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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 한 신학자의 인문 고전 읽기 ㅣ 한 신학자의 고전 읽기 1
김기현 지음 / 죠이북스 / 202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신학자이자 독서가, 철학자이자 저술가인 저자는 전도서의 말씀에서 왜 하필 형통한 날 대신 곤고한 날에 초점을 맞추었을까? 그리고 그 곤고한 날에 ‘되돌아보라’는 성경 말씀을 ‘생각하라’로 바꾸어 제목을 삼았을까? 그건 아마도 우리 인생이 기쁘고 형통한 순간은 잠깐이고 고단하고 곤고한 날은 너나없이 많아서가 아닐까? 그리고 그런 날에는 피하지 말고 생각하라는 뜻인가 보다.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대로 살고,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하니 생각하면서 생각대로 살기를 권유하는 게 아닐까.
인생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고단하다. 곤고하다는 말이 주는 피곤함과 고단함이 오롯이 느껴질 정도로. 저자 역시 녹록치 않은 삶을 산 적이 있는 듯 하고 그런 날 책을 펼쳐들고 삶을 되돌아보지 않았나 상상해본다. 그런 날에 나는 무엇을 했던가 생각하며 책을 들었다.
이 책은 15권의 고전을 읽고 15개의 키워드로 쓴 서평이다. 그 키워드는 우리 일상에서 늘상 마주치는 ‘생각, 독서, 인문학, 경건, 종교, 정치, 리더, 복종, 사랑, 쉼, 죽음, 믿음, 의심, 희생, 용서’에 관한 것이다. 한번쯤은 생각해볼 만한하고 생각해야만 하는 주제들이다. 그런데 <논어>에서 사랑한다는 것을 생각하다니~ 뜻밖이다. 그런데 그의 글에 설득 당한다. 이 참에 나 역시 논어로 저자의 글을 평해 보고자 한다.
1. 온고지신(溫故知新) -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앎.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
이 책은 부제로 한 신학자의 인문 고전읽기라고 되어 있다. 그가 다루고 있는 15권의 책도 동서양의 고전에 속하는 책들이다. 왜 고전인가? 그것을 공자의 온고지신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따끈따끈한 신간이나 자기계발서에서도 배울 것이 많겠지만 고전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와 본질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오래 읽히고 가치가 있다. 그는 고전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사고를 확립하고 교양을 쌓기를 권한다. 그래서 많은 크리스찬들이 경전과 함께 고전을 같이 읽을 것을 권한다. 생각하기에 고전만큼 좋은 책이 없다.
2. 화이부동(和而不同) - 다른 사람과 생각을 같이 하지는 않지만 이들과 화목할 수 있는 군자의 세계. <논어>의 자로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
일부 기독교인은 인문학은 인간 중심의 문학이라 신 중심의 기독교적 가치와 상반되는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문학을 경계해야 할 학문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신학과 인문학은 가까이 있으나 사이가 좋지 못한 이웃 같다. 그러나 저자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이다”라는 얼 쇼리스의 말을 인용하여 인문학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를 것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믿음과 복종, 그리고 의심이라는 서로 상충될 수 있는 개념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종교가 순종을 요구하지만 맹목적인 복종이 어떻게 죄와 연결될 수 있는가를 스탠리 밀그램의 이야기를 통해 제시하기도 한다. 믿음은 따져 묻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신앙은 사유의 부정이면서도 그것이 지닌 한계를 다른 방식으로 뛰어넘는다고 한다. 믿음과 의심은 어떤 관계인지? 믿음과 이성이 어떻게 서로 화목할 수 있는지 밝히고 있다. 서로 다를 것 같지만 그러나 이를 통해 서로 화목하게 하는 것 이것이 화이부동아 아니가?
3. 극기복례(克己復禮) - 자기의 사욕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갈 것을 뜻하는 말 <논어>
아렌트는 내가 아닌 남의 처지를 고려하는 것, 내가 함부로 어찌할 수 없는 타인의 생명을 존중하고 고통에 연민을 품는 것이 진정한 생각이고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즉 생각한다는 것은 배려하는 것이고 이것이 공자가 말하는 예가 아닌가 싶다. 이를 증자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충(忠)’과 ‘헤아리다, 용서하다의 서(恕)’로 풀이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에서 보듯이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했는데 아렌트를 통해 저자 역시 생각한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하는 마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즉 예로 돌아갈 것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
4. 위편삼절(韋編三絶) - 책을 열심히 읽음을 말함, 공자가 <주역>을 열심히 읽어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데서 유래함
저자 김기현의 독서력은 공자 못지않다. 그의 탄탄한 독서력이 필력이 되고 독자를 설득시킨다. 그의 독서는 신학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사회학 등을 넘나들며 특히 요즘 사람들은 좀 꺼려하는 고전까지 두루 섭렵한다. 이전에 출간되었던 <부전-자전-고전>에서도 그렇고 이번 책에서도 좀은 부담스러운 고전철학과 사상서들을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 챕터마다 그 주제에 더불어 함께 읽을 책도 추천하고 있다. 심지어는 같은 제목의 책도 어떤 번역본을 읽을 것인지, 그 사람이 쓴 다른 책은 어떤 책이 있는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추천하고 있다. 그의 독서력에 압도당한다.
15권의 추천 도서와 각 장마다 추가로 함께 읽을 책으로 추천된 도서들을 보면서 나의 독서의 일천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러면 어떤가? 나는 이 책을 통하여 한 권의 책을 읽었고, 15권의 책을 리서치 했다. 그리고 그 중 몇 권은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면 된 것 아닌가?
요즘은 아무 생각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살기는 더욱 곤고해 지는데. 때론 생각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느껴질 때가 있다. 생각대로 살기는 또 얼마나 더 어려운가? 그러나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막 살게 된다니 고전으로부터 선현들의 지혜를 배워볼 일이다. 먼저 이 책을 읽으라. 그리고 선현들에게로 안내하는 길을 따라 고전 속으로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