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 - 파리, 그 극적인 거리에서 마주한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크리스티앙 파쥬 지음, 지연리 옮김 / 김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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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밝히자면 나는 에세이 혐오증이 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말이 덕지덕지 붙여져 있고 억지로 감성을 쥐어짜내며 "힘내!", "네 잘못이 아니야!" 라며 위로하는 에세이. 서점 베스트셀러에 당당하게 자리 잡은 이러한 에세이를 보면 미간이 찌푸려진다.

근데,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은 좋았다.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은 당신이지만, 크리스티앙의 유쾌함과 인간미는 오히려 읽는 이에게 위로를 주었다.

 

인생의 위기는 "나 곧 온다~꽉 잡아~"라고 소문내며 오지 않는다. 게임 퀘스트를 깨듯이 차례대로 오지도 않는다. 해일처럼 한 번에 몰려와 인간을 휩쓴다. 하나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가정, 직장, 정신 문제가 한 번에 몰려오고 끝으로, 또 끝으로 인간을 내몬다.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은 크리스티앙 파쥬의 거리생활 비망록이다. 소믈리에라는 번듯한 직업, 행복한 결혼 생활과 귀여운 아들이 있었던 크리스티앙은 아내의 이별 통보로 한순간에 거리로 내몰린다. 그럼에도 그는 트위터를 통해 사회에 자신을 끊임없이 알린다.

거리생활이란 곧 사회와의 단절이다. 잊힐 수 있는 자신의 존재를 방치할 수 있었지만 크리스티앙은 몇 년째 보지 못한 아들을 생각하며 트위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끝내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결국 크리스티앙은 집을 구하게 되고,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를 출간하게 된다. 노숙인이 쓴 에세이라니, 상상이 가지 않았다.

거리생활로 내밀려 삶의 나락을 경험한 크리스티앙은 노숙인에 대한 도시의 비정함과 그러면서도 마주하는 착한 사마리아인, 도시의 밝은 면과 비정한 면을 노숙인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거리생활은 갖가지 위험으로 노숙인을 내몬다. 그중 가장 위험한 요소가 바로 사람이다. 경멸의 시선으로 훑고 지나가는 사람들, 어떻게든 노숙인을 도시에서 내쫓고 싶어 하는 사람들, 노숙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유희로 삼는 사람들. 그래서일까, 크리스티앙과 그의 노숙인 동료들은 노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 알아보는 훈련이라고 말한다. 노숙인에게 가장 큰 위협은 사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위로를 주는 대상 역시 사람이다. 가끔이라도 노숙인에게 다가오는 사소한 배려와 따뜻한 말 한마디,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한다.

지하철역에서 잠을 자고 구걸을 해도, 거리생활의 연차가 아무리 늘어나도, 노숙인 역시 사람이기에 수치심을 느낀다. 유쾌함으로 일관하고 좌절하지 않던 크리스티앙이 의사의 깨끗한 가운과 대비되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져서 병원에 가길 꺼려 한다는 언급은 잠시 먹먹함을 선사했다.

크리스티앙을 무기력함으로 내모는 가장 큰 요소는 과거의 기억이다. 행복했던 가정과 즐거움 가득했던 직장. 이러한 기억들은 크리스티앙을 괴롭히지만 잠시 과거에 젖어드는 감상은 오히려 그에게 힘을 주기도 한다. 과거의 기억을 돌이켜보는 건, 참 괴롭고도 아련한 일이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집이 다른 이에겐 간절한 꿈이 되기도 한다. 3년 반의 거리생활을 청산하고 집을 얻은 크리스티앙은 어렵게 얻은 행복을 즐기면서도 잃게 될까 두려워한다. 거리생활을 했던 크리스티앙에게 음식을 저장하고, 내일 먹을 수 있게 해주는 냉장고는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한다. 상징적이지만 현실적이다.

 

남의 불행에서 나의 행복을 찾는 건 참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불행과 행복, 나의 삶과 너의 삶을 저울질하며 가치를 매기는 행위 역시 그렇다. 그러나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을 읽는 행위는 전혀 그런 비겁한 짓이 아니다. 상대적 우월감 혹은 반면교사를 삼기 위해 이 책을 읽은 이들은 되려 크리스티앙을 통해 위로받을 것이다.

위로는 생각보다 대단한 게 아니다. 사소한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 진한 포옹만으로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이 보증이 될 것이다. 또한,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은 에세이에 대한 내 편견을 부숴준 기념비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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