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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의 돌핀
한요나 지음 / &(앤드) / 2023년 4월
평점 :
"나는 네 덕분에 뒤를 보려고 하는데, 그때마다 아슬아슬하다고 생각해. 알면 안 되는 걸 알아 가는 느낌 같기도 하고, 아슬아슬해 모든 게. 너에 대해 알게 되는 것들도 모두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야."
내 이야기 같았다. 알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더 알고 싶기도 한 그 경계에 서 있는 느낌. 욕망하지만 후회할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이 모든 걸 말하고 싶으면서도 말하면 안 된다는 머릿속의 외침까지. 그래도 혹여나 내가 그 말을 했을 때, 나의 등을 두드려 주는 이가 있다면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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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세계는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2023년 지구의 현실과는 아주 다른 세계를 그리면서도, 동시에 다를 것 없는 이야기와 감정이 흐른다.
한요나 작가님의 첫 소설집, 《17일의 돌핀》 속 첫 단편이자 책 제목과 같은 <17일의 돌핀>은 연애의 미묘한 감정들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알 수 없는 상대방의 마음, 때마다 새롭게 발견하는 상대의 모습에 낯설어하는 나, 그 모든 것에 대한 생각과 끊임없는 상상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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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린다는 건 감정일까, 감각일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있는 걸까. 너일까? 너랑 함께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일까. 아니면 이 음악일까."
내가 최근 몇 년간 가장 자주 했던 생각 중 하나가 바로 이 '관계'와 '감정'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지금도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내가 즐거웠던 이유가 그 사람이 '좋아하는 나'의 모습인지, 함께하는 그 순간 자체인지, 그저 그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름의 결론을 내렸지만, 여전히 '감정'이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17일의 돌핀> 속 둘은 '떨림'을 설렘, 그리고 두려움으로 각자 다르게 느낀다. '두려움'이라 말했던 이는 뒷걸음쳤고, '설렘'이라 말했던 이는 자신의 변화에 단편적으로나마 기뻐했다. 같은 현상을 두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그들의 복잡 미묘한 그 관계에 자연스레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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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의 돌핀》은 '개인'에 집중하는 이야기들의 모음이라고 생각한다. 연인과의 관계와 그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흔들리는 개인, 지난 상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개인, 모든 것을 딛고 일어나 삶을 개척하려는 개인까지 이곳에 있다.
잔잔하면서도 환상적이고, 나를 수면 아래로 끌어내리면서 그 속에도 길이 있다고 속삭이는 작품, 한요나 작가님의 《17일의 돌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