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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고독사 (孤獨死)'
그제 저녁 뉴스에서 이 단어를 처음 들었다.
50대 남성이 자신의 집에서 자살한지 6년만에 백골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화면에는 그사람의 집에 걸려 있던 빛바랜 2006년 달력이 비춰졌다.
어쩐지 가슴이 갑갑해져왔다.
그리고 그날 밤, 오쿠다 히데오의 꿈의도시 마지막장을 읽고 난 뒤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졌다.
소설 속 배경인 '유메노'시는 3개의 읍이 합병해 생긴 신설 지방도시이다.
이 곳에서는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쇠락하는 골목상권, 급증하는 이혼, 도박, 매춘, 은둔형 외톨이, 가정폭력,
높은 실업률과 노령화 된 지역,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과 갈등, 신흥 종교 등 다양한 사회 문제들이 등장한다.
이 꿈의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그저 막장 드라마처럼 코웃음치며 비웃어 넘길 만한 것들이라면 좋으련만
요즘 뉴스의 단골 소재이며 내 주위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문제들이기에 마음이 편치 않은지도 모르겠다.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사는 니시다는 생활보호대상자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일을 하지 않고 쉽게 돈을 받아 살고자 생활보호 수급자가 된 사람들 때문에 정말 도움이 필요한 그는 대상에서 탈락했다.
난방도 전기도 전화도 되지 않는 집에서 그의 어머니는 동사한다.
애초에 사람이 신이 아닌데 그자가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지, 아니면 그저 편하게 놀고먹고자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자가용이 있으면 수급자 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
그러나 타산이 맞지 않는 공영주택단지가 버스노선에서 제외된 후 자가용이 없으면 끼니를 해결할 수도 아픈 어머니를 모실 방법도 없다.
공무원들에게 그런 융통성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저 메뉴얼에 따라 수급자를 정할 뿐.
어떻게든 상부의 지시에 따라 수급 대상을 줄이기 위해 뛰어다니는 시청 공무원들은
소설속에서 비싼 가격에 물건을 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세일즈 사기꾼들과 다를 바 없게 느껴진다.
도쿄의 대학생이 되는 꿈을 가지고 공부하던 여고생 후미에는 집에 돌아가던 길에 납치를 당한다.
납치범 노부히코는 자신을 게임속 주인공으로 착각한 채 살아가는 은둔형외톨이이다.
후미에는 납치되어 벽장에 갇혀 생활하지만 탈출 기회가 생겨도 적극적으로 탈출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돌아간 이후의 삶이 두려운 것이다.
납치당한 일주일간 그녀는 그저 감금되었을 뿐 성폭행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그녀는 평생 납치 성폭행 피해자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게 될 것이다.
가련하게 여기는 시선, 호기심 어린 시선과 함께 남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릴 것이다.
가끔은 무관심보다 더 무서운 게 관심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의 어두운 면이 고스란히 드러난 이런 책을 읽고 난 뒤엔 늘 드는 생각.
'읽지 말 걸 그랬다.'
착한 사람들은 좀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아무렇지도 않게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죗값을 치르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쳤으면 좋겠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제발 좀 그만큼 풍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릴땐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가는게 사람을 참 지치게 만든다.
「거대자본이 지방도시를 제압하는 건 그야말로 간단하다. 기존의 개인 상점을 흡수하고 자연스럽게 독주 체제가 형성된다. 그리고 역 앞 재래 상점가는 온통 셔터를 내린 폐허가 된다.」 「그러고 보니 눈물도 멈췄다. 강해진 게 아니라 부조리한 환경에 익숙해 진 것이다.」
「사는게 팍팍하면 사람들은 하느님이나 부처님에게 매달리게 되는 걸까. 어머니는 걸핏하면 점쟁이를 찾아가곤 한다. 유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유메노에 신흥종교 단체나 점쟁이가 유독 많은 것은 불행한 인간이 그만큼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에코는 고독감을 느꼈다. 가족이 있어도 그 가족이 고민의 씨앗이다. 형제는 타인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자식들은 그보다 더 무서워서 하소연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냉대가 돌아온다면 자신은 나락의 밑바닥에 굴러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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