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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평점 :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지구전체 인구의 60%이며, 전 세계적으로 약 8억 5000만 명이 아사 직전 상태에서 살고 있고, 아프리카에서도 30%의 어린이가 영양 실조 상태라는 사실들을 텔레비전의 아침 뉴스로 접한다. 지난해 쓰나미로 17만4천422명이 숨진 그 참혹한 현장을 화면으로 접하면서 끔찍한 생각이 들었건만, 한 채널만 돌려버리면 이내 또 잊는다.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가슴으로 와닿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 점심은 또 무엇을 먹을까를 심각하게 고민을 했지,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해 본적은 별로 없는 안온하기 이를데 없는 나의 지난 일상에서, 가난의 그 절실함이란 재앙의 끔찍함이란, 경험해본 적이 없었으니 감각할 줄을 모르는 것이다.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매끼의 식사와 머리를 둘 안식처가 이렇게 주어진 것이, 거의 기적이라는 것을 아는데는 부끄럽게도 집을 떠나 그제서야 고생이란 걸 해 본 이십대 중반이 되어서 였고, 그것이 어디에도 당연한 구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는 뒷통수를 후려맞은 것 같았다. 어른들의 말씀대로다. 배가 고파봐야 밥의 소중함을 알고, 제 몸으로 돈을 벌어봐야 아쉬운 것을 알고, 나가서 넘어지고 생채기가 생겨봐야 집의 소중함을 안다는 것이.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자신의 것을 희생하며 자식을 배불리셨던 좋은 부모를 만났던 것도, 이렇게 생존하고 있을 가능성은 확률로도 어찌 표현이 안된다.
남부아프리카에서는 서울시 인구보다 훨씬 많은 1천3백만명이 굶어 죽어가고, 열세살 짜리 팔레스타인 여자아이가 등교길에 이스라엘 초소에서 발사한 총에 맞아 즉사하고. 아프가니스탄에 묻힌 지뢰를 모두 없애는 데 천년이 걸리며, 라이베리아에선 다이아몬드 이권을 둘러싼 내전으로 인구 3백만 명중 30만명이 죽었다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전쟁이 자신을 미치게 했다는, 열 다섯 짜리 모모의 말이 기억나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팠다. 모모처럼 어쩔 수 없이 반군이 되어 전쟁으로 미칠 뻔한 열다섯의 손으로 사람을 강간하고 산채로 불태운 기억들은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지. 전쟁과 가난으로 속수무책으로,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끔찍하게 무너져 가는 아이들과 그들의 미래는 어찌해야 할지.
이런 참혹한 현장의 삶에 그녀는 온통 마음이 끌려있다고 한다. 납치범에게도 몸값이 0원이라는, 그 험한 직업, 긴급구호 요원의 삶을 그녀는 너무도 자랑스러워하고 기꺼워한다. 저런 힘이 어디서 나오나. 인생을 하루로 친다면 자신의 사십대 중반의 인생을 오전 12시, 점심을 먹은 후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이라고 비유하며 시간이 아직 창창히 남았다고 한다. 그렇게 친다면, 이제 막 일어나 아침을 먹을 즈음의 이 햇병아리 같은 나보다 어찌 저렇게나 훨씬 힘이 넘칠까.
몸보다는 머리로 삶을 이해하고 살아가며, 언제나 여분의 에너지를 슬쩍 남겨두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전신으로 살아가고, 자신을 위해 에너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진이 쏙 빠질 정도로 힘차게 달리는 삶이니 다시 새로운 활기와 전보다 더 진한 에너지가 샘솟는다. 혹자들은 한비야씨의 글이 다소 거칠다고 하기도 하지만,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삶이 그러하니까. 자신의 몸으로만 간 길, 경험했던 일들만 정직하게 얘기할 뿐, 그 이상의 수식어를 쓰거나 그럴싸하게 보이는데는 도통 관심이 없는 그녀다. 그녀의 글들은 주인을 너무 닮았다.
사실 예전 한비야는 내게 오지탐험가의 환상에 가까웠고,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거침없이 해내는 용기있는 그저 부러운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다름아닌 허명(虛名)이라고 한다. 자신의 실체와 허상의 차이를 메꾸어야 하는 것이 가장 두렵댄다. 그리고 스스로를 신의 손에 들린 몽당연필로 비유한다. 마더 데레사가 자신을 다만 신의 손에 쥐어진 몽당연필에 불과하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녀는 자신을 더욱 낮춘다. 여지껏 그녀의 책을 모두 읽어왔지만, 이번 책은 그녀의 책들 중 과연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는 정말 점점 더 백퍼센트 진짜가 되어가나 보다.
마른 강바닥에서 펄펄 날리는 흙 먼지를 보며 저것이 모두 밀가루 였으면 좋겠다는 그 절박함의 아마 백분의 일이나 나는 겨우 이해할까. 전세계의 급박한 생존의 현장이 그녀의 삶이고. 나의 삶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어느곳에서도 세끼 밥의 거룩함과 생존의 위대함은 같을 것이다. 몇년 전 가입했다가 경제적인 사정으로 그만 두었던 월드 비전에 재가입을 신청했다.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이 정도 일 뿐이다. 예전에는 내 사정이 그러한데 누굴 돕겠다는 거냐며 나 자신의 세끼밥만 챙겼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 조금씩이라도 덜어, 함께 배고프지 않았으면 한다. 그녀와 같이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구호요원들과 평생을 바쳐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많은 분들에 비하면 나의 후원은 보잘 것 없고 극히 미소한 행동에 불과하지만, 크고도 작은 배려와 나눔들이 모여 언젠가는 모든 이들의 생존의 위대함이 존중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