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조건 - 근대 미학의 경계 근대 미학 3부작
오타베 다네히사 지음, 신나경 옮김 / 돌베개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예술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사람이나 그 영원한 가치에 매료되어 있는 사람, 혹은 반대로 예술에는 관심이 없으며, 미학 따위는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주기를 바란다."-오타베 다네히사

 

 

 

 

인간의 역사에서 예술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높았던 때가 있었을까요? '글'이 그렇듯이, 아마 예술의 향유도 특권층에 국한되어 있었을 겁니다. 지금과 같이 예술이 대중화되고 산업화되면서,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생기고 현대인의 취미로까지 발전했겠지요. 대학의 '예술학부'라는 학제명조차도 더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예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개념은 무엇인가요? 예술은 기존의 관념과 인식을 깨는 것이어야 한다는 당위가 자연스럽게 생각나지 않을까요.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개념인 '창조',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는 '독창성', 이런 것들이 반영된 '예술작품', '예술가'라는 정체성, 그리고 작품의 내적 원리인 '형식'. 이상의 개념들은 지금은 너무나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워서 설명이 필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타베 다네히사에 의하면 이 개념들은 불과 200년 전에 형성된 것입니다.(<예술의 역설-근대 미학의 성립>에서 그 흥미진진한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예술'의 개념은 근대의 역사적 산물인 거죠. 그렇다면 그전에는 '예술'의 개념이 형성되지 않았거나 적어도 지금과는 달랐을 겁니다.

 <예술의 조건-근대 미학의 경계>는 근대 예술과 미학이 '예술'과는 상관이 없을 거 같은 개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참신하고도 통념을 깨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개념들은 '소유', '선입견', '국가', '방위', '역사'입니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도대체 이것들이 예술 또는 미학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미학이라는 형상이 만들어지는 데 이것들이 배경으로 작용하였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증명합니다.

 먼저, '소유'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요컨대 '독창성'의 개념은 정치철학자 로크의 사적 소유권 사상이 저작물이 저자에게 귀속된다는 지적 소유권의 근거가 되고 근대적 저작권으로 확립되면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술작품이 '내 것'이라는 의식이 형성되면서 '독창성'에 대한 자의식이 비로소 만들어졌다는 것이지요.

 '선입견'은 도대체 어떻게 작용했다는 겁니까. 저자는 미학이 보편적 감성에 대한 인식론이라는 통념을 깨고, 오히려 '취미의 선입견'이라는 외부의 요인이 이론적으로 정당화됨으로써 근대 미학이 성립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미학사에 대한 전복적 해석이지요. 칸트 같은 이는 보편적이고 선험적인 취미 판단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만, 이는 굉장히 이상적인 이야기인 것이죠. 당시에 주로 예술을 향유한 귀족들과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나가기에도 바쁜 서민들이 같은 취향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국가'라는 키워드를 가지고서는 근대의 국가론, 즉 정치학 담론이 미학을 파생시켰다고 주장합니다. '미적 가상의 자율'이라는 예술론과 '미적 가상의 국가'라는 국가론이 동일한 목적을 지향하는, 유비적 관계를 맺고 있는 기제라는 것이죠. 18세기 말의 철학자와 사상가들 사이에서 미학이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게 되는 것은, 정치적 관심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방위'라는 키워드를 통해서는, 근대의 낭만주의 예술이 독일, 영국 등에서 형성되었음을 근거로 해서, '남쪽'과 '북쪽'이라는 방위의 표상이 고전 고대의 예술과 근대 예술의 대비를 표상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른 키워드도 재미있지만, 동서남북이라는 방위 개념이 표상작용을 통해 고전 예술과 대비되는 근대 예술의 개념을 만들었다는 설명도 흥미롭습니다.

 마지막으로 '역사'라는 키워드를 통해서는 미학에 '역사적 사고'가 개입되면서 근대 미학이 형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미학이 감성에 대한 보편적 철학체계로 수립되었다는 신화를 해체하는 것입니다. 순수하게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체계를 통해서만 미학이 형성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술의 조건>이라는 깊이 있는 인문서의 내용을 요약하는 일은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오타베 다네히사라는 뛰어난 인문학자가 적확한 근거를 통해 과정을 하나하나 짚으며 설명해내는 특유의 방법론을 따라가보는 것이 더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자기 논지를 제기하기까지 어찌나 섬세하게 논증을 하는지, 제게 오타베 다네히사의 글쓰기는 일종의 인식론적 충격이었습니다. 그의 책을 통해 수준 높은 인문적 글쓰기를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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