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장애에 대한 프레임을 바꿔주었다. 장애는 그저 조금 불편한 것일 뿐이라고 말이다. 내가 나의 작은 키를 불편해하듯이, 남편이 구부정한 허리와 어깨를 불편해하듯이. 장애는 고통이나 아픔, 슬픔이나 좌절같은 감정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 백순심 저자는 몸의 불편함 이외에 마음의 불편함도 이야기한다. 몸의 불편함은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지만, 마음의 불편함은 책 곳곳에 남아 있었다. 어쩌면 저자는 마음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를 읽으며 저자의 입장에 몰입해 읽다 보니 그 불편함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 정말 불편했겠구나. 시선 하나, 단어 하나, 생각 없이 했던 행동들도 상대를 불편하게 했을 수도 있겠구나. 모든 것을 조심했어야 했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했어야 했다.
내 마음도 불편했다. 내가 배려라고 생각했던 행동 이면에 차별이 숨어있었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때로는 저자의 초등학교 친구가 아니었을까, 대학교 동창이 아니었을까, 직장 동료가 아니었을까.
책을 덮고 며칠을 음미하며 저자가 일으킨 내 마음 속 파동에 이름을 붙여보려 노력했다. 수면 아래 숨어있던 밑바닥 감정의 정체는, 불안이었다. 불편의 감정 아래 불안이 있었다. 살면서 많이 마주치지 못해서, 어쩔 줄 몰라서, 겪어본 적이 없어서 실수 할까 봐, 상처 줄까 봐 불안했던 것같다. 어릴 때 옆반이었던 몸이 불편한 친구를 안절부절하며 주위에서 뱅뱅 돌았던 것부터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마주치는 20층 아주머니를 자연스럽게 쳐다보지 못했던 것까지 모두 상처가 될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그러다 백순심 저자를 만났다.
그녀는 내가 처음으로 만나보고 대화해보고,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장애인이다. 그녀는 내 불안을 없애주었다. 그녀는 씩씩하고 건강하며 밝고 영민하다. 단지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고 장애를 안고 사는 건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걸 몸소 증명하는 사람. 나와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도 있는 똑같은 사람, 여자, 아내, 엄마이다.
저자를 알아갈수록 불안은 줄고 희미해졌다. 그녀와 대화하면 할수록 편안해졌다. 장애에 대해, 장애인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들이 편안해진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제 우연히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차에 탑승하는 법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구나! 그냥 조금 다른, 또 하나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딱하거나, 안됐다거나, 혹은 유별난 게 아니라 그냥 그런 거구나! 느끼며 장애인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을 알고, 만나고, 부대끼며 배워야겠다고 말이다.
나는 저자와 친구가 되었다. (순심씨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나의 친구, 백순심 씨. 좋은 책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속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당신을 생각하고, 이 책을 열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