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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불빛들을 기억해 - 개정증보판
나희덕 지음 / 마음의숲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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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불빛들을 기억해
나희덕 산문집
마음의 숲
하나의 작은 세계이자 존재의 내밀한 모습인 점,
이 점이 다른 점가 맞닿으며 탄생하는 선.
그리고 제각기 다양한 형태의 선들이 만나 비로소 완성되는 면.
나희덕 시인은 이 책을 틍해 점, 선, 면이라는 세가 지 구도 속에서 존재와 관계,
그리고 세상의 축도를 섬세하고 온기 어린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하나의 작은 점인 나
나와 이어진 사람들과의 선
그리고 그 선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면...!
나는 어떤 관계 안에서 나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시인의 이야기를 더 들어봐야겠다.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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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없이 흘리는 눈물, 노을을 바라보며 열 살의 자신과 함께 울고 있는 시인.
이삿짐을 풀고나면 동네를 돌아다니며 마음의 자리를 발견하려고 노력한 그녀.
새로운 동네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의 첫 번째 과제가 눈물겹다.
그리고 낡은 축사들 사이에서도 맑은 향기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삶이라 말한다.
나는 나의 일상 안에서 나의 감정에 얼마나 충실하고 있나 생각해본다.
울컥 눈물이 올라올 때도 이내 따라오는 또 다른 감정에 눈물을 삼키고,
지금 이 순간의 상황에 빠져들어 흘러가는 맑은 향기를 잡아내지 못하는 코만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지...
"시인이 가장 충실하게 살아 있는 순간은 만물의 울음소리를 자신의 몸으로 온전하게 실어낼 수 있을 때다."
"나는 그들에 대해 쓰지 못했지만, 그들은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했다."
그녀는 살아 있는 존재들이 내는 울음소리에 집중하는 법을 안다.
사물과 자연이 끊임없이 얘기하는 것을 잘 듣고 있으면 이미 그 속에 시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깨닫는다.
시인은 세상과 그렇게 소통하고 있구나. 사람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애쓰는구나.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그렇게 적어내려가는 것이구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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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사람에게 타인의 행복은 너무 빛나고 선명해 보이는 것...불빛 아래 있을 때는 불빛의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불빛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그 시간들이 얼마나 따뜻하고 축복받은 순간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온전한 삶을 꿈꾸기에, 또는 부서진 삶을 끓어안기에 가장자리만큼 좋은 자리는 없다고. 자, 오늘도 가장자리 쪽으로 한 걸음"
얼마나 따스한 불빛 아래에서 일상을 살아갔는지 그 일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알았다. 아이들과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동아리 모임을 했던 일상...
그 축복받은 순간들을 떠올리며 시인의 마음을 헤야려보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온전한 삶을 위해 한 걸음 가장자리로 옮겨 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외부에서 밝은 에너지를 받아 생활했다면 지금은 내부의 빛을 따라 오롯이 집중해 보는 좋은 시간이라고!
"자연인으로 돌아가 직업인으로서의 음악이 아니라 삶으로서의 음악을 누리고 싶었던 것이리라."
"사람살이도 마친가지다. 누구나 혼자 살 수없고 다른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오늘은 소로가 내게 묻는다. '이제 무엇을 할 거니? 일기는 쓰고 있지?'"
삶으로서 누리고 싶은 것이 나에게는 있을까?
사람살이 안에서 나와 영향을 주고 받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시인이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산문집을 읽으며 계속 멈추고 생각한다.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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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존엄한 삶 못지않게 존엄한 죽음을 원한다."
"진정한 의사는 환자로 하여금 그 사실을 인식하도록 도와주고, 환자의 개인적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그의 고통에 동참하는 사람이다."
"이웃과 생명체들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웰빙족이 누리는 행복이 아닐까."
존엄한 죽음과 진정한 의사의 태도를 읽으며, 종영된 드라마 속 '김사부'가 떠올랐다. 생명을 존중하는 그의 태도는 때로는 불 같았고, 또 한없이 고요하기도 했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이들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것임을 몸소 보여주는 캐릭터였다. 낭만을 외쳤던 드라마 속 캐릭터 김사부가 진짜 어른의 모습으로 다가 온 것은 생명을 대하는 그의 진솔한 모습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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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이라는 모양은 효율성과 심미성을 반반씩 지니고 있는 형상이다. 또한 일정한 주기에 따라 스스로를 채우고 비워내는 생명의 순환적 질서를 담고 있다."
"손의 온기에 금방 스러지고 마는 눈송이. 희고 차갑고 가볍기 그지없는 그 눈송이에 속에 내내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 그 가벼운 존재의 무거움에 대해 무어라 적을 것인가."
한 가득 가지지 않는 것. 필요한 만큼 가지고 반드시 비워내는 삶.
작은 온기에도 금방 스러지고 마는 눈송이도 쌓이고 쌓이며 모든 것을 막아버린다.
그 가벼운 존재도 욕심을 부리면 통제할 수 없는 무거움으로 다가옴을 알아야 한다.
비워내야 할 책장을 바라본다.
그림책과 더불어 다양한 종류의 책으로 곳곳의 책장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모두 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책이 아니고 짐이 되는 순간 그저 무거운 인테리어로 변색되는 것은 아닐까?
비워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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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의 산문집을 읽으며 순간순간 멈췄다.
표시해 두고 싶은 글귀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문장들은 나를 응원했고,
스치듯 던지는 질문들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가까이 두고 수시로 꺼내어 읽고 싶다.
답답하고 힘들 때 작은 불빛으로 기억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