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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너 자매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14
이디스 워튼 지음, 홍정아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평점 :
소설이 확보한 어떤 ‘비평적 거리’에 대한 생각. 당대의 윤리 기준을 내면화한 주인공을 등장시키되, 읽는 이로 하여금 그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메타적인 감상을 가능하게 하는 서술. 바로 이 점에서 <버너 자매>는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가부장주의는 사회 전반에 공유되던 하나의 신념 체계로서 기능하는데, 문학은 그 양상이 당대와 현대에 이르러 어떻게 다르고, 어떤 형태로 공유되었는지를 드러낸다. 19세기 영미권 사회에서 널리 공유되던 세계관과 기독교 신앙, 기독교적 윤리 기준들과 미덕, 그리고 여성에게 요구되던 지위와 역할이 우리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까닭도 이를 다루는 다수의 문학 작품 때문일 것이다.
<버너 자매>의 성취는 이러한 기독교-가부장적 세계관을 뒤틀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작업을 꽤나 자연스럽고 흥미진진하게 해 낸다. 결혼은 여성의 인생 최대의 과업이다. 여성은 남편에게는 순종적인 아내, 자녀들에게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어야 하고, 그러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여성에게 허용된 가장 큰 성취이다. 겸양과 양보, 우애와 같은 미덕이 요구된다. 소설은 바로 이러한 그 가치관을 내면화한 인물을 내세우는데, 이와 동시에 그러한 시대 자체에 대한 비판적 독해로 독자를 이끈다.
어쩌면 이러한 종류의 성취를 이룬 문학만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지도 모르겠다. 19세기-영미권의-기독교-가부장적 세계 속의 여성의 삶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부득이 제인 오스틴을 호명하게 되는데, 비평적 거리 확보라는 지점에서 양자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이디스 워튼이 비관적 세계 속 낙관적 인물을 통해 이를 수행하였다면, 제인 오스틴은 낙관적 세계 속 비관적 인물을 통해 이를 보여줄 뿐이다. 다만 후자는 바로 그 낙관적 세계라는 특성으로 인해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여지가 좀 더 많을지도 모른다. 반면 <버너 자매>에서는 그와 같은 거부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 저변에 자리한 다소간의 냉소와 시니컬함 덕분일 것이다.
여러모로 흥미롭게 읽었다. 플롯 자체의 몰입도도 높은 편이라, 다소 느슨한 초반부를 지나면 순식간에 다 읽어버리게 된다. 소소하게 '떡밥 회수'를 하는 재미도 있다.
<징구>와 <로마열>도 물론 몰입해 읽긴 했지만, <버너 자매>에 비해 그 성취가 덜 부각되기는 한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읽어도 여전히 식상하지 않고 흥미를 자아내는 것은 <버너 자매>이다. 나머지 두 작품에서는 시대적 한계가 다소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 124쪽의 “그 사람이 린다와 자기 돈을”이란 부분 번역은 다소 혼동의 여지가 있다. ‘그 사람과 린다가 함께 / 자기 돈을’인지, 아니면 ‘그 사람이 / 린다와 자기 소유의 돈을’인지 불분명하다. 나는 후자로 이해하였는데 역자 해설에서는 전자로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206쪽의 “사냥함”은 물론 ‘상냥함’의 오기일 것이다.
*출판사 도서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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