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 쉼이 있는 삶을 위하여
이승원 지음 / 돌베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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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억대연봉메신저, 그 시작의 기술》

《삶을 읽다, 마음을 나누다》

공저자 미라클코치 윤희진 작가입니다.


존엄을 지키며, 함께 살고

함께 기뻐하기 위한

‘쉼’의 제언!

이승원 작가의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책의 뒤표지에 나온 글입니다.

살면서 이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코치님은 뭐 그리 하는 게 많아요?

도대체 언제 쉬나요?”

이런 말을 듣는 제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닌가 생각되어 리뷰어스 클럽

서평단에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책의 저자인 이승원 작가는,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경기도 안양과 영국의 몇몇 작은 도시에서 살았던 시절을 빼고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지금도 여전히 멋진 사회복지사 아내, 동물병원에서 일하며 음악을 공부하는 딸, 권투할 때가 가장 맘이 편하다는 아들, 치매 속에서도 늘 웃으시는 어머니, 큰 병을 이겨내고 있는 강한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 청소년 시절 육상, 야구, 농구, 중창단, 교회 학생회 활동에 빠져 지냈으며, 이후 대학에서 철학, 종교학, 국제학, 정치학 등을 공부했다. 책보다는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현장 경험을 하며 더 많은 삶의 지혜를 얻었다. 한동안 생업으로 국회, 중간지원조직, 공공연구기관 등에서 일하기도 했다. 주로 민주주의, 포퓰리즘, 도시 정치, 사회혁신, 세계 시민교육 등을 연구하고 관련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민주주의』(2014), 『커먼즈의 도전』(공저, 2021)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에르네스토 라클라우·샹탈 무페, 2012),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샹탈 무페, 2019)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커먼즈 네트워크, 시시한 연구소, 지식공유 연구자의 집,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등에서 동료들과 함께 배우고 활동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불광천에서 달리기와 자전거 타기, 북한산과 봉산 오르기, 드라마 보기, 동네 목욕탕 가기를 즐긴다.


목차를 살펴 볼게요.

목차

서문. 나무 아래 의자

1. 왜 잘살려고 할수록 불안해지는가?

불안이 희망을 잠식한다|왜 누군 잘 살기 위해 애쓰는데, 누군 삶을 포기하는가?|우울과 불안이 팽배한 ‘자살사회’|역설적 비극, ‘생계형 자살’|자유라는 겉옷을 입은 소비라는 욕망|버킷리스트로 둔갑한 상품 목록|상품이 되어선 안 되는 것이 상품이 될 때|미래를 저당 잡혀 오늘을 포기하다|하루아침에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처럼|잡힐 듯 잡히지 않는 욕망|실업자, 이생망과 N포 세대, 오늘날의 호모 사케르|잘살려고 할수록 불안해지는 아이러니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개인과 사회의 공멸|‘모두가 공범이다’, 집단적 익명에 의한 타살|살려달라고 말하니, 기다리라고 답한다|스스로 자원을 활용하고 관리하는 능력|자유롭고 존엄한 삶을 지속하기 위한 역량과 커먼즈|어떻게 존엄성을 지키며 살 것인가

2. 일과 소비에 대하여 착각하는 사람들

일이 욕망의 완성은 아니다|노동이 결핍을 해결해준다?, ‘착각 노동’ 판타지|노동의 소외, 사물화 그리고 인간의 소외|타인에게 버려지지 않기 위해 나를 버리다|과잉 노동이 초래하는 결과|공공재의 회복과 일상의 간단한 동선: 공공의료와 예방의학의 사례|소비를 쉼으로 착각하는 현실

3. 우리는 언제 편안함에 이를 수 있을까?

통증의 기쁨, 불안의 슬픔|나와 타인의 통증에 공감하기|존재하기 위한 의지, 삶에 대한 의지|자기결정권이 자기존엄성이다|“나는 쉰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쉼은 수동적 상태가 아닌, 적극적 행위다|송철호와 이지안은 편안함에 이를 수 있을까?|‘공생공락’을 위하여

4. 빼앗긴 쉼을 되찾기 위하여

‘오멜라스 사람들’이 사는 법|공터, 우연한 마주침, 다름과 새로움의 가능성|새로운 리듬의 변주, ‘정지 운동’| 거리로 나간 수많은 바틀비가 만들 세상

책을 마치며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소감과 함께 나눠보도록 할께요.


우연히 마주쳐 함께 앉아

잠시 서먹하다가도 서로 안부를 묻고,

위로와 힘을 건네고, 덕담을 나누고,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질 수 있는,

혹은 같은 방향을 향해 걷기 위해

잠시 쉴 수 있는 그런 의자는

이제 살아진 것일까?

이승원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15쪽

시댁 근처에는 큰 느티나무 아래

평상이 놓여있고, 동네 어르신들이

둘러앉아 쉬기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이 공간이 이제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물질 문명으로 배는 더 부르고,

할 일은 많아졌지만

정작 쉼을 위한 공간 마저

돈을 내고 뭔가를 사먹어야 하는

그런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자살은 인위적으로 자기를 소멸시키는 행위다. 이 인위적 소멸이 어떤 종교적 거룩함이나 실존적 고뇌와 관련된 것이라 하더라도, 자살은 사실상 비사법적인(직접적인 법적 처벌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익명의 타살’이다. 특히 생계형 자살의 비사법적 범인은 사람들에게 우울함을 전파하는 (성과·부채)사회 그 자체이자 사회에서 그러한 죽음을 애써 외면하는 자들이다. 이렇듯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자살의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사회가 병들었다는 가장 심각한 징후다.

이승원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79쪽

책이 자살에 대해 다루는 부분이

나와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OECD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그러나 자살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그리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자살’을 사회 경제적인 관점으로

고찰하고, 어떻게 해야 자살률을

낮출 수 있을지 방안까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

그들을 그렇게 몰고 간 사회 현상.

경제적 압박 등을 외면하거나 손가락질

할 것이 아니라, 좀더 그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손길을 내밀어줘야겠습니다.


자기계발을 연마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자기 욕망에 관한 관심에서 멀어지며, 끝없는 노동의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를 자청하게 된다. 착각 노동이 맞이하는 최후일지도 모른다.

이승원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114쪽

저자는 착각 노동의 판타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뒤로 한 채 외치는 노동 예찬은

주어진 노동이 욕망을 실현하고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하고 최종적인

방법이라는 ‘착각 노동’이라는

판타지를 퍼뜨린다. (111쪽)

위 문단의 이해를 위해서

다음의 글을 아울러 덧붙여 봅니다.

자기계발을 통해 자기를 업무에

최적화 시켜 성과를 올리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판타지로서의 이 착각은

다시 자기계발과 과로를 계속하도록 독려한다. 바로 착각 노동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이다.

이승원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122쪽

제가 하고 있는 자기계발에 대해

다시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비는 시간에

무료로 진행되는 여러 자기계발 강의를

신청, 수강했던 예전의 제가 떠올랐어요.

요즘은 선별해서 제 목표에 부합하는

과정만 들으려고 노력은 하지만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자기계발을 할 때

언급한 문단의 의미를 기억하며,

하시길 소망합니다.

나는 쉰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이승원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167쪽

쉬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작가의 소제목을 읽으며,

나는 나만의 쉼의 시간을

어떻게 잘 가지고 있는지

성찰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창조주도 엿새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

이레날 쉬셨고 온전히 그 쉼을 누리셨어요.

잠깐 멈춤의 시간이

다음에 주어지는 시간들을 더

질적으로 만들 수 있음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리뷰어스클럽 서평단에

당첨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저의 주관적인 견해를 더해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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