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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편지 - 제인 오스틴부터 수전 손택까지
마이클 버드. 올랜도 버드 지음, 황종민 옮김 / 미술문화 / 2021년 10월
평점 :
미술문화 출판사에서 작가의 편지(Writers’ Letters)라는 책을 번역하여 출간했다. 대략 18세기부터 20세기 경까지 백여 명이 넘는 작가들이 작성한 각종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매 페이지마다 친필 편지 원본, 편지 번역본, 그리고 해설이 실려 있다. 올컬러 인쇄와 해설 덕분에 전시회 도록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한다. 무게감 있고 빳빳한 내지를 사용해 페이지를 넘기는 재미가 있다.
편지는 특정 독자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일기만큼이나 내밀하지만, 동시에 수신인을 예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적인 글쓰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편지란 그 자체로 독특한 하나의 장르가 된다. 이 책의 저자들은 머리말에서 ‘서간문학’이라는 호칭이 어딘가 어색하다는 의견을 내비치지만, 편지가 문학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또 뭐란 말인지. 편지와 문학 사이의 거리는 일기와 문학 간 거리 차이만큼이나 미묘하다.
아무래도 편지 한 장으로 작가의 작품 세계나 그의 문학성을 엿보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은 건 사실이다. 지면의 한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인상 깊은 문장들이 없지 않다. 제임스 조이스가 자신의 후원자인 해리엇 쇼 위버에게 자신의 게으름에 대해 사과 내지 변명을 하며 쓴 편지의 문장도 그 중 하나이다. 그는 “저는 여러 해 동안 문학을 한 편도 읽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은 가는 곳마다 주워 모은 자갈, 쓰레기, 부러진 성냥개비, 유리조각으로 가득합니다”(55쪽)라고 쓴다. 자갈, 쓰레기, 성냥개비, 유리조각이라는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심상이 독특하다.
프란츠 카프카가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에게 보낸 편지도 눈에 띈다. 그는 이 편지에서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자신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보는데, 이는 아버지를 향한 편지이자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전적 글쓰기이기도 하다. 릴케의 편지에는 루 살로메를 향한 사랑과 존경이 그대로 느껴진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출산 직후 산욕기 감염으로 사망하기 직전 남편인 윌리엄 고드윈에게 작성한 편지를 읽다 보면 그의 여성주의적 신념이 얼마나 급진적이었는지 느낄 수 있다. 자연스레 그의 예상치 못한 이른 죽음이 아쉬워지게 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정갈한 유서도 짧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각 편지마다 편지 전문이 모두 실려 있는 것은 아니며 편역자의 선택에 따라 드문드문 발췌되어 수록되어 있다. 작가들의 친필을 구경하는 것도 흥미롭다. 필기체로 흘려 쓰듯 자유분방하게 편지를 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자에 가깝게 또박또박 편지를 써나간 작가도 있다. 작품 해설처럼 매 편지에 덧붙여져 있는 해설도 유익하다.
편지 원문은 주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작성되어 있다. 간혹 일본어와 한문도 등장한다. 역자의 약력을 보니 독일에서 수학한 이력이 있다. 영어 뿐 아니라 독일어에도 능통할 것이라 짐작해보지만, 아마불가피하게 중역이 된 부분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출판사 도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