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더디 온다 - 말씀에서 말씀으로 살아 낸 사막 교부와 교모의 인생 가르침
사막 교부와 교모 지음, 이덕주 엮음 / 사자와어린양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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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 온 깨달음/깨달음은 더디 온다(사막 교부와 교모 지음, 이덕주 엮음)


 

몇 년 전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다. 그 때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광야였다. 그 거친 광야가 무엇 때문에 좋았던지 그 무수한 사진 중에 광야 사진 한 장만 달랑 SNS에 올려놓아 광야만 좋았냐고?’ 뭇사람들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가이드가 보여주었던 이스라엘 네게브의 쏟아질 듯 무수하던 밤별이 너무 아름다워서 다음에 꼭 다시 사막을 보러 오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깨달음은 더디 온다는 사막교부와 교모들의 글을 모아 한국교회사를 전공했던 이덕주 교수가 풀어 엮어 쓴 금언집이다. 은퇴 후 시간이 생겼고, 코로나로 인해 집에 칩거하면서 움막에 기거하며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았던 사막교부와 교모의 말씀을 새롭게 되새김질하듯 책을 엮으신 듯하다. 그들의 말씀을 엮어서 성경말씀과 연결하고 자신의 평을 실어 20개의 가르침으로 정리하였다.

 

사막 교부와 교모는 기독교의 풍요시대에 오히려 도시를 떠나 사막과 광야로 들어간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완전함을 경험하고 실천하기 위해 움막이나 동굴에서 살며 오로지 기도와 묵상, 노동과 청빈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런데 왜 사막이며 광야인가?

 

광야, 사막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경험하는 곳(p52)이다. 모세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40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받은 곳이기도 하고 수많은 선지자들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우친 곳이기도 하다. 사막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을 떠난 곳이다.

사막 교부들은 사람들로부터 도망쳐라’, ‘사람을 피하여라.’, ‘그대의 움막에 거하여라.’ ‘물고기가 물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서둘러 우리 움막으로 돌아가야 한다.’(p53) 이런 생각들을 가진 것 같다. 사막은 풍요를 버린 곳이고 거칠고 물이 없는 곳이다. 전혀 남이 부러워할만 한 곳이 못된다. 아니 오히려 꺼려하는 곳이다. 사람을 피하여 오히려 그런 곳으로 들어간 이들이 사막교부들이다.

 

그들은 떠난 사람들이다. 떠나고 버렸다. 익숙한 곳, 편안한 곳, 살던 집, 사람들로부터 떠나서 그들은 육신의 안락과 헛된 욕망으로부터 떠나고 그것을 버렸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만남은 사막에서만 이루어질까? 꼭 사람을 떠나야 하나님의 뜻을 깨칠 수 있었을까? 현실에서도 사막처럼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등의 여러 가지 생각들을 의문처럼 가지고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풍요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는 참 쉽지 않겠구나 싶다. 나만 하더라도 힘들고 어려울 때라야 하나님을 찾으니그리고 현재 나는 이미 너무 많이 가진 자다. 움막이라 하기에는 너무 편안하고, 먹을 것은 넘쳐나고, 함께 나누고 이야기할 사람들도 너무 많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는 너무 어렵고, 그래서 번민도 넘쳐나는지도 모르겠다.

 

 

스무고개를 넘어서

 

책은 20개의 가르침으로 엮어져 있다. ‘출가와 떠남, 포기로부터 시작하여 영적 훈련, 의식주, 기도생활, 노동생활, 시험과 유혹, 시련, 죄의식과 참회, 순종과 복종, 인내, 겸비와 겸손, 마음 챙김과 내적 평화, 침묵 수행, 언행, 성경과 교리, 자기반성과 판단,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스승과 제자 됨, 종말과 죽음, 인생목표로 부제가 붙은 20개의 가르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삶은 청렴과 절제, 그리고 영적 각성을 위한 기도와 수행 등이 주를 이룬다. 의식주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음식과 의복 그리고 움막 생활을 했다. 좋은 것을 다 버리고 떠난 그들이기에 종종 금식하고 그들의 의복은 벗어두어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허름한 것들을 권했다. 과식으로 비만이 문제가 되고 성인병이 난무하는 우리들에게는 너무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들은 먹고 자고, 사는 일상에서 그 욕망을 넘어서고자 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일상은 기도와 노동이 주된 활동이었고, 기도하며 일하는 가운데 참회와 회개에 집중하여 그에 관련된 예화나 어록들이 가장 많다고 한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이지만 현대의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가 많고 그 마저도 기도의 자리에 잘 앉지도 않는다. 하나님께 구하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자 했던 사람들,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대로 살고자 애썼던 사람들이 사막 교부들이다. 인내하고, 겸손하며, 침묵하며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며,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했던 그들, 스무 개의 그들의 삶과 깨달음을 독자가 되어 스무고개 넘듯 하나하나 넘어가며 독서를 했다.

 

 

더디 온 깨달음

 

사실 20챕터의 제목에 각 제목에 어울릴만한 성경 말씀과 작가의 글, 그리고 사막 교부, 교모들의 일화를 소개해 엮은 책이 내겐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다. 설교를 위한 일화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21세기를 살아가는 내게 천 오백년 전의 그들의 이야기는 그다지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후루룩 읽어버리고 말 수도 있는 책을 붙들고 공감 가는 말에는 밑줄을 치고 포스트잇을 붙였다.

 

책 거의 말미에 맺음말로 오늘의 사막은 어디에?’를 읽으면서 ~! 그래. 그렇지.’라는 깨달음이 왔다. 오늘 우리의 사막은 어디일까? 사막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이 문제라는 작가의 글이 훅 다가왔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구별하는 것은 몸의 자리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었다.’(p296)라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그러면서 앞의 가르침 하나하나를 다시금 되짚어 보고 나의 영적 골방은 어디인가도 되돌아보게 되었다.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고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하고 일상에서 어떻게 노동해야 하는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고, 나의 마음 수련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하는 말과 행실에 대해 등등 성경과는 또 다른 가르침들이 천천히 내 안으로 들어왔다. 더디지만 확실하게.

 

우리 양 어깨에는 두 가지 짐이 올려져 있습니다. 한 쪽에는 자책이라는 가벼운 짐, 다른 한 쪽에는 자만이라는 무거운 짐입니다. - P138

마음에 다툼이 없고 평안하면 오히려 그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누릴 자격도 없는 기쁨에 사로잡혀 곁길로 가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두면 자만해져서 기고만장하게 됩니다. 한편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에 들까봐 종종 가만 내버려 두시기도 합니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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