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추적단 불꽃 지음 / 이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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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8시 언저리에 설거지를 하면서 뉴스를 틀어놓는 습관을 들이자고 하지만 드라마나 예능을 틀어놓기 일쑤다. 그래서 종종 시대에 뒤떨어진 리액션(엉? 그런 일이 있었어?)을 하거나 토픽을 이해하지 못해 (그게 뭐야? 나 잘 몰라..) 분위기를 깨기도 한다.


그래서 더 잘 보인 것 같다. N번방 사건이 얼마나 빨리 끓어올랐다가 빨리 식어버렸는지.


3월부터 5~6월까지 반짝. 박사방 조주빈과 그 일당들이 잡히는 시기였다. 이슈들을 주워담아 기사같지도 않은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들에 휩쓸려 N번방 사건이 알려졌고, 언론들이 흥미를 잃자 이 사건도 ‘쏙’ 들어간 듯 보였다. 관심있는 이슈에 대해 지속적으로 찾아보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지 않는 한 N번방 사건은 마무리가 된 것 같았다. 고백하건대, 나도 그랬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싶을 때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N번방을 지켜본 불과 단을 떠올리겠습니다.

묻히고 있는 N번방에 새로운 불꽃을 지펴줄 책.

있는 힘껏 구매하고 나누겠습니다

 수신지(만화가) - 추천사 중에서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를 다 읽고, 맨 앞장에 있는 추천사를 다시 보는데 수신지 만화가의 저 문장이 가슴에 콕 박혔다. N번방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인데, 묻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매사 소극적인 나에게도 ‘잘 해결되어 가고 있는’ 사건으로 여겨졌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무지하고 무관심했는가. 그리고 한때 전국적으로 들끓었던 불꽃이 왜 사그라드는 듯 보였을까?


시작은,

두 명의 개인이 사회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는 두 개의 큰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축인 ‘2부 불과 단의 이야기’는 불과 단이라는 개인이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읽혔다. 아니, 엄밀히 말해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과정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평범한 20대 여성이 겪어온 수많은 불편함들이 일기처럼 쓰인 글들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두 번째 축은 불과 단이 주도한 N번방 추적기였다. ‘1부 2019년 7월 그날의 기록’은 2020년 3월 N번방 사건이 전국적으로 이슈화되기 전 불꽃 추적단이 N번방에 잠입 취재하며 보고 듣고 실천한 것을 적어두었다. 이 과정에서 내 눈길을 잡았던 것은, 이들이 신고하고 대책을 세우려 노력했을 때 해외 Sns라는 이유로 잡을 수 없다고 단정했던 경찰의 반응과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도 죄가 되냐’는 이들의 반응이었다.


이날 법사위 참석자 대부분은 ‘N번방 사건’과 ‘딥페이크’를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했다. 어느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은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처벌할 것이냐?”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지 않느냐?” “청원한다고 다 법 만듭니까?” 같은 발언을 했다.

P69


그들은 그 문제말고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재차 물었다. 방금 전까지 내내 설명했는데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네? 이게 당장 해결해야 할 정말 중요한 사회문제인데요?” 나는 재차 사건의 심각성에 대해 설명했다. 규모가 큰 공모전의 면접관이라면 어느 정도 인정받는 사람일 테니, 이 사건의 실태를 알리면 문제 해결에도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는 내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사건을 사회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보았던 것이다.

P127


개인적으로 즐기는 게 죄가 되냐고? 이 사건은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지 않나.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중대한 문제가 아니라고? 이것은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고착된 여성에 대한 인식들이 만들어낸 국가적인 사건이다. 수천 명의 남성들이 강압적인 성착취를 통해 만들어진 영상물을 죄책감 없이 ‘즐기는’ 것이 개인적인 범죄로 볼 수 있는가. 이 사건은 결단코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다!


불과 단 두명의 개인이 사회를 얼마나 바꿔갈 수 있는지, 이 책을 읽어내려가며 그들의 의지와 옳은 판단, 주저없는 실천에 저절로 박수가 나왔다. 하지만 거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개인만 애써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관점을 이렇게 바꿔야 할 때다.

한 사회가, 우리가 개인을 어떻게 구할 수 있는가?

  

몇 달간 켈리의 범행을 낱낱이 보아온 우리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고작 1년형이라니. 그야말로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가.

......대한민국에서 디지털 성범죄 처벌이 얼마나 미약한지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N번방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먹고 자란 것이다.

P43


2020년 4월, 손정우의 인도 심사가 결정되자 그의 아버지는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미국 송환은 가혹하다’는 내용의 청원을 올렸다. 7월 6일 한국 법원은 사법 주권을 지키고 국내 성착취물 소비자들을 원활하게 수사하려는 목적으로 ‘미국 송환을 불허’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 법원의 결정’으로 세계 최대의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운영자였던 손 씨는 2020년 7월 6일, 자유의 몸이 됐다.

P62


설문 최종 결과, 판결에 대한 불신과 시대 변화에 도태되는 사법부 및 양형기준에 대한 염려가 있었다. 판사들과 현 양형위원회가 디지털 성범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법부의 다수가 중년 남성들로 구성된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있었으며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합할 견제기구가 필요하다는 응답 또한 기억에 남는다. 불꽃과 리셋, 또 대한민국에 사는 수많은 여성들이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이 합당하게 세워질 수 있도록 열심히 발언하는 중이다.

P284



‘3부 함께 타오르다’에서는 이 사건이 이슈화된 이후 일들을 열거한다. 범죄자들은 잡혔고, 그들의 신상과 행태들로 떠들썩했던 몇 달이 지났다. 그 이후 무엇이 변했을까? 피해자들은 아직도 벌벌 떨고 있다. 피해자 지원도 충분하지 않을뿐더러 여전히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인식 때문에 그들은 힘들어하고 있다. 2020년 5월, 20대 국회에서 N번방 방지법이 통과했지만 (P273), 충분히 바뀌지 않았다. 법망이 촘촘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지 디지털 성착취가 일어날 수 있는 여지는 계속 존재한다. 성범죄를 미연에 방지하는 스토킹방지법이나 그루밍처벌법, 함정수사 법제화도 정비되어야 할 뿐 아니라 지금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아동 청소년 이용 성착취물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도 합당하게 세워야 한다. ‘영구 영상 삭제’만이 진정 피해자들이 원하는 대책임을 안다면 효과적인 영상 삭제 시스템도 갖춰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은 그 불꽃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훨훨 타올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뉴스도 잘 보지 않는 내가 뭐라도 할 수는 있을까? 고맙게도 불과 단은 이렇게 말해준다.


피해자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의 삶을 피해 사실 하나로 재단하지 않고 개인의 삶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다. 우리는 성범죄 피해자가 증언대에 나설 수 있도록 함께 할 것이다. 우리가 걷는 길에 여러분도 동행해주면 좋겠다.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난 가해 형식이 낯설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연령이 점점 어려지고 있는 만큼 디지털 성범죄의 양상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P249


하지만 우리는 살아있다. 이 땅에서 살아남아, 외치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연대하며 움직이는 이들이 있기에 내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써내려간 지난 1년간의 기록이

함께 공감하고 분노하는 여성들의 발자취로 이어지길 바란다.

P294



-해당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료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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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는 이야기
유희진 지음 / 책소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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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드디어 출간!! 기다리고 기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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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정치를 꼭 알아야 하나요? - 세계적인 정치철학자 미리암 할머니가 들려주는 교과서 밖 생생한 정치 이야기
미리암 르보 달론 지음, 이정은 옮김 / 글담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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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암 할머니, 민주주의 정치를
미리 알면 좋을까요?

미리암 할머니는 청소년들이 정치를 미리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 청소년 때부터 정치를 알아야 하나요? 나도 묻고 싶었다. 미리암 할머니는 ‘당연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정치는 ‘살아가는 방식’을 정하는 일이니까.
청소년들은 이미 정치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래 집단 내에서 대장을 뽑거나, 학교 생활 안에서 규칙을 준수하며 함께 생활하는 일이 모두 정치라는 것이다. 꼭 반장선거가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모두 정치를 배워가는 경험이다.

미리암 할머니, 이 엄마도 이런 내용
미리 좀 알았던라면...

미리암 할머니는 정치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해준다. 그래서 정치 광탈자인 나도 정치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권력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두 사람이나 두 집단 사이의 관계라는 말이야. 다른 누군가와 맺는 관계라는 거지. 주인과 노예 사이, 명령하는 사람과 복종하는 사람 사이, 다스리는 사람과 다스림을 받느 사람 사이의 관계처럼 말이야.
위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한쪽이 절대 권력을 쥐고 있고 다른 한쪽은 전혀 권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ㅈ로는 그렇지 않아. 이것이 바로 위대한 독일 철학자 헤겔이 주인과 노예 사이의 관계에 관해서 말하며 보여 준 사실이란다.
헤겔은 주인은 오로지 자기한테 복종하는 다른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명려알 수 있다고 말했어. 만일 노예나 하인이 복종하기를 멈추면 주인은 권력을 잃는 거지. 그러니까 주인 역시 자기에게 복종하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거야 권력은 바로 이런 파트너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지.(P32)"

지동설 이후 정치의 목표가 바뀌었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기 전까지, 세상 사람 들은 신이 인간과 인간이 사는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두었다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더 이상 우리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세상은 과학적이고 수학적이며 무한한 세계로 바뀌었고, 인간은 과거의 기준을 잃어버렸어. 고대 그리스인이 살던 에전 세상은 사라졌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세계가 온거야.
(중략) 근대 초기에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인간이 어ᄄᅠᇂ게 인간성이나 인간의 ‘탁월함’을 실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었어.
대신 ‘어떻게 서로 분리된 개인들이 함께 사회를 이루어 살 수 있을까“하는 완전히 다른 질문을 던졌지. 왜냐하면 이제는 개인들이 혹독한 지리와 기후 조건 속에서 언제고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각기 고립된 ’자연 상태‘에서 산다고 여겼거든.
(중략) 그러니까 정치를 생각하는 방식이 정반대로 바뀐 거지. 정치는 이제 인간이 자아를 실현하는 고귀한 활동이 아니라 인간이 안전하게 지내도록 사회속에서 서로 무리를 지어 살아남는 수단이 되어 버렸어. 외부의 위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폭력에서 보호받도록 말이야.(P51)"

기권 또한 정치적 의사 표시다. 하지만 최선은 아니다.
“기권율이 높으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투표하는 인구 비율이 낮아지고 그래서 투표로 선택한 권력이 그만큼 덜 정당하다고 생각될 수 있어. 그 탓에 어떤 경우에는 아주 위험한 결과를 낳기도 한단다. 시민의 대다수가 원치 않는 사람이 투표를 통해 지도자로 선출되기도 하거든. 하지만 일단 선거를 치르고 나면 때는 너무 늦지!
(중략) 기권이 반드시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야. 그건 시민들이 더욱 ‘비판적’이 되었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참여하고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방식을 찾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 하지만 표현하고 참여하는 이런 새로운 방식이 실제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야겠지.(P109)

미리암 할머니 앞으로의 정치도
미리 앎?

미리암 할머니는 민주주의에 대한 단단한 신념을 보여준다. 현대의 민주주의 정치에 대해 우려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발전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다만 방식을 바꿔가면서. 시행착오를 보완해가면서.
“앞에서 체제, 그러니까 레짐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했는지 기억해보렴. 역동성, 움직임. 몽테스키외가 말했듯 원동력을 뜻했지. 민주주의는 고정된 것이 아니야.
민주주의는 사회가 변화하면서 그에 맞춰서 조금씩 달라진단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에 맞는 새로운 방식, 그러니까 민주주의의 전제가 되는 커다란 원칙에 더욱 잘 들어맞고 적합한 행동과 실천 방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단다.(P92)"
그럼 민주주의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리암 할머니는 이렇게 조언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험 중 하나가, 시민들이 현재 이루어지는 정치에 낙담하고 실망해서 아무 약속이나 늘어놓는 선동가 같은 사람에게 아예 공동의 일을 맡겨 버리는 거야, (P127)"

미리암 할머니,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꼭 이책을 선물할게요.

아침에 학교를 함께 등교하는 두 아이.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라고 인사하는 마음에 그동안은 그저 잘 놀고 잘 먹고 선생님 말씀 잘 듣기를 바라는 것 정도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우리 아이들의 하루가 즐겁기를 바라는 마음 안에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 얘들아, 오늘 하루도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즐겁게’ 살아가는 방식을 매일 조금씩 조금씩 몸에 익히고 마음에 담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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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일 : 누가 임신을 아름답다 했던가
전혜진 지음 / 구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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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의 리뷰는 마지막 장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왜 다들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안 해줬던 거죠? - P 412

 

아니, 적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미리 알기는 알고 시작해야맞는 게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우리 큰 애가) 작년에 임신과 출산에 대해 학교에서 배우는데 진짜 그냥 생명 탄생의 위대함에 대해서만 배워 왔더라. 아니 위대하기로 치면 프랑켄슈타인 뮤지컬에서 크리처 만들 때에도 위대한 생명 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하던데. - P 414

 

대체 어떤 미친 놈이 임신을 아름답다고 그러는 거에요.

그러게. 그러게나 말이야.  - P 415

 

장장 419페이지에 달하는 길고 긴 장편소설을 통해 긴 호흡으로 해주신 이야기를 전혜진 작가님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짧고 굵게 잘 요약해 주셨다. 임신과 출산은 죽을 만큼 힘들고, 포기하고 감당해야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놀랍도록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

그래서 추천을 한다. 임신 해당자인 여성들이 아니라, 그 외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큐멘터리 소설이라는 장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없다면 나는 이 글을 여성을 위한 첫 번째 다큐 소설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다큐멘터리라고 할 만큼 상세한 최신 정보들이 가득하고, 실제로 겪은 임산부들의 스토리를 아마도 오랜 기간 취재를 다녔을 것이라 확신이 들 만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임신의 A to Z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출산을 경험한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공감 가능하다. 그렇지만 전혜진 작가는 기출산 여성의 공감만을 이끌어내고자 이 글을 썼을 것 같지는 않다. 미혼의 여성,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 또한 너무 당연한 독자이긴 하지만,

이들이 목적이 아니다. 임신이라고 하면 내 일이 아니라 아니라 생각하는 남편들, 업무 능력과 상관없이 죽을 죄를 지우는 회사 요직에 앉아계신 분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맘충이니, 뭐니 입 놀리는 젊은 것들, 여성을 임신기계로 보는 정부 관계자들. 이 분들 보라고 썼을 것이라 확신한다.

왜냐면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리고 알려고 하지 않으니까.

아마도 이 분들이 이 작품을 보게 된다면 이 분들에게는 다큐 소설이 아닐 것이다. “이런 세상이 있었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세상이야!.... 무서워..” 이들에게는 아마 판타지 소설일 것이다. 혹은 스릴러일 것이다.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치열하고 피터지는 판타지스릴러.

 

이 작품을 통해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여자라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과 건강과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한 선택이라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아니 모두가 알아야 한다.

 

 

4명의 확실한 캐릭터

임신 어벤져스, 280에서 만나보자.

 

작가이자 스스로 임신을 선택한 임산부로 작가 자신을 투영시킨 것 같은 재희,

유능한 대기업 과장이지만 두번의 유산과 오랜 시험관 시술 후의 임신으로 회사를 포기한 의지의임산부 선경,

남편의 계획적 콘돔 빼기로 인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후 강력계로 전출을 포기하게 된 지원,

늦은 결혼에 노후를 걱정하지만 선물처럼 다가온 아기를 축복으로 품는 은주

사실 모든 경우의 임신과 출산을 모두 모아둔 임산부 캐릭터 총집합이다. 서로 다른 연유지만 동시에 임신을 하게 된 이들은 서로의 힘든 상황을 이해하고 격려하며, 위급한 상황에서는 서로의 119가 되어주고 외롭고 쓸쓸한 겨를 없이 서로의 가족이 되어준다.

방관자이거나 비평자이거나 심지어는 비판자이기까지 한 주위 사람들은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서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어쩔 수 없이 현재는

엄마가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가 엄마를 이끌어준다.”

전혜진 작가도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결국은 사람이다. 같은 경험을 통해 느낌과 생각을 나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

 

 

아이를 낳고도 일을 계속하는 사람이 근처에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아이를 낳게 되는 용기가 되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함께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하던 친구들의 존재만큼이나 몇 걸음 앞서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더 힘이 난다는 것을. -P410

 

 

 

 

 

 

<280 : 누가 임신을 아름답다 했던가> 는 시의 적절한 메시지도 가득 담고 있다. 가장 최근에 판결이 난 낙태죄 위헌판결.이 작품은 이에 대한 메시지를 끊임없이 제기한다. 작가의 대변인 격인 재희의 학생 중 한 명이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 이에 재희는 낙태 방법을 알아주고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어찌 보면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다. 나도 낙태죄 위헌 판결이 났을 당시,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워본 10년차 엄마로써, 그리고 끊이지 않고 뉴스를 장식하는 영아살인, 영아시신유기 범죄들을 보면서, 엄마가 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우므로 절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낳아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강해지고 있다.

 

 

내가 아기를 낳는 거랑 이 문제는 다른 거야. 이건 자기 결정권에 대한 문제라고. 여자 몸이 인구 대책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것이라는 뜻이니까, 잘 됐다. 정말 잘 됐어.

 

그 애가 살 세상이, 어쩌면 아주 조금 더 나아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아주 오래된 싸움이 결국 여기까지 왔다고 말해야 옳겠지만 그 길에는 한 방울 한 방울, 사람들의 눈물과 노력과고백들이 쌓여 왔다는 것을 재희는 알았다.  - P406

그것을 정면으로 주장하는 전혜진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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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감사일기
북하우스 편집부 엮음 / 북하우스엔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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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성이 같은 오프라윈프리의 이름을 달고 있는 매일매일 감사일기.

오프라윈프리가 왜 감사일기를 권장하는 것일까?

나는 아직 오프라윈프리의 책도 읽지 못했고, 그녀의 방송도 보지 못했다. 그저 그녀가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기본적인 팩트만 알고 있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1954 1 29일 미시시피주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9세 때 사촌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마약에 빠지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1986년부터 2011 5월까지 미국 CBS-TV에서 '오프라 윈프리 쇼' 25년간 5,000회 진행하면서, 미국 내 시청자만 2,200만 명에 달하고 세계 140개국에서 방영되었던 '토크쇼의 여왕'이 되었다. 이후 잡지ㆍ케이블TVㆍ인터넷까지 거느린 하포(Harpo: Oprah의 역순) 주식회사를 창립한 회장이 되었다. 흑인 최초의 <보그(Vogue)>지 패션 모델이 되기도 했으며 1991년 달리기를 통해 107㎏이던 몸무게를 2년 만에 68㎏으로 줄여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녀의 성공기에 사람들은 '오프라이즘(Oprahism)'이라는 말을 달았다. 그것은 '인생의 성공 여부가 온전히 개인에게 달려 있다'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나는 이러한 오프라 윈프리의 철학의 근간에 감사일기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의 성공을 만드는 것은 개인의 생각이고, 그 생각을 온전히 긍정으로, 완전한 감사함으로 바꾸는 감사일기’. 감사일기를 통해 그녀는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삶을 긍정투성이로 만들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조금씩 나아가며, 그 매일이 쌓이고 쌓여 최고의’, ‘유일의라는 수식어를 만든 것이 아닐까?

++++++

지난 5월에 미모를 처음 시작한 새싹인 내가

 

엄마방송국의 서평 이벤트에 응모하여 감사하게도 10명 안에 이름을 올렸다.

책을 받고 들춰보니 글은 얼마 없고 모두 일기장 여백이다.

여백!

처음엔 당황했다. 책이라 하면 읽고 느낄 것들을 잔뜩 채워 배송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백.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간 여기에 감사일기를 쓰며 나는 이 많은 여백이 참 감사했다.

감사할 일이 이렇게 많이 남았네!

++++++++++

감사일기 23일차인 오늘, 나는 오늘도 감사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

내 앞의 노트북으로 나는 엄방에 올릴 글을 쓰고 있다. 나를 맞아주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온전히 내 소유의 노트북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내 옆으로는 어제 찐님의 강의 교재가 있다. 글을 올리고 한번 읽어보려고 한다. 언제나 꿈디를 위해 고민하시는 찐님이 있어 감사하다.

그 옆으로는 앞으로 할 과제들이 쌓여 있다. 소쓰, 벽뽀, 그리고 서평할 책들~^^ 나 혼자라면 할 수 없었을 것들을 함께 해주는 꿈디들이 있어 감사하다. 그리고 시간 제한이 있어서 감사하다 ㅋㅋ

내가 좋아하는 밀크티를 타먹을 수 있어 감사하다. 얼마전 오뚜기에서 오리지날 밀크티 믹스를 출시했는데 생각보다 꽤 맛있다. 가격도 저렴하게 잘 뽑았다. 감사하다.

오늘 하루 동안 백개도 더 감사할 수 있을 정도다.

 

앞으로 이 책을 감사함으로 채울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꾸준히 감사하자. 열심히 감사하자. 감사히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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