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이가 > 임승수님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세미나를 다녀와서.
어떤 저작이 아무리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시대가 지나면 그 가치는 분명히 달라질 수 있는 법이다.
오늘 세미나를 들으며 느낀 점은 [자본]은 여전히 이 시대에 가장 유효한 서적이지만, 사실 그만큼 그의 사상이 일반화된 것도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본]을 읽기 힘들지만, 맑스의 사상적 얼개가 어느정도는 당연하다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때문에 세미나는 어쩌면 조금은 구태의연했다는 느낌이 든다.
노동가치론, 즉 상품이 화폐가 되고 그 화폐가 다시 자본이 되는 경로를 쉽게 풀어 설명한 부분은 가히 [자본]의 핵심을 파고들었던 부분이라 할만하지만,
사실 강의는 너무 지당하고 당연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어서, 기대한 만큼의 충만감은 느끼기 어려웠다(이를테면 잉여자본이 발생하는 이유가 노동자가 일한만큼의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영역이 아니라 삶에서 누구나 이미 느끼고 있던 부분이다).
아울러 임승수님은 [자본]의 현실적 쓸모와, 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에 대하여 정치혁명이 곧 경제혁명이라는 의견을 피력하셨다. 이 의견에 반대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종의 '사상의식'의 부재가 혁명의 핵심이라고 설명하시면서, 우리의 의식이 조금씩만 바뀌어도 세상은 바뀐다는 이야기에는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우리는 정권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임승수님이 강의 후반부에 말씀하신 것처럼, 민영화가 가져올 참담한 결과를 알고 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던 것 처럼 우리는 우리가 일한 만큼의 응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임승수님의 말대로라면 '알고 있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세상은 과연 몰라서 안하는 사람 때문에 이지경인 걸까 아니면 알아도 안하는 사람때문에 이지경인걸까. 이제 와 다시 [자본]을 읽으며 우리는 무엇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구체적 이야기가 조금 더 주를 이루었다면 훨씬 알찬 강연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가뜩이나 방대하고 난해한 책을 쉽게 풀어 쓴 것도 그런데, 그 책을 더 쉽게 두시간 안에 강의한다는 것, - 그러니까 두시간 동안 [자본]을 꿰뚫는 다는 것 - 은 당연히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연을 듣고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우리가 착취당하는 것을 다시 인지하자고 여기까지 강연을 들으러 왔던가'였다. 다음엔 조금 더 알찬 강연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