 그대에게, 우리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담을 주고 싶다고 한다.

 

여행이 주는 참됨을 느껴보라고. 어딘가에 문득 서서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라고. 그 소리를 듣고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잠시 떠나보라고 말이다.

 

책은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를 시작으로 인도, 포루투갈, 파키스탄, 모로코, 미국, 스페인, 하와이, 이란, 프랑스를 거쳐 다시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로 돌아와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그 여행을 통해 저자는 우리와(독자와) 많은 사고를 공유하고자 한다.

 

여행은, 다양한 이미지와 여러 생각을 건네준다.

 

여럿이서 같이 순간을 공유하고 기쁨을 나누게 하는 반면, 홀로 되어 자신을 되돌아보고 인생의 참의미를 생각하게끔 만든다. 나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되짚어 보고 나아가기 위한 사유들을 해볼 수 있게끔 해주고 다른 이에게 추억을 공유하고 순간을 즐기게도 해준다.

 

그간 나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여행이 주는 참된 의미를, 그리고 나 자신을 돌이켜 볼 시간을 준 고마운 책이었다.

 

자, 이제 어디로 떠나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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