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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자연의 거울
리처드 로티 지음, 석기용 옮김 / 필로소픽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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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양장이 아닌지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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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의 암소 - ...한줌의 부도덕
진중권 지음 / 다우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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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각 보다 재미있다. 출간일을 보니 20년이 넘은 책. 간혹 이 양반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욕을 먹는 것인가 궁금해 하곤 했었다. 유난히 유쾌한 표정과 급짜증 섞인 말들을 보면 성깔있는 동네 형처럼 보이지만 이제는 그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 그도 어느덧 '아재'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20년 전 과거로 돌아가 한 인간의 삶의 궤적을 곁눈질로 보았다. 뭐랄까 맥주캔을 들고 앉아서 세상 모든 것에 썰을 풀며 화를 냈다가 침울해지기도 하고 사뭇 진지해지기도 하는 아재. TV토론으로 처음 알게 됐지만 정작 책을 읽어보니 이 양반, 말 보다 '글'을 더 잘 쓴다. 비판마저 유쾌하게 토해내는 것을 보고 역시 무슨 일을 해도 개성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자신만의 스타일이 분명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더 명확하게 알게 됐는데 그런 스타일의 토대에는 나름에 철학적 이유(?)가 있다는 것. 자기 이데올로기인듯 한데 싫어하는 사람들이 볼 때 그것 마저도 개똥철학이라고 무시 하겠지만 말이다. 철학의 분과인 미학을 공부해서 일까? 일반적인 논객과는 다르게 정치칼럼에서 인문학적 어법이 묻어난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학자들의 상아탑에서 자기들끼리만 알아듣는 언어로 학문의 지식을 쌓아 올리는 사람들이라 추상의 높은 수준에서 즐겨 말하는 것이 보통인데 뜬구름 잡는다고 생각했던 인문학적 이론들이 땅으로 내려와 현실의 복잡한 사안을 간단하게 파악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정치적 사안을 철학을 통해 사태를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는 도구로 적용하는 것이다. 최근에 그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던데 정말 공부가 재미있나보다. 사실 본업인 미학책이나 강의를 보면 학자 같기도 하고.. 득달 같이 싸우는 걸 보면 논객 같기도 하고.. 그는 학자와 논객의 중간 어디쯤에서 넘나들기를 즐긴다.



보통 평론가들은 사회의 모든 이슈에 글쓰기로 개입하곤 한다. 어떤 사안에 따라 보수적 혹은 진보적 논조로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직업이기에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논객으로서 정치적 일관성을 지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유물론. 개는 밥을 주는 주인을 위해 짖는법. 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논객은 망가진다. 그러니 자기 밥을 자기가 챙기는 들개가 되어야 한다. 논객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일관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한국사회에 극소수일 게다. 자신도 극소수에 본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게다.



그가 옳은지 아닌지는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진보의 100만 유튜버들과 달리 이 들개의 어깨에는 끈적끈적한 물질적 이해관계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운동권세대의 행태를 20년 전에도 똑같이 지적 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시대착오적인 주사파 그리고 자유지상주의자들의 과격한 논리가 다수의 보수주의자들의 의견이라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20년 전보다 지금이 더 나은 세상일까? 모르겠다. 확실한 건 탄핵 사건이 한국사회의 정치 지형을 흔들어 놓았고 도덕적 우위에 있었다는 민주진영마저도 위선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런 혼란 속에서 진보 지식인들이 갈갈이 찢어지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논리를 버리고 특정 세력의 스피커 노릇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비판을 할 수 없기에 그저 눈을 감고 입을 닫는다. 이런 상황에서 논객이 하는 일은 제대로 비판하는 것 뿐. 과거 가깝게 지내는 동지들을 비판해야 하는 상황. 그런 면에서 볼 때 진중권아재.... 썩 이 상황이 그리 유쾌하진 못할 것 같다. 정치는 공적 영역이기에 사적 비난은 안한다고 하지만... 비판하는데 기분 안나쁜 사람이 어디 있나.. 참 피곤하게 됐다. 왕따될듯......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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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 - 형이상학은 꼭 필요한가? 민음 지식의 정원 철학편 5
김화성 지음 / 민음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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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너무 형이싱학적이야."

한 때는 너무나 장황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했을 때 자주 듣게 되는 말이었다. 형이상학적이라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그리 좋은 말은 아니다. 형이상학이 언제부터 이런 신세가 된 것일까? 일상에서는 이렇게 부정적인 옷을 뒤집어 쓰고 있지만 형이상학은 철학의 시작과 함께 해 왔다. 인간이 신화시대에서 로고스시대로 진입한 이후 철학의 중심은 항상 형이상학이였다. 다시말해 철학은 형이상학이고 형이상학은 바로 철학이었다.

"세게는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무수한 존재들의 밑에 깔려 있는 근본 원리는 무엇일까?" "신, 그리고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일까?"등등 뜬구름 잡는 것 같고 답도 안나오는 질문이지만 한번 쯤 심각하게 생각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바닥에서 날고 긴 선수들의 사유를 따라가 보기 위해 서점에서 철학사책을 펼쳐보자. 인간의 사유를 지배해온 장구한 사상의 역사가 드라마를 연출할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철학의 신세는 리어왕과 같아서 이제 철학만의 고유한 부분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또한 현대철학은 형이상학의 해체가 그 중심에 있다고 말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됐다. 과연 형이상학은 이제 사상사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아무리 형이상학의 해체를 논한다고 하더라도 형이상학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은 자기 삶의 이유와 목적에 대한 궁금증에서 살아있는 한 멈출 수 없으며 세계에 대한 궁금증 또한 그만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종 적인 특성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의미와 목적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항상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질문하며 세계 속에 자신을 재정립하려고 노력한다면 그 순간 형이상학적 사유에 뛰어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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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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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돌아온 그녀는 미국에 있는 동안의 삶을 잊지 못하는지 심리적으로 방황한다.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와 뻔하디 뻔한 한국의 문화적 환경에 지루해하며 한국과 미국을 무의식적으로 비교하는 것인지 아니면 짧은 기간에 느꼈던 미국의 향락을 잊지 못하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한국사회 속에서 미루고 미루었던,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우울한 자신의 처지 때문인지 그는 고장난 엔진처럼 적응하지 못하며 지낸다.   


미국에서의 즐거움은 단지 관광과 다름 없는 경험이었는지 모른다. 그곳에서 몸소 부딪치며 실제로 살아가는 것보다 관광하듯 경험했던 날들은 그녀에게 이상화된 문화적 환경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 건지 k가 한국에 돌아와서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남자들에게 특별한 모습을 본다. 한 친구에게는 미래라는 건 신경 쓰지 않고 즐거움을 쫓고 다니는 과거 중산층의 삶을 느끼는 반면 그녀와는 반대되는 처지로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힘겨워 하는 삶을 사는 친구에게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생활양식을 알려주는 것에 즐거워한다. 


그녀는 '목적'을 찾기를 갈망한다. 과거 청년들은 목적이 있었다. 그것이 사상적으로든 뭐든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며 미래를 위해 열심히 나아가야 한다는 모든 이들의 공통적인 목표가 있었다. 그런 80년대가 지나가고 현대사회는 이상향으로 불리는 공통의 목적이 사라졌다. 사상과 이념의 시대가 가고 자본주의가 승리한 시대에 풍요의 세례를 받은 현재의 젊은이들은 길을 잃었다. 


 그 위에서 철저히 관리 되어 자라온 젊은이들. 소비와 쾌락이 장려되는 이들은 사실 절름발이인지도 모른다. 돈의 추구 이외에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돈 보다 나은 것이 있다는 것을 넌시지 알려준 것은 잠깐 미국에서 지냈던 친구들 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리운 미국생활이 궁금했던 k가 친구들에게 안좋은 일이 벌어진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마지막 이상도 함께 무너져 내린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혹은 애초에 그런 이상향 따위는 없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운동권이었던 80년대를 추억하며 장광설을 펼치던 그도 결국 돈을 벌기 위해 통닭집을 차린 것처럼 모두 돈을 벌기 위해 뛰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돈 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처럼 들릴 지도 모른다. 아마도 책에서 언급되는 말처럼 발걸음을 돌리며"위선자!"라고 외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는 돈 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기 전에 일단 위선자라는 비난 속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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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신은 뇌 - 뇌를 젊어지게 하는 놀라운 운동의 비밀!
에릭 헤이거먼. 존 레이티 지음, 이상헌 옮김, 김영보 감수 / 녹색지팡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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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몸을 가꾸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이들은 많다. 여름철이 다가오면 젊은이들은 바닷가에서 육체적 자부심을 표현하는 순간을 위해 운동을 한다. 고작 여름철 두 달을 위하여 사람들은 기꺼이 헬스클럽에서 결코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한다. 나이든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노후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


보통은 신체의 건강함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지 "뇌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 "운동으로 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막연히 생각해보면 몸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하며 뇌건강을 위해서는 머리를 자주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상식적인 이야기가 절반만 옳다는 것은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인간의 뇌는 원래 책을 읽기 위해 혹은 추상적 사유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뇌의 근본적인 목적은 1차적으로 신체를 자유롭고 정밀하게 움직이기 위한 것이었다. 뇌는 여기서 중요한 사령탑을 맡고 있다. 따라서 신체를 단련할수록 뇌도 건강해진다. 운동을 통해서 정신과 육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오히려 체육 수업이 줄어들고 있다.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과도하게 체육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한국은 높은 점수를 받고 있지만 핀란드 학생이 투자한 시간에 두배를 투입하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비효율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답은 간단해졌다. "정신적으로 가라앉고 우울한가?" " 정신적 컨디션이 좋지 앟은가?" "육체적으로 기운이 없고 몸이 무거운가?" 그러면 운동을 시작하면 된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운동을 열심히 하면 된다. 정신과 육체를 최적의 상태로 만드는데 운동만한 것이 없다. 게을러 터져서 못했던 운동. 이제는 운동을 해야 하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생겼다. 육제적 건강과 더불어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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