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의 아들, 염 큰숲동화 12
예영 지음, 오승민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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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려보듯 강렬한 아이의 눈,

꼭 다문 다부진 입술,

흩어져있어 무시무시하기까지 한 머리카락,

이 책은 표지그림이 주는 때문에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따라가는 책이라서

자연스런 이끌림에 손에 잡힌 새로운 경험의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그저 그런 옛이야기를 주제로 하는 창작동화로만 예상했었는데

막상 읽기 시작한 후 숨죽이면서 빠져들기는 참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이 책이 주는 힘이 강렬해서

쫄깃한 몰입 경험을 즐긴 책이라서 개인적으로 칭찬해 주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칸트아저씨네 연극반>, <목화, 너도나도 입지만 너도나도 몰라요>, <처음 만나는 우리신화>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쓰시는 예영작가의 글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상한 큰숲동화 12권째 책이며,

출판사 뜨인돌 어린이에서 5,6학년 대상으로 만든 창작동화 시리즈물이다.

    

역사동화라고 하면

다소 어려운 낱말들과 무거운 주제를 다뤄

이해하기 쉽지 않고 재미와는 거리가 멀 것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나의 편견을 가감하게 깨트려준 이 책이 무척 고맙고 소중하다.

 

 

소 잡는 게 왜 천하고 더러워?”

사람 손으로 짐승을 죽이는데, 그게 더러운 게 아니고 뭐냐?”

사람이지만 사람이라고 불리지 못한 사람들....그들 중에 이 있었다.

    

신문물이 우리 땅에도 서서히 들어오고 있던 조선후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신분 제도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지만 아직 현실과는 동떨어진 어수선하던 시대,

백정이라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를 둔 아이, ...

역사적인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역사적 이야기는 다루지 않고

천민 중에서도 가장 팍팍한 삶을 살아가던 백정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추리동화이다.

 

대대로 이어온 백정이라는 굴레,

염이는 소 잡는 일을 하고 살아가는 백정으로 살기 싫어서 집을 나가기로 결심을 한다.

그런데 집을 떠난 바로 그날,

아버지가 살인죄의 누명을 쓰고 잡혀간다.

그 이유는 우연히 살인현장 근처를 지나다 도움을 주려한 행동이

오히려 살인범으로 몰려버린 원인이 된 것이다.

백정이라는 직업상 갖고 다니던 칼과 온몸에 묻어있던 피 때문에

아무리 변명을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이처럼, 염이와 아버지가 겪은 일은 누구 하나 진실을 들어 주려는 사람 없고, 어디 가서 하소연조차도 할 수 없는 그 시대 가장 억울한 신분의 사람들이 당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일인 것은 분명하다.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려 목숨을 잃어도 본인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은 전혀 없어 보이니까 말이다.

  

  

염이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친구 개똥이, 칠성이와 범인의 흔적을 쫓아가며 진짜 범인을 잡아서 아버지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영혼이 사라진다는 사진을 찍으며 인연을 맺은 류계현 나리의 도움과 기발한 단서로 찾은 진짜 범인. 사건의 실마리가 하나씩 풀릴 때마다 가슴 쫄깃한 스릴감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 몫 한다.

색다른 면이 있다면 근대문물인 사진기가 등장해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낸다는 점이다.

다소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과학적인 추리기법과 세심한 묘사와 진술 그리고 대사를 긴박하게 엮어 사실적인 느낌을 살린 한편의 수사드라마를 보듯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책 한 장 한 장이 아쉬울 정도로 풍부한 스릴감과 현장감으로 눈을 뗄 수 없게 빠져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선시대의 신분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천민 중에 백정의 억울한 삶에 대한 연민과 부당함으로 적잖이 가슴이 아파왔다.

백정은 조선 시대에 소나 돼지를 잡아 주고,

그 대가로 피와 내장, , 가죽 등을 받아 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로

조선 사회에서 최하위 계층인 천민 가운데 가장 무시를 당했다고 하니

그들 삶의 슬픔이 책 읽는 내내 저리게 느껴졌다.

백정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집에 기와를 올려선 안 되고,

명주나 비단으로 옷을 지어 입어도 안 되고,

가죽신도 신어선 안 되었다고 한다.

또 백정은 양반이나 상민이 사는 마을과 뚝 떨어진 곳에 따로 모여 살아야 했고,

어떤 마을에서는 백정들의 옷에 검은 천 조각을 매달게 해서 백정이라는 표식을 했다고 한다.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힘든 삶을 살았을 텐데

백정의 신분이 대물림되어 자식으로 태어나면 무조건 백정으로 살아야 했다니

형연할 수 없을 절망감으로 한숨이 절로 지어졌다.

 

백정이라 성도 없이, 염병에 걸리지 말라고 염아 염아부르던 게

이름이 되어 버린 아이였지만

스스로 희망을 찾고 가혹한 운명을 거슬러 이겨내는 강한 아이 염.

    

염이는 용기 있게 자신에게 닥친 어려운 일을 해결하고 잔인한 운명도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무리 가혹한 환경에 놓인 삶일 지라도

어떻게 사느냐는,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는

결국 자기 자신(마음)에게 달려 있다는 걸 보여주며

당당한 결말을 이끌어내는 힘찬 이야기다.

 

세상 그 누구나 살다 보면

어렵고 억울한 상황이나 자신의 의지로는 해결 안되는 주변 환경 때문에

좌절할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래도 힘차게 딛고 스스로 일어서라고 일깨운다.

 

염이와 함께한 불꽃같은 이야기를 읽고

마음속에서 희망을 찾아내도록 용기를 북돋아준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누구라도 책표지의 눈빛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주는 강렬한 울림이 독자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명을 스스로 받아들여 당당히 인생을 마주한다는 결말 부분에서는

다소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스며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희망적인 앞날을 예상하기 보다는 변함없이 억울하고,

여전히 가혹한 운명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스런 마음 때문인 것 같다.

 

미진한 개운함으로 표지의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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